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바보가 되고 있는 기분이다. 연이어 몇 가지 실수를 했다. 실수를 전혀 안 하는 사람이 어디에 잇겠냐마는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아이고, 인간아. 이러고 살고 싶니, 살고 싶어?” 한숨을 잔뜩 품은 독백이 절로 나온다.
지난 토요일 저녁 텃밭에서 바질 잎을 200그램이나 땄다. 내가 만든 바질페스토를 요리에 요리조리 이용할 생각에 기분이 좋아지고 동작이 빨라졌다. 후다닥 필요한 재료를 준비했다. 올리브 오일, 마늘, 집에 없는 잣 대신 캐슈너트, 소금과 깨끗하게 씻은 바질 잎을 핸드블렌더로 곱게 갈면 끝이다. 윙 윙 위이이잉 몇 번 소리가 나더니 잘 안 된다. 칼날 사이에 곱게 갈린 바질이 끼여서 그랬다. 아이고. 지금 생각해도 그때 내가 왜 그랬는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평소라면 핸드블렌더를 도깨비방망이 두드리듯 탁탁 치던가, 포크나 젓가락 같은 도구를 이용했을 텐데 이번에는 손이 먼저 나갔다. 전원 버튼에서 오른손을 떼지도 않고 말이다. 돌아가는 핸드블렌더 칼날에 손가락을 다쳤다. 많이 다치지 않았지만 나는 나 자신이 이해도 안 되고 너무 밉다.
“으앙. 내가 YB 공연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이게 뭐야.”
YB (윤도현 밴드) 공연 소식을 들었다. 서울도 아니고 우리 동네에서 그나마 가까운 대도시 대구도 아니고 바로 우리 동네에서 공연을 한다. 문경문화예술회관 30주년 기념공연의 게스트가 YB라는 소식을 듣자마자 예매날짜를 일기장에 쓰고, 핸드폰 알람을 등록하고 , A4 용지에 큼직하게 써서 눈에 잘 띄는 곳에 붙였다. 예매 D-day를 잊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신경을 많이 쓴 덕분에 예매일은 잊지 않았다.
예매 당일 아침, 예매 시작 20분 전에 노트북 앞에 앉았다. 접속이 안 된다. 비밀번호가 틀렸다나. 몇 달 접속을 안 했더니 이 모양이다. 이런 상황은 워낙 흔해서 당황하지 않고 비밀번호 찾기를 시도했다. 어라? 임시 비밀번호를 내가 등록한 이메일로 보냈다는 메시지가 이상하다. 어머나, 세상에나, 이메일 주소가 내 주소와 다르다. 회원 가입할 때 내가 오타를 쳤나 보다. 1분 1초가 급한데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다. 내가 비밀번호를 찾아 사이트 담당자에게 연락을 하고 이메일 주소를 바꾸고 비밀변호 변경을 변경하느라 긴 시간을 쓰는 동안 공연은 매진되었다. 예전에 비해 오독과 오타가 늘었다. 나 자신이 서글프고 속상하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일일이 나열하면 밤을 새야 할지 모른다. 생각할수록 지금의 나는 내가 아닌 것 같다.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니지 않았나. 손가락은 나을 거고 공연은 다음에 볼 수 있지만 심란한 내 마음은 어떡하나. 눈물이 난다.
창밖을 바라보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호랑나비가 너울너울 날아다니다 백일홍 꽃잎에 앉았다. 우리 집 꽃밭에 백일홍이 한창이다. 이름처럼 꽃이 한 번 피면 백일동안 피어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다. 백일홍 한 포기에서 꽃송이들이 피고 지고 하면서 백일이란다. 백일홍 옆에는 봉선화가 있다. 손톱에 물들일 사람도 없는데 곱게 피었다. 봉선화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플록스도 예쁘다. 친구네 집에서 한 포기를 뿌리째 옮겨 왔는데 자리를 잡았다. 내년이 더 기대된다. 5월 끝자락부터 피기 시작한 분홍 낮달맞이꽃은 여전히 풍성하다. 밤에 피는 달맞이꽃과 달리 낮에 핀다고 낮달맞이꽃으로 불린다. 장마 전에 가지 정리를 했더니 더 소복하게 피어났다.
서글프고 속상하고 심란하고 미워하던 마음이 조금씩 사라졌다. 날려 보낼 의지도 생각도 없었는데도 말이다. 꽃들이 내게 울지 말라고 하는 것 같다. 예전만큼 기억력이 좋지 않고 총명하지 않은 덕분에 기분 나쁜 일도 잘 잊고 금세 다른 쪽으로 시선이 갈 수 있어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꽃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편안해졌다. 씨를 뿌리거나 혹은 어린 새싹부터 꽃들의 성장을 지켜보아서 그런가?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호랑나비를 따라 꽃구경을 하다 한숨이 쑥 들어갔다.
그러고 보니 어리고 젊을 때는 품에 안을 수 있는 장미 꽃다발을 좋아했다. 산, 들, 마당이나 길가에 피어있는 꽃들이 예쁜 줄 몰랐다. 그때의 꽃다발은 대개는 축하인사 혹은 사랑고백이었는데 지금의 꽃은 나를 위로한다. 손가락은 나을 거고 공연은 다음에 또 기회가 있을 것이고 아니면 보지 않아도 그만이다. 예전처럼 총명하지 않은 내 모습을 받아들이고 실수를 줄일 방법이나 찾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