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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일리 프로방스 Sep 13. 2024

용사보다 더 위대한 사람

 잠 언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잠언 16장 32절.


로마 신화에 분노의 신이 있다. 평소엔 없는 듯 지내다가 복수할 일이 생기면 기뻐서 어쩔 줄 몰라했던 신이다. 눈물까지 줄줄 흘리면서.


 머리카락은 올올이 뱀으로 엮여있는 데다 분노와 증오심으로 가득 찬 얼굴은 당장이라도 복수의 칼을 내칠 기세였다.


끔찍스러운 그 신의 이름이 '푸리아이'(furiae)다. 놀랍게도 분노를 뜻하는 영어 fury가 여기서 출생했다.


그리스 신화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죽은 자가 저승의 땅 하데스에 이르자면 네 개의 강을 건너야 했다.


이름하여 비통의 강, 시름의 강, 불의 강, 망각의 강이 그것인데 이 강들을 건너면 지상의 모든 기억을 다 잊어버린다는 거다.


망각이 선물이란 점에서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하지만 예외적으로 이 생의 일을 기억하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다. 네 개의 강을 지나는 동안 망각장치가 고장이 난 것일까.


이들은 세상에서 맺힌 한이 너무도 깊어 분노를 다 풀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이었다는데, 죽어서도 그 모양이면 어쩌란 말인가.  


분노에 대해 다루는 두 개의 신화는 현대인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커 보인다. 이에 함께 삼천 년 전 구약성경의 잠언에서 지혜자가 밝힌 문장을 상기해 볼 일이다.


분노를 더디 하는 사람이 성을 하나 빼앗는 용사보다 위대한 자다. 한 순간의 분노를 참아내는 사람이야말로 나폴레옹이나 알렉산더 대왕보다 더 현명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어떻게 분노문제를 대처하며 살까. 이것이 우리의 과제다.


분노는 타인을 해치는 벌과 같다. 성난 벌은 상대를 향해 침을 쏘며 무차별공격을 가한다. 벌에 쏘인 사람은 약간 아프다 말면 그만이다. 그러나 벌은 목숨을 잃고 만다.


 이같이 분노의 침을 상대에게 쏘아대는 사람은 자신부터 치명상을 입고 만다. 이것이 분노의 역설이다.


사람이 격노할 때마다 심장 박동은 심한 불규칙성을 보인다. 이것을 심장 변이도라 하는데 이는 감정과 직결되어 있다. 평소 화를 잘 내는 사람은 심장 변이도의 수치가 뚝 떨어진다.


심장내과의사들은 이 같은 사실에 주목하며 분노라는 감정관리에 유의할 것을 경고하고 있다. 분노는 돌연사를 끌어들이는 치명적 자석이다. 이런 불행을 예방하려면 인내의 잠금장치가 꼭 필요하다.


분노는 잠깐 동안 미쳐버리는 행위다. 분노할 때마다 무시무시한 에너지가 방출된다. 생명을 태워버리는 네거티브 에너지라서 문제가 더 심각하다.


 분노할 때 자기 안에 있던 엄청난 양의 생명에너지가 방출된다. 최악의 스트레스가 분노라는 판단은 합리적 근거일 수 있다. 다음의 경고에 귀 기울여 보자.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시 편 38장 8절.



술 취함과 분노는 취한다는 점에 있어 동일하다. 술에 취한 사람은 인사불성이 된다. 이성의 통제영역을 벗어나 있는 상태다.


분노할 때 사람의 행동도 이와 유사하다. 분이 풀리고 나서야 제정신이 든다. 술이 깨면 맨 정신으로 돌아오듯이. 둘 다 반드시 후회가 뒤따른다. 얼마 안 가 다시 되풀이되지만.


분노는 벼락과 같다. 분노는 여타의 감정과는 성질부터 다르다. 일반적으로 부정적 감정의 표출은 미니멈에서 맥시멈을 향하면서 서서히 발동을 건다.


분노의 경우 이와 정반대로 작동한다. 해일처럼 일어났다가 잔잔한 파도처럼 부서져 사라지니까.


분노의 영역에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되는 일은 없다. 소도둑에서 바늘도둑으로의 하강곡선을 그릴 뿐이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평소 욱하는 성질을 잘 부린다. 이 못된 성품은 나이가 들어도 제어하기 쉽지않아 고생하고 있다. 욱하는 기질은 내 안에 숨어있는 소도둑이다.


분노는 다툼을 일으킨다. 필연적인 일 아닌가. 분노는 주변을 불로 사위고 파탄내기 쉬운 휘발성 물질과 흡사하다.


