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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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矛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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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 이인애
아무리 요지경 세상이라지만
똥 묻은 개들이 줄지어 서서
겨 묻은 개를 불러 세우고
도덕강의를 시작한다
입은 정의를 말하고
손은 탐욕을 숨기지 못한 채
부패를 척결하겠다고
개혁 개혁, 확성기를 키운다
한때는 잘 차려입은 도덕이
여염집 옷장마다 걸려 있었다
지금은 자물쇠 채운 수거함 앞에서
배부른 기억만 서성인다
G7의 영광은 기념사진 속에 머물고
현실은 국제통화기금보다 깊은 곳에서
끝 모를 바닥을 찾아 헤맨다
큰 나라의 관세폭탄 앞에서
눈 가리고 아옹
책상 위 보고서는 바쁘고
공장은 조용히 국경을 넘는다
치솟는 환율과 추락하는 GNP
문 닫는 가게들 사이로
커피 향 대신 한숨이 번지고
인터넷과 인공지능이 묻는다
이제, 인간은 어디에 서야 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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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불편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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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독자를 설득하려 들지 않는다. 대신 곧장 불편한 장면으로 데려간다. 속담으로 익숙한 말들이 뒤집히는 순간, 우리는 웃을 틈도 없이 줄 앞에 서게 된다. 이미 세상이 제자리를 잃었다는 사실을 이 시는 설명하지 않고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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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말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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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가 묻는 것은 선과 악의 구분이 아니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누가 도덕을 말하고 있는가. 말의 내용보다 말하는 위치가 문제라는 점에서, 독자는 자연스럽게 자기 자리를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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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과 손이 따로 움직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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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를 말하는 입과 탐욕을 숨기지 못하는 손. 이 둘의 분리는 오늘의 공적 언어를 정확히 닮아 있다. 시는 분노로 고발하지 않는다. 대신 구조를 보여준다. 그래서 더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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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성기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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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성기는 진실을 키우는 도구처럼 보이지만, 이 시 안에서는 다르다. 이미 알고 있는 말을 더 크게 반복할 뿐이다. 개혁이라는 말이 거듭될수록, 그 말은 오히려 가벼워진다. 소리가 커질수록 신뢰는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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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은 사라진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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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은 없어지지 않았다. 다만 잠겼다. 여염집 옷장에서 자물쇠 채운 수거함으로 옮겨 갔을 뿐이다. 꺼내 입기엔 불편해진 상태, 그 불편함이 지금의 윤리 풍경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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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말과 작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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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세계를 말하는 거대한 단어들은 기념사진 속에 머문다. 반면 현실은 바닥을 더듬는다. 이 시의 시선은 늘 아래를 향한다. 숫자가 아니라 사람의 발이 닿는 자리, 숨이 오가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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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사라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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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는 바쁘고, 공장은 말없이 떠난다. 이 문장에는 설명이 필요 없다. 오늘의 세계가 그렇기 때문이다. 시는 소란을 키우지 않고, 침묵을 그대로 둔다. 그 침묵이 더 크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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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뒤에 남은 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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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과 GNP는 차갑다. 그러나 그 사이에서 문 닫는 가게와 한숨이 스며 나온다. 커피 향 대신 번지는 한숨은, 경제 위기를 가장 사람답게 느끼게 하는 이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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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질문의 자리
마지막에 등장하는 질문은 기술의 것이 아니다. 인공지능을 빌려 인간에게 되돌려진 물음이다.
이제 어디에 서야 하느냐는 질문 앞에서, 시는 답을 내놓지 않는다. 그 자리를 비워 둔다.
그 질문을 받아 안는 순간, 이 시는 세태를 해학으로 정렬하며, 비틀어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