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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알송알 Jul 29. 2023

풀이 악귀보다 더 무서워요

잡초가 많이 자랐다


“옥수수 따러 갑시다.”

:혼자 가면 안 될까?”

“무서워서 나 혼자 못 가는데…”


작업실에서 일하고 있는 남편을 불렀다. 우리 텃밭에는 옥수수가 없다. 이웃사촌 시누이네 텃밭에 옥수수가 익었으니 따먹으라는 연락을 했다. 얼른 가지 않으면 직접 따서 가져다 줄지 모른다. 번번이 앉아서 얻어먹기는 죄송하고 송구하다. 남편도 나와 같은 마음이 들었는지 하던 일을 멈추고 소쿠리를 들었다.


“도대체 뭐가 무서운데?”

“잡초. 풀이 무성해서 바닥에 흙이 안 보이니까 너무너무 무서워. 뭔가 나올 것 같지 않아?”

“뭐가 나오긴 뭐가 나온다고 그래. 나와도 그렇지, 네 덩치가 훨씬 크잖아?”

“그래도 나는 무섭단 말이야.”


우리 텃밭에 풀이 무성하다. 텃밭인지 풀밭인지 구분하기 힘들다. 풀 뽑는 일이 만만찮다. 풀이 있어야 땅힘이 살아난다는 이론을 앞세워 작정하고 풀을 뽑지 않는다. 오며 가며 보이는 대로 틈나는 대로 풀을 뽑았다. 역부족이다.. 장마 전까지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장마 때 물을 충분히 먹어서 그런지  풀이 무럭무럭 자란다. 쑥쑥이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싶을 정도로 크더니 밀림을 만들었다. 정말이다. 나에게는 그렇게 보인다. 시누이네 텃밭도 그럴 것 같았다.


시누이네 텃밭으로 갔다. 풀이 우리 텃밭에 비해 적지만 그래도 무섭다. 뱀이 금방이라도 나올 것 같다. 그뿐인가. 내 키와 비슷하거나 더 큰 옥수수들이 빽빽하다. 땅도 하늘도 안 보일 판이다. 옥수수 사이로 들어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거 같다.


“어이구. 그냥 구경하고 있어. 내가 따 올게. 둘이 할 일도 아니구먼.”

“……”

“그러니까 귀신 나오는 드라마, 악귀 말이야. 그거 보지 말라니까 그래.”

“그게 풀 이야기는 아니잖아.”

“무서운 드라마를 자꾸 보니까 풀까지 무서워하고 그러잖아.”

“……”


이게 무슨 논리인가? 아무 관련이 없다고 바로 잡아야 하지만 일하던 사람을 데려온 게 미안해서 가만히 있었다. 남편과 함께(?) 따 온 옥수수를 바로 쪄서 저녁밥으로 먹었다. 바로 이 맛이야. 맛있다. 옥수수로 배를 두둑이 채우고 드라마 ‘악귀’를 보았다. 무섭고 재미있고 묵직한 메시지도 있고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하다. 잘 보았다. 역시 ‘악귀’보다 풀이 더 무섭다.


#브라보문경라이프 #문경일기 2023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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