 분한 마음을 절제 못해 살인까지 가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인류 최초의 살인 역시 한 사람의 분노에서 시작되었으니까.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 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창세기 4장 5절, 8절.

 

본문의  '분하여'의 히브리어 הָרָה(하라)는 뜨겁게 타오르다. 맹렬하다. 미치다. 한탄하다 등등. 의미가 다양하다.


어느 날 가인이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다. 하나님은 아벨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의 것은 거절하셨다. 이 같은 결과를 가인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금방 안색이 변하더니 미칠 정도로 열받아 분노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동생을 향한 맹렬한 적개심과 시기심이 가인의 영혼에 불을 질렀다. 그 끝은 살인이었다. 형제간의 잔인한 피의 복수극이 인류 역사의 여명기에 일어났다니 놀라운 일 아닌가.


 인류 최초의 살인은 왜 일어났을까. 분노 때문이었다. 분노의 뿌리는 바다보다 깊으나 그 파급력은 하늘보다 넓다. 이후 가인의 행위를 쫒는 길은 우주 공간처럼 넓어졌다.


묻지 마 살인은 사회를 공포와 불안에 떨게 하는 극악의 범죄다. 저들은 가인의 행위를 오마주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심리적 배경엔 가인과 같은 분노가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이다.


 분노의 신 푸리아이가 사회 구석구석을 방문하며 복수극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일들을 뉴스 영상을 통해 생중계로 보고 있지 않은가. 살면서 마주치는 최악의 경험이 아닐까 싶다.


언제 어디서 푸리아이 신이 사람의 모습으로 둔갑하여 분노와 복수의 얼굴로 나타날지 아무도 모른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

잠언 14장 29절.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

잠언 15장 18절.


살다 보면 화가 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 화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폭발적인 양상을 보이는 것이 문제다. 여기서 분노조절장애가 따라온다.


충동적인 고함이나 비명, 폭력 등을 동반하며 사소한 일에도 과도하게 분노를 드러내는 것이다. 평소 조용하다가 갑자기 화를 버럭 내는 사람은 물론, 화를 지나치게 참는 사람도 분노조절장애 고위험군으로 분류된단다.


분노와 욕심에 휘둘리는 것이야말로

사람이 버려야 할 가장 나쁜 악습이다.

화가 날 때 그것으로 인해 닥칠 어려움을 생각하라.

논 어 계씨 편.


성인의 말씀대로 화가 날 때 이후에 닥칠 일을 한 번만 생각한다면 분노를 그칠 수 있을까. 가능하겠으나 그 잠깐의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분노가 삼켜버린다.


이 일이 얼마나 어려운 지 성리학을 제창한 주자 같은 성인도 이렇게 고백한 적이 있다. '내가 가진 기질상의 병은 대부분 분노와 원망을 다스리지 못하는 데 있다'.


분노는 나약함의 표현이다. 화를 내는 사람은 스스로의 좌절감과 무기력을 인정하는 꼴이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일수록 분노가 심하다.


분노는 자기 인생의 닥친 문제를 단 하나도 해결해 주지 못한다. 오히려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며 나와 주변인들을 파괴할 뿐이다.


습관적으로 분노하는 사람은 강력한 휘발성 물질을 품고 있는 것과 같다. 대화를 시작하기도 전에 화부터 내는 사람이 있다.  화를 잘 내는 이들 주변엔 사람이 붙지 않는다.


 그렇다면 분노의 문제를 어떻게 대처하면서 살까. 다음의 문장을 살펴보자.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신약성경 에베소서 4장 26절.


길을 걷다가 새가 머리 위에다 똥을 갈기고 간다면 매우 불쾌할 것이다. 한두 번 그런 일이 일어날 수는 있다. 만일 새가 내 머리 위에 집을 짓고 둥지를 튼다면 어떻게 될까.


 해가 지도록 분을 처리하지 못하고 다음 날까지 계속된다면 마치 분노의 새가 머리 위에 둥지를 트는 과 같다. 이것은 전적으로 피할 일이다.


이것을 성경은 죄를 짓는 분노라 규정한다. 이 지점에서 사달이 생긴다. 본문은 이런 뜻이 아닐까 싶다.


'분을 낼 수는 있다. 그러나 가인 같은 극단적 분노에 사로잡히는 말라. 하루가 다 가기 전 분노의 먼지를 털어내고 잠자리에 들라. 결코 다음날까지 분노에 사로잡혀 살지 않도록 하라'.


용사보다 위대한 사람은 생각보다 멀리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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