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첫 번 크리스마스의 추억

by 데일리 프로방스


성탄절!

민족 국가 인종을 넘어선 전인류의 명절. 과장일까요. 만남과 축제, 행사와 분주한 모임들이 얽혀 성탄절을 휩쓸고 지나갑니다.


여기엔 국경 따위의 장벽도 없답니다. 성탄절이 보내는 고유한 시그널이 이런 것일까요. 생각해 보면 거룩한 그림의 중요 부분이 잘려 나가고 이질적 문화의 색채가 덧칠해져 변색된 지 오래되었습니다.


성탄절 본래의 성화를 복원해서 걸어 놓아야 할 것 같습니다. 성탄절은 이벤트나 축제가 아니라 거룩한 의미를 띠는 절기임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감사하게도 신약성경 누가복음에는 성탄절이 그려진 아름다운 삽화가 끼워져 있습니다.

비록 일부분이긴 하지만 너무도 소중한 그림입니다.


옛 시인 도연명은 인간의 이상향 유토피아를 무릉도원이라 설정해 놓았다지요. 그곳에 가기 위해 배를 몰고 떠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도 누가가 작성한 지도를 따라 베들레헴을 향해 믿음의 배를 타고 떠나 보면 어떨까요. 바로 거기에 믿음의 유토피아 성탄절 첫 번 크리스마스가 있기 때문입니다.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누가복음 2: 13 ~14절

개역 개정판 성경.


우리는 천사들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습니다. 그들은 성경의 어휘로 수놓은 비밀 커튼 속에 숨어 있습니다.


다만 성령의 쪽빛이 인간 지성의 틈새를 지날 때 뒷모습을 살짝 보일 뿐입니다. 순전한 영적 피조물인 천사들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기독교 전통에서는 이런 유의 음악을 일러 '테 데움'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영광의 찬송을 말합니다. 테 데움의 장엄한 연주가 누가복음의 텍스트, 특별히 예수 탄생에서 발견됨은 의미가 심장한 일입니다.


하늘엔 하나님의 영광이

그리고 땅엔 사람들의 평화가!


하늘과 땅의 두 갈래는 우주를 감싸는 질서이자 창조 원리입니다. 그러나 어느 한순간 이 노선들이 흔들리며 역전되는 비극이 우주의 한가운데서 일어났습니다.


세상에 죄가 들어온 겁니다. 하늘 영광에 흠결이 생기고 땅은 평화를 잃어버렸습니다. 세상은 고통과 죽음의 장소로 변해 버렸습니다.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십시오. 혼란과 분쟁이 떠날 날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제대로 되려면 영광과 평화, 두 가지 창조의 시스템이 본래의 위치에 자리 잡아야 합니다.


베들레헴의 아기 예수

곧 창조주 하나님이 연약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무질서와 파괴, 죽음으로 치닫는 허망한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를 위해 선행되어야 할 일이 있어요.


인간을 바로잡는 일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구원이라 말합니다. 그 시작이 놀랍게도 이천 년 전 성탄절 첫 번 크리스마스 날에 시작되었습니다.


그때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 처음 한 것이라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누가복음 2:1~3절

개역 개정판 성경


이 본문은 아기 예수가 탄생할 때의 정치사회적 상황을 말해 줍니다. 마치 렘브란트가 연필로 쓱쓱 그려 나가며 그림의 윤곽을 잡아가듯 누가 또한 전체의 스케치만 그려놓고 있습니다.


아구스도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이 사람은 기원전 27년부터 주후 14년까지 로마의 황제였던 아우구스투스 옥타비아누스였답니다. 그가 어느 날 로마 제국 전체를 향해 호적을 명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수레바퀴는 언제나 인간 역사의 도로 위를 지나갑니다. 호적을 하려면 모두 고향으로 가야 했지요. 당시의 법이 그랬습니다.


