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분과 헤어질 결심

이제는 화분 말고 땅에 뿌리를 내리자

by 송알송알

나는 초록에 늘 허기가 졌다. 아파트에 살 때 특히 심했다. 아파트에 살면서 초록을 가까이하려면 화분에 식물을 키워야 한다. 어른 4명이 사는 40년 넘은 낡은 아파트는 식물들에게 내줄 공간이 여의치 않았다. 간신히 공간을 마련해 식물을 들이면 그들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해 죽이기 일쑤였다. 내 별명이 식물들의 저승사자인데 오죽했으랴. 그럼에도 살아남은 몇 개의 식물이 있었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자연친화적인 사람이 아니었는데 어느 날 꽃과 식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늘어가는 나이와 함께 갈증이 점점 커졌다.


초록을 향한 갈증이 티가 났던지 많은 분들이 이사 선물로 화분을 많이 주셨다. 좋았다. 주는 대로 감사하게 받았다. 이제는 죽이지 않고 잘 키워보리라 다짐했다. 영산홍, 고무나무, 해피트리와 이름을 알 수 없는 갖가지 다육이와 여러 가지 꽃 화분들이 그들이다. 이사 올 때 내가 가져온 화분은 6개였는데 화분이 어느덧 20개가 넘었다. 좋으면서도 많다는 생각이 가끔 들었다.


겨울이 지나고 날이 따뜻해지면서 마루에 두었던 화분을 밖으로 옮겼다. 작은 화분들은 마루 앞 큰 창문 앞에 나란히 두었다. 사이좋게 햇볕을 쬐고 있는 형제들처럼 보였다. 우체통 옆에 둔 큰 화분들은 마치 대문 같았다. 울타리와 대문이 없는 우리 집에 근사한 대문이 생겼다.


산과 들에 초록이 짙어졌다. 아침에 눈을 뜨고 창문을 열면 동네 앞산의 나무와 꽃들이 앞 다투어 인사를 건넨다. 손바닥만 한 텃밭이지만 작물들이 성장하며 내뿜는 초록은 감동이다. 동네 산책길에는 다양한 꽃들이 피고 지고 피고 진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초록이다.


초록이 참 많다. 마루에 앉아 바라보는 앞산에 누군가 크레용 상자에 있는 초록색을 모두 꺼내 색칠해 놓은 것 같다. 초록, 연두. 연초록, 진초록, 청록, 풀색, 에메랄드색, 옥색 등등. 초록을 맘껏 누린다. 눈과 마음이 호강한다.


문득 화분의 식물들을 보니 마음이 어지럽다. 여전히 사랑스럽지만 아파트 베란다에 있을 때만큼 귀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 가끔은 귀찮기도 하고 안쓰럽다. 집안에 있을 때보다 화분의 겉흙이 빨리 말라서 신경이 더 쓰인다. 햇빛을 적절히 받을 수 있도록 위치도 간간히 바꿔야 한다. 이렇게나 신경을 더 써도 땅에 있는 식물들보다 약하다. 바질씨를 뿌려 모종을 내어 한 포기는 화분에, 나머지는 텃밭에 심었다. 텃밭의 바질이 키도 더 크고 잎도 더 풍성하고 파릇파릇하다. 어디 바질만 그럴까. 식물을 키우는 게 아니라 좁은 화분에 가둔 기분이 든다.


“시골집에 웬 화분이 왜 이렇게 많아?”

“주위에서 선물로 많이 가져다주셔서 그래.”


집에 놀러 온 친구가 많은 화분을 보더니 물었다. 꽃밭과 텃밭, 마당에 흙 있고 마루에 앉으면 동네 앞산을 맘껏 품을 수 있는 집에 화분이 너무 많단다. 내 생각도 그렇다. 초록에 굶주렸던 처음에는 화분도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화분이 점점 부담스럽다. 나란 인간이 이렇게나 간사하다. 나는 식물을 키우고 가꾸는 즐거움보다 초록색 식물을 보고 느끼는 편안한 기분을 누리고 싶어 초록에 허기가 졌나 보다.


이제 화분이 아니어도 자연에서 초록을 아무 때나 느낄 수 있다. 노지 월동이 안 되는 식물들만 화분에 남기고 흙으로 돌려보낼 결심을 했다. 꽃밭과 마당에 자리를 만들어야겠다. 게으른 나에게도 좋고 식물에게도 좁은 화분에 갇혀 있는 것보다 나을 성싶다. 화분과 헤어질 결심을 친구에게 전했더니 웃으며 이런 말을 덧붙인다.

“그래서 그분들도 그렇게 화분 정리한 것 아닐까?”

“에이,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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