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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일리 프로방스 Sep 06. 2024

치료하기 가장 어려운 병

그리스 신화

날갯짓을 하다가 너무 높이 날지 말아라. 그러다간 태양의 뜨거움을 이기지 못해 죽고 말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낮게도 날지 말아라. 땅에 부딪혀 떨어질까 걱정된다.

그리스 신화 이카루스 이야기.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다이달로스는 최고의 장인으로 손꼽힌다. 그는 크레타섬 군주의 명을 받들어 미궁으로 알려진 신비스러운 공간을 지었다.


 다이달로스는 아들 이카루스와 함께 거기에 갇히고 말았다. 희한한 일었다. 자신이 쳐놓은 덫에 걸려들었으니 말이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늘 그렇다.


다이달로스의 미궁만큼이나 비비 꼬여 납득하기 어려운 일들이 많지 않은가. 우리 주변엔 영문을 알 수 없는

사건들이 가을낙엽처럼 수북이 쌓여 있다. 이카루스 이야기도 그중 하나다.



독일 남서부 헨에서 가까운 곳에 조그마한 마을 퓌센이 있다. 유명한 노이슈반슈타인 성이 있는 곳이다. 이 성 하나를 보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탁월한 경관도 일품이지만 이 성의 특특함은 다른 데 있다. 성 내부의 벽을 장식한 다양한 그림들이 그것이다.


거기엔 온통 바그너 오페라 로엔그린의 장면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성의 주인은 바이에른 주의 왕 루트비히 이 세였다. 그는 독일 음악가 리하르트 바그너의 열렬한 팬이었다.


아니 광신도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19세기 음악가 바그너는 독일을 넘어 유럽 전역에 신드롬을 일으킨 문화예술의 BTS였다.


루트비히 이 세는 정치에 관심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것도 전혀. 왕이 정치에 관심이 없으면 어쩌란 말인가. 


정치라면 치를 떨었던 바이에른의 군주는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완공한 직후, 성 문을 놓고 영원한 칩거에 들어갔다. 독일판 미궁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왕은 외부에서 공수해 주는 음식을 받아먹고살았다. 그것도 하루에 한 끼식만. 방문객은 죄다 사절했다. 단 예외가 하나 있었는데 그의 우상 바그너였다.


그는 온종일 바그너 오페라 속의 장면들을 생각하면서 환상 속의 미궁을 거닐었다. 작품의 인물들을 떠올리며 환각 상태처럼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환상과 현실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삶의 기차는  영화 부산행 열차처럼 정신적 좀비의 맹렬한 습격을 받기 마련이다. 이는 거의 자연법칙에 상응하는 일이다.


세상을 등지고 성에 갇혀 로맨틱한 환상에 빠져 지낸 왕은 성에서 내다 보이는 호수에 몸을 던져 영원한 작별을 고하고 말았다. 


자신도 불행했지만, 독일 바이에른 주의 백성들 또한 얼마나 낙담했을까. 사람이란 자신에게 맞는 일이 있는 것 같다. 평안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 아닌가.


자기에게 맞는 걸 제때에 찾지 못하면, 본인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 모두가 불행의 늪지대에 함께 빠질 수 있음을 기억할 일이다.


신화 속 인물이지만 다이달로스가 루트비히 왕의 신세와 공유될 수 있는 부분은 갇혔다는 사실에 있다.


어떤 이유가 되었든 인간이 특정한 시공간에 갇혀 있다고 하는 것은 불행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다이달로스는 바그너에 미쳐서 스스로 생명줄을 끊었던 루트비히 왕만큼 비현실적이지 않았다. 낭만적인 인물은 더욱 아니다.


오히려 그는 지독한 현실주의자였다. 현실적인 사람은 미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 갇혀 있어도 뭔가 수를 내고야 만다. 이점이 중요하다.


다이달로스는 어디서 구했는지 새의 깃털을 모아 밀랍을 바른 다음 나는 날개를 만들어 냈다. 이게 대체 어떻게 가능하냐는 물음은 우문에 지나지 않는다.


 신화 얘기니까 그냥 넘어 가자.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신의 멋진 창작품을 주면서 하늘로 날게 했다. 물론 당부도 잊지 않으면서.