인간의 제도와 법의 장치는 나사렛 동네 오지에 박혀 살던 요셉과 마리아 부부를 움직여 베들레헴으로 떠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야 구약성경 미가서의 예언이 성취되기 때문입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미가서 5 : 2절

개역 개정판 성경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누가복음 2: 4~5절

개역 개정판 성경



자 이제 길을 떠나는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머나먼 대장정입니다.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 직선거리는 약 120 km입니다.


하지만 두 지경 사이엔 산악 지형이 두텁게 형성되어 있는 데다 사마리아까지 자리 잡은 지라 이런 지역 모두를 빙 돌아서 가야 했습니다.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은 서로 상종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어요.


이러저러한 사정들을 고려해 볼 때 150 ~180km 정도가 실제 도보거리에 해당합니다. 변수는 또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이미 만삭이었어요. 이런 상황이라면 출발부터 빨간색 경고등이 켜진 셈입니다.


이 여행은 인간적 판단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이것 말고도 치명적인 문제는 다른 데 있었습니다.


계절입니다. 팔레스타인의 겨울은 우기임을 아십니까. 12월부터는 비가 많이 내려 지면이 매우 질척거립니다. 땅이 여행자들을 괴롭히는 악재로 변모하는 건 바로 이때입니다. 성탄절이 12월이 맞나요.


이런 반문들이 많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12월이 아닐 이유라도 있습니까. 우리에게는 이천 년간 지속된 교회의 전승을 신뢰할 이유가 충분히 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 부부는 너무도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여행을 위한 말이나 당나귀 따위는 저들에겐 꿈도 꾸지 못 할 사치품이었을 겁니다.


이런 여러 가지 사항들을 고려하지 않고 성경을 읽는 것은 마치 비행기 티켓만 구입해 놓고 옷 한 벌 달랑 입은 채 해외여행 떠나는 사람과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는 누가가 남긴 이 본문을 대하면서 상상의 확대경이 필요함을 느낍니다. 왜일까요. 성경의 특수성 때문이랍니다. 성경은 고도로 압축된 파일 같은 고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경 안에 내장된 본문들을 펼쳐놓고 보면 수천 년 이상의 시간이 들어차 있고 광대한 공간이 펼쳐져 있습니다. 이걸 그냥 건너뛸 수는 없습니다.


상상력이 필요한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음악에도 쉼표가 있습니다. 쉼이 없으면 음악은 불가능합니다. 이처럼 상상력과 묵상은 성경을 이해하기 위한 거룩한 쉼표입니다.


달포 정도에 이르는 여행길을 나선 만삭의 여인을 생각해 보세요. 발은 진흙에 푹푹 빠지고 체력은 금방 바닥난 데다 돈도 거의 없습니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남의 집 헛간 같은 데서 잠을 청합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밤에 지푸라기로 침대 삼고 하늘 구름으로 이불을 삼았습니다. 몸은 점점 탈진해 가는데 마음마저 쓸쓸해집니다.


아 베들레헴은 어디입니까. 하지만 마리아가 누구입니까. 그는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한 성모가 아닌가요. 하늘 문이 활짝 열리면서 하나님의 능력이 마리아를 사로잡았습니다. 영혼 깊은 곳에서 찬양이 터져 나옵니다.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누가복음 1: 46 ~ 48절

개역 개정판 성경


이것이 후세에 두고두고 불려질 마리아의 찬가입니다. 부부는 천신만고 끝에 베들레헴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두 사람 편이 아니었어요.


이 부분을 진술함에 있어 누가는 심드렁하게 한 마디 툭 던지고 지나갑니다. "거기 있을 그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누가복음 2:6).


무심한 듯 아쉽고 감칠맛 나는 듯 가렵습니다. 좀 속 시원하게 긁어 줄 사람 어디 없습니까. 하지만 이것이 성경이 펼치는 세계입니다. 답답하지만 과속은 금물입니다.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누가복음 2: 7절

개역 개정판 성경


이후의 일들은 어떻게 전개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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