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이인애 시인-모순 평론 2》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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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 矛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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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 이인애
아무리 요지경 세상이라지만
똥 묻은 개들이 줄지어 서서
겨 묻은 개를 불러 세우고
도덕강의를 시작한다
입은 정의를 말하고
손은 탐욕을 숨기지 못한 채
부패를 척결하겠다고
개혁 개혁, 확성기를 키운다
한때는 잘 차려입은 도덕이
여염집 옷장마다 걸려 있었다
지금은 자물쇠 채운 수거함 앞에서
배부른 기억만 서성인다
G7의 영광은 기념사진 속에 머물고
현실은 국제통화기금보다 깊은 곳에서
끝 모를 바닥을 찾아 헤맨다
큰 나라의 관세폭탄 앞에서
눈 가리고 아옹
책상 위 보고서는 바쁘고
공장은 조용히 국경을 넘는다
치솟는 환율과 추락하는 GNP
문 닫는 가게들 사이로
커피 향 대신 한숨이 번지고
인터넷과 인공지능이 묻는다
이제, 인간은 어디에 서야 하느냐?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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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태와 해학의 이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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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처음부터 점잖게 말할 생각이 없다.
‘아무리 요지경 세상이라지만’이라는 도입은 체념이 아니라 예고다. 이제부터 들려줄 이야기는 고운 말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보고도 못 본 척 지나온 풍경이라는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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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연의 속담은 웃음을 유발하지만, 그 웃음은 오래가지 않는다. 똥 묻은 개와 겨 묻은 개의 대비는 단순한 풍자가 아니다. 이 사회에서 누가 심판의 자리에 서 있는가, 누가 누구를 가르치려 드는가에 대한 날것의 질문이다. 시인은 은근히 비틀지 않는다. 정면으로 들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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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해학은 위로가 아니라 폭로에 가깝다. 웃음 뒤에 반드시 씁쓸함이 남는다. 이는 웃음을 목적지로 삼지 않고, 웃음을 통로로 삼는 해학이다. 웃다가 멈추는 순간, 독자는 자기 얼굴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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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은 정의를 말하고 / 손은 탐욕을 숨기지 못한 채”라는 구절에서 이 시는 현대 사회의 가장 익숙한 위선을 정확히 포착한다. 말은 언제나 깨끗하고, 손은 언제나 바쁘다. 이 시는 그 손을 숨기지 않는다. 확성기로 울려 퍼지는 ‘개혁’이라는 말이 왜 공허하게 들리는지를, 시는 설명하지 않고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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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을 옷장에 비유한 장면은 이 시의 핵심 장면 중 하나다. 도덕은 한때 잘 다려 입는 생활복이었으나, 이제는 꺼내 입지 않는 물건이 되었다. 수거함 앞에서 서성이는 ‘배부른 기억’이라는 표현은, 도덕을 추억으로만 소비하는 사회의 초상을 정확히 찌른다. 여기에는 분노보다 냉소가, 냉소보다 더 깊은 체념이 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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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반부에서 시는 개인의 도덕을 넘어 세계 질서로 시선을 넓힌다. 그러나 이 확장은 거창한 담론으로 흐르지 않는다. 기념사진과 바닥이라는 대비는, 세계 경제의 화려한 언어가 실제 삶에 닿지 못하는 지점을 정확히 가리킨다. 세계는 위에서 찍히고, 삶은 아래에서 버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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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보고서, 공장이라는 단어들이 등장할 때, 시는 경제를 숫자가 아닌 풍경으로 바꾼다. 책상 위의 보고서는 바쁘지만, 공장은 말없이 국경을 넘는다. 이 ‘조용히’라는 부사는 시 전체에서 가장 무서운 단어다. 위기의 핵심은 소음이 아니라 침묵이라는 사실을 이 한 단어가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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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부로 갈수록 시는 점점 냄새와 소리의 세계로 내려온다. 커피 향 대신 번지는 한숨은, 통계로는 잡히지 않는 삶의 체감이다. 이 시가 강한 이유는 숫자를 들이대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문 닫은 가게 앞에 서 있는 사람의 숨을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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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에 등장하는 인터넷과 인공지능은 미래의 구원이 아니다. 오히려 거울에 가깝다. 기술이 던지는 질문은 기술의 것이 아니라 인간의 질문이다. “이제, 인간은 어디에 서야 하느냐”라는 마지막 물음은 시인의 질문이면서, 동시에 독자에게 건네는 책임의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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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분노로 끝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희망을 쉽게 말하지도 않는다. 대신 정확하게 묻고, 정확하게 멈춘다. 그래서 이 작품은 선동이 아니라 기록이며, 구호가 아니라 시대의 문장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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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은 웃음을 빌려 진실을 말하는 시가 아니라,
웃음조차 허락하지 않는 현실을 끝내 웃음으로 드러내는 시다.
이것이 이 작품이 가진 해학의 깊이이며, 세태시로서의 품격을 높인 시로 평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