'날갯짓을 하다가 너무 높이 날지 말아라. 그러다간 태양의 뜨거움을 이기지 못해 죽고 말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낮게도 날지 말아라. 땅에 부딪혀 떨어질까 걱정된다'.


드디어 이카루스가 하늘을 날기 시작했다.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사는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구상하기 무려 이 천 년 전에 하늘을 날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세상만사 어디 뜻대로 되던가. 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은 기어코 하는 것이 인간의 뿌리 깊은 심성이다. 이는 신화의 스토리마다 쉼 없이 반복하는 후렴구와 같다.


신바람 날리며 비상하던 이카루스는 그만 아버지의 명령을 잊고 말았다. 더 높이 높이 날아오른 이카루스의 날개가 태양의 열을 견디지 못하면서 땅으로 곤두박질치고 말았던 것이다.


인류 최초의 파일롯이 맞이한 어이없는 종말이었다. 하늘을 날던 이카루스가 졸지에 불귀의 객이 되고 만 것이다.


물속에 몸을 던진 루트비히 왕이나 하늘을 날다 떨어진 이카루스나 불행하긴 마찬가지다. 왜 그랬을까.


이십 세기에 등장한 분석 심리학에 따르면 신화는 인간의 원형을 반영한다. 간단히 말해 인간이라면 누구나 신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성향을 공유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카루스의 신화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전하고 싶은 걸까. 교만! 이카루스 이야기는 교만에 대한 치료책이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주인공 캐릭터들은 대다수가 영웅들이다.


 그들은 대개 신과 인간의 중간정도에 포지션을 두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그들의 치유하기 어려운 고질병은 안하무인식의 교만이었다.


교만은 그리스어로 '휘브리스'hybris다. 이 단어는 영어를 비롯한 유럽의 언어에서 차용하여 쓰고 있다.


플라톤을 비롯한 그리스의 철학자들과 문인들이 수 없이 사용한 단어가 휘브리스다.


교만을 가리켜 그리스 고전 작가들은 한결같이 치유하기 가장 어려운 괴질병 혹은 난치병이라 묘사한다.


암보다 더 무서운 병일지도 모른다. 삼천 년 전 구약성경의 지혜자는 이렇게 경고한 바 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잠 언 16장 18절.


사람은 잘 나갈 때 조심해야 한다. 이걸 누가 모를까. 머리는 인지하는데 몸은 따르지 않는다. 슬프게도 현실이 그렇다.


 막상 날개를 달고 올라가듯 형통한 시절이 다가오면, 평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고 만다. 어깨에 뽕이 들어가고 말과 행실이 거만해지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갑질하기 일쑤다.


수중에 돈이 좀 쥐어지면 심성 좋던 흥부가 심술 많고 거만한 놀부로 변해 버린다. 교만의 놀부맛을 안 사람은 겸손한 흥부로 돌아오긴 매우 어렵다.


이런 것들이 이카루스의 날개다. 절제에 서투르면 교만의 날개는 금방 타버리고 말 것이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조차 없다'.


축구 선수 손흥민이 떠오른다. 그는 지금 대한민국을 넘어 글로벌 스타로 군림하고 있다. 그의 인기의 비결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탁월한 성품, 겸손함에 있을 것이다.


손흥민은 이카루스의 날개를 단 인물이 되었다. 그러나 너무 높이 날지 않는다. 퍼떡거리기 쉬운 교만의 날개를 겸손으로 컨트롤하며 고공비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손웅정 감독은 아들을 앉혀 고 귀가 따갑도록 이렇게 가르쳤단다. " 오직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 셋째도 겸손하라".


 손흥민은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겸손의 날개를 달 수 있었다. 반면 이카루스는 아버지의 당부를 무시하여 교만의 날개로 오르다가 멸망하지 않았는가.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그것이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잠언 3장 1~2절.


잘 나갈 때가 가장 위험한 때다. 하늘을 날 만큼 성공적 인생이 아니어도 괜찮은 일이다. 교만의 난치병에 걸릴 일도, 추락할 염려도 없이 살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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