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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알송알 Aug 02. 2023

아프니까 서울이다


나는 지병이 있다. 3개월마다 서울성모병원에서 혈액검사와 진료를 받는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혈액검사에서 특이점이 발견되는 경우 예정에 없던 검사가 추가된다. 별 이상이 없으면 처방전을 받고 끝이다.  어쨌거나 매우 의기소침해지고 지친다.


성모병원에서 먼 지방으로 이사를 하며 병원 진료가 고민이었다. 지역 병원으로  옮겨야 하나. 병원에서 가까운 곳에 살 때도 병원을 다녀오면 피곤했다. 기진맥진하여 병이 낫기는커녕 없던 병도 생길 판이었는데 고속버스를 타고 멀리 병원을 다녀야 할까? 난치병이기는 해도 큰 병은 아닌데 서울까지 다닐 필요가 있을까. 뭐니 뭐니 해도 병원은 집에서 가까운 것이 좋지 않을까?


10년 넘게 다닌 병원을 변경하는 일도 쉽지 않지만 어느 병원으로 옮겨야 할지 모르겠다. 주변에 물어보니 웬만하면 다니던 서울 병원으로 계속 다니라고 한다.  지역 병원에 다니다가도 서울 병원으로 옮길 수 있으면 옮기는 것이 좋은 데다 믿을만한 병원을 찾기 쉽지 않다고 한다.


이사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형외과에 입원하신 친척 어르신 문병을 간 적이 있다. 그 병원에서 팔목뼈가 부러졌다는 진단을 받은 환자와 보호자가 대구나 안동의 큰 병원으로 가니 안 가니 하는  모습을 보았다. 내 생각에는 한시라도 급히 치료를 하는 것이 환자에게 더 도움이 될 것 같아 보였다. 지역 의사에 대한 불신이 이 정도일 줄이야.  환자가 없으니 지역병원이 줄고, 병원이 없으니 막상 응급상황에서는 갈 수 있는 병원이 없고 , 그래서 또 환자들은 지역병원을 불신하는 악순환이 이렇게 만들어지는 건가.


병원을 옮길지 말지 - 결정을 하지 못한 채 정기 진료일이 되었다. 집에서 터미널까지 15분, 고속버스 출발까지 기다리며 15분, 고속버스 타고  2시간, 강남터미널에서 병원까지 여유 있게 걸어서 20분, 접수하고 대기하고 채혈하는 데 30분, 병원 1층 카페에서 샌드위치와 커피로 아침식사에 30분 그리고 1시간을 멍하니 기다린 후에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었다. 집을 떠난 지 5시간 만에 의사를 만났다. 문경으로 이사 가기 전 살았던 과천에서 다닐 때보다 고속버스 타는 시간만큼 더 소요되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네? 왜요? “

“염증 수치가 많이 좋아졌네요. 그동안 계속 올라가던 콜레스테롤 수치는 103까지 내려갔고요. 적혈구 수치도 올라갔으니 빈혈도 덜하겠지요? 전반적으로 많이 좋아져서요.”

“정말요? 선생님. 사실은요 제가 시골로 이사를 갔어요.”

“아~ 그러셨구나.”


병원을 옮길 결심이 서면 알리려고 했는데 기분이 좋아서 얼떨결에 이사한 사실을 알렸다. 시골살이 덕분에 내가 조금은 건강해진 건가? 그러고 보니 두통도 없어졌다.


“시골은 공기도 좋고 아무래도 많이 움직이게 되죠. 그게 도움이 되었나 보네요.”

“네. 헤헤헤”

“그럼 3개월 뒤에 봬요. “

“네, 선생님. 그러면 약을 줄이는 건가요?


우물에서 숭늉 찾는다더니 내가 딱 그랬다. 의사 선생님은 웃으시며 더 지켜보자고 하셨다. 진료실을 나와 계산을 하고 약국에서 약을 찾아 다시 고속버스를 타고 집으로 왔다. 해가 여전히 하늘에 걸려있다. 편리한 교통 덕분에 서울 병원이나 지역 병원이나 별 차이가 없다. 이 정도면 다닐만하다 싶다. 게다가 지금껏 함께 한 의사 선생님과 더 지켜보아야 할 것도 생겼으니 계속 서울 병원으로 다니기로 했다. 겸사겸사 병원 오는 날 친구들도 만날 수 있어 좋다. 이래저래 나도 아프니 서울로 가는 모양새가 되었다.  나도 별 수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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