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은 뭐지?”
평소대로. 늘 하던 대로 별생각 없이 휴지를 뽑으려다 무심코 휴지상자의 그림을 보았다. 나무 두 그루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도형. 나무는 종이를 만드는 재료라는 의미일 테고 사각형, 사다리꼴과 또 하나의 직사각형의 조합인 이 것은 도대체 무엇인고? 얼핏 집처럼 보이지만 집은 아니다. 수수께끼의 힌트를 찾는 심정으로 상자에 인쇄된 글을 읽었다. ‘자연과 환경을 지키고 사람을 생각하는 휴지’, ‘…… 생산하고 남은 우유팩 자투리를 활용하여 만든 ….’
우유팩이었다. 휴지 상자에 그려진 우유팩 이미지를 척하고 알아보지 못하는 나는 쓰레기와 환경에 모르는 게 많다. 물휴지가 미세 플라스틱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너무 놀랐다. 배신감에 화가 났다. 미세플라스틱이라고 알려주었으면 애초에 사용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물휴지는 너무 간편하고 편리해서 한번 사용하기 시작하면 외면하기 어렵다. 식탁 위에 떨어진 김칫국물을 행주로 닦았을 때를 생각해보라. 행주에 물든 빨간 김칫국물을 빼려면 귀찮고 힘이 든다. 그래도 물휴지가 미세플라스틱이라는 사실을 안 이상 더는 사용하지 않기 위해 노력 중이다. 수세미, 티백, 생리대와 섬유유연제 같은 플라스틱과 연관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 물건에도 미세플라스틱이 있다고 하니 난감하다.
‘Other’로 표기된 비닐류는 재활용이 어렵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배신감이 들었다. 분리수거만 잘하면 재활용이 되는 줄 알고 깨끗하게 씻어 잘 말려 내놓고 있는데 말이다. 얼룩이 묻은 비닐을 닦기 위해 물을 오염시키면서까지 분리수거를 하는 게 맞나 싶은 의혹이 들기도 한다.
비닐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게 장바구니를 들고 다닌다. 하지만 장바구니를 들고 들어 간 마트에는 비닐과 스트로품으로 포장된 제품들로 가득하다. 대형 비밀은 안되고 자잘한 비닐들은 상관없다는 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친환경 매장 한살림과 자연드림도 이마트와 큰 차이 없다. 시장을 다녀오면 식재료나 생필품보다 다 많아 보이는 포장쓰레기에 힘이 빠진다. 물건을 사 온 건지 쓰레기를 사 온 건지 헷갈린다. 그렇다고 감자, 양파, 사과, 버섯 등등을 담을 각종 용기를 들고 매번 재래시장으로 갈 정도로 나는 성실하지 않다.
기후위기는 몸으로 느끼기 시작했고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되는 것도 알겠는데 행동과 실천이 어렵다. 1회 용품을 덜 쓰고 쓰레기를 줄이고 분리배출만 잘하면 되는 건가. 떡볶이를 사러 냄비를 들고 가고, 나무젓가락은 필요 없다고 당부하고 손수건을 들고 다니는 등 나름대로 애써보지만 충분하지 보인다. 좀 더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방법을 알아도 귀찮다는 이유로 외면할 가능성이 99%이다. 물휴지가 미세플라스틱인 것을 알고는 사용하지 않으려고 무진장 애쓰지만, 지금도 마트에 가면 살까 말까 망설인다. 나는 내 몸 편한 것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이기적이고 게으른 인간이다.
그래서 나는 기꺼이 규제를 받겠다. 마트의 대형 비닐 규제로 모두들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게 된 것처럼 말이다. 제품의 성분이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제대로 알려주고, 환경을 위한 실천 방법을 가르쳐주고, 실천 방법이 다소 불편하더라도 지킬 수 있도록 정부가 애써 주었으면 좋겠다. 특히나 개인보다 기업이 생산, 판매, 유통, 사후처리 등 모든 과정에 친환경이 아니면 기업의 존폐가 힘들도록 제도가 마련되었으면 한다. 환경보호의 필요성과 쓰레기 문제의 심각성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는 지금이 개인, 사회, 기업과 정부가 모두 함께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 모두의 선의와 성실에만 의지하여 해결이 가능할까? 제도가 필요하다. 나는 불편을 감수하고 따르겠다. 자발적 실천이 어려우니 씁쓸하지만 어쩌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