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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알송알 Aug 29. 2023

꽃들이 내게 울지 마라고 한다

백일홍

점점 바보가 되고 있는 기분이다. 연이어 몇 가지 실수를 했다. 실수를 전혀 안 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냐마는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아이고, 송알송알아 이러고 살고 싶니, 살고 싶어? ” 한숨을 잔뜩 품은 독백이 절로 나온다.


지난 토요일 저녁 바질잎을 200그램이나 땄다. 바질 페스토 생각에 기분이 좋아지고 동작이 빨라졌다. 후다닥 필요한 재료를 준비했다. 올리브 오일, 마늘, 잣 대신 캐슈너트. 소금과 깨끗하게 씻은 바질 잎을 핸드 블렌더로 곱게 갈면 끝이다. 위잉 위잉 위이잉 몇 번 소리가 나더니 잘 안된다. 칼날 사이에 곱게 갈린 바질이 끼여서 그렇다. 아이고. 지금 생각해도 그때 내가 왜 그랬는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평소라면 핸드 블렌더를 도깨비방망이 두드리듯  탁탁 치던가, 포크나 젓가락 같은 도구를 이용했을 텐데 손이 먼저 나갔다. 전원 버튼에서 오른손을 떼지도 않고 말이다. 손가락을 다쳤다. 많이 다치지 않았지만 나는 나 자신이 이해가 안 되고 너무 밉다.


“으앙. 내가 YB 공연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이게 뭐야.”

YB (윤도현 밴드) 공연 소식을 들었다. 서울도 대구도 아닌 바로 우리 동네 문경에서 공연을 한다. 문경문화예술회관 30주년 기념공연의 게스트가 YB라는 소식을 듣자마자 예매날짜를 일기장에 쓰고, 핸드폰 알람도 등록하고 , A4 용지에 큼직하게 써서 눈에 잘 띄는 곳에 붙였다. 예매 D-day를 잊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신경을 많이 쓴 덕분에 예매일은 잊지 않았다.


월요일 아침, 예매 시작 20분 전에 노트북 앞에 앉았다. 접속이 안된다. 비밀번호가 틀렸다나. 몇 달 접속을 안 했더니 이 모양이다. 이런 상황은 흔해서 당황하지 않았다. 비밀번호는 찾으면 된다. 임시비밀번호를 등록한 이메일로 보냈다는 메시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어머나 세상에나, 이메일 주소가 내 것과 알파벳 철자 하나가 다르다. 회원가입할 때 내가 오타를 쳤나 보다. 이런 낭패가? 내가 비밀번호를 찾아 삼만리 여행을 하는 동안 공연은 매진되었다. 예전에 비해 오독과 오타가 많이 늘었다. 내 자신이 서글프고 속상하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일일이 나열하면 밤을 새야 한다. 생각할수록 지금의 나는 내가 아닌 것 같다.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니지 않았나. 이게 다 나이 들고 늙고 낡아 그런 것 같아 마음이 심란하다. 눈물이 난다.


답답해서 마당을 어슬렁어슬렁 걸었다. 호랑나비가 너울너울 날아다니다 백일홍 꽃잎에 앉는다. 우리 집 꽃밭에 백일홍이 한창이다. 이름처럼 꽃이 한 번 피면 백일동안 피어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다. 백일홍 한 포기에서 꽃송이들이 피고 지고 하면서 백일이란다. 백일홍 옆에는 봉선화가 있다. 손톱에 물들일 사람도 없는데 곱게 피었다. 봉선화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플록스도 이쁘다. 친구네 집에서 한 포기를 뿌리째 옮겨 왔는데 자리를 잡았다. 내년이 더 기대된다. 5월 끝자락부터 피기 시작한 분홍 낮달맞이꽃은 여전히 풍성하다. 밤에 피는 달맞이꽃과 달리 낮에 핀다고 낮달맞이꽃으로 불린다. 장마 전에 가지 정리를 했더니 더 소복하게 피어났다. 텃밭에도 꽃이 있다. 여름 내내 먹을거리를 가득 내어주고 꽃을 피운 부추꽃은 곱다. 부추꽃은 먹을 수 있다지만 먹기보다 눈에 담고 싶다. 참 아름답다. 바질 꽃은 바질 잎과 같이 따서 꽃병에 꽂았다. 꽃을 보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환해진다.


서글프고 속상하고 심란하고 미워하던 마음이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날려 보낼 의지도 생각도 없었는데도 말이다. 꽃들이 내게 울지 말라고 하는 것 같다. 꽃들의 마법인가? 아마 예전만큼 기억력이 좋지 않고 총명하지 않은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나쁜 일도 잘 잊는다.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호랑나비를 따라 꽃구경을 하다 보니 그리 되었다. 씨를  뿌리거나 혹은 어린 모종부터 꽃들의 성장을 쭉 지켜보아서 그런가? 그냥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고 보니 어리고 젊을 때는 품에 안을 수 있는 장미 꽃다발을 좋아했다. 그때는 산, 들, 꽃밭과 길가에 피어있는 꽃들이 예쁜 줄 몰랐다. 그때의 꽃다발은 축하인사 혹은 사랑고백이었는데 지금의 꽃은 나를 위로한다. 이게 가능하구나. 어리고 젊은 나는  안 그랬다. 그래 뭐, 손가락은 나을 거고 공연은 다음에 보면 된다. 훌쩍거릴 시간에 예전처럼 총명하지 않지만 실수를 줄일 방법이나 찾아야겠다.


#2023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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