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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털과 쇠털

by 송알송알


지난 4월 봄봄 친구들과 함께 한강 작가의 작품을 몇 권 읽었다. 몇 년 전 <소년이 온다>와 <채식주의자>를 함께 읽었었다. 어렵고 아프고 슬프고 힘들었다. 그 기억이 너무 강해서 온 나라에 한강 열풍이 불어도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읽고 싶어도 책을 구하지 못해 읽지 못했겠지만 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강 열풍이 태풍에서 산들바람으로 바뀌고, 서점과 도서관에 책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읽고 싶은 마음이 아주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명색이 ’ 책을 보고 세상을 본다는( 봄봄) ‘ 책 모임을 하는 우리는 그의 작품을 무조건 읽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책에 대한 예의와 도의를 다 하는 게 아닐까. 무엇보다 노벨상 수상 작품을 원서로 읽을 기회가 흔치 않다. 한글을 읽고 쓰는 능력이 나름 출중한데(?) 한강 작가의 작품을 만나는 것은 인지상정일테다.


<작별하지 않는다> <흰> <희랍어 시간> - 이렇게 3편을 읽기로 했다. 예전과 별다르지 않다. 힘들고 어렵고 슬프고 아프다. 분명히 한글로 된 문장을 읽었는데 왜 이렇게 어렵냐? 시적 문장이라 그런가? 고도로 함축된 작가의 말 앞에서 나는 번번이 헤맨다. 깊은 사유를 담은 그의 언어는 한글이 아닌 것 같다. 아프다. 작가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아프고 이해를 못 하면서도 가슴을 쿡쿡 찌르는 뭔가에 더 아프다.


보고 싶은 마음이야 당연하지마는 눈물 흘릴 것이 무어 있나 쇠털같이 많은 날을 만나 옛 이야기 할 수 있는데 정숙이한테 그리 일러 주어라.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중에서


끙끙거리며 읽다가 ‘쇠털같이 많은 날’이라는 문장을 보았다. 쇠털이 아니고 새털 아닌가? 소에 털이 많나? 별로 없지 않나? 핸드백을 만드는 뱀이나 악어처럼 소의 가죽도 맨질맨질하지 않나? 오호, 이것은 오타로구나. 우와, 세상에~ 한강 작가도 이런 실수를 하고, 출판사의 편집자도 찾아내지 못한 오타를 내가 딱 발견했구나 했다. 에구머니. 사전을 찾아보니 쇠털이 맞다. 쇠털은 셀 수 없이 많단다. 맨질맨질하게 보일 정도로 많다. 쇠털이 셀 수 없이 많아서 비롯된 비유가 ‘쇠털같이 많은 날’이다. 반면에 새털은 수도 적고 가벼워서 이주 가벼운 것을 비유할 때 ‘새털같이 가볍다’라고 사용한다.


작가의 실수를 찾았다고 좋아라 했던 마음이 부끄럽다. 보통 오타를 찾았다고 이렇게나 좋아하지는 않는데 왜 그랬을까? 무안한 웃음이 나온다. 하하하하. 덕분에 쇠털과 새털의 차이점을 알았으니 그럼 되었다고 나를 달래 본다. 아이고 창피해라.


문경새재 세트장에서 만난, 촬영 대기 중인 소 - 털이 많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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