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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일리 프로방스 Jul 19. 2024

악마는 디테일 속에 숨어 있다.

한 비 자

천하의 어려운 일은 쉬운 데서 이루어지고 큰 일은 반드시 작은 일로부터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사물을 제어하려면 미세할 때 시작해야 한다.


어려운 일을 도모할 때는 쉬운 것에서 시작하고 큰 것을 하고자 할 때는 작은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한 비 자의 <노자에 비유하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다. 거대한 댐의 제방이 개미구멍 하나에 무너진다.  대궐 같은 집을 보라. 작은 불씨가 화근이 되어 잿더미로 변한다.


작고 사소한 일을 무시하면 재난을 피하기 어렵다. 별것 아닌 일에 재앙의 씨앗이 있음을 잊기 쉽다. 한비자는 이 일에 대한 경각심을 높인다. 그가 남긴 이야기를 들어보자.


춘추전국시대 편작이란 이름의 명의가 살았다. 편작이 채나라에 들렀을 때 왕의 몸을 살핀 후 다음과 같이 일렀다.


 '질병이 피부에 있을 때는 찜질로 치료합니다. 살 속에 있으면 침을 꽂아야 합니다. 장과 위에 병이 있다면 약을 달여 복용하면 됩니다. 그러나 병이 골수에 있을 때는 운명을 관장하는 신이 관여한 것이라 어찌할 수 없습니다'.


채나라 왕은 이 말을 불쾌하게 여겨 무시해 버렸다. 얼마 안 가 병이 골수에 까지 파고들자 편작을 불렀다. 그러나 이미 자취를 감춘 뒤였다. 딱하게도 왕은 죽고 말았다.


질병은 피부에 있을 때, 다시 말해 초기에 잡아야 옳다. 마찬가지다. 모든 일은 싹 날 때부터 다루고 해결해야 한다.


 나무도 순이었을 때 다루기 쉽다. 조금만 자라면 단단해지고 가시가 나서 만지다가 해를 입는다.


무슨 일이든 크게 번지기 전 미리 알고 대처하라는 뜻이다. 한비자가 전하는 메시지가 여기에 있다.


작은 일을 경시하다 큰 코 닥치는 경우는 흔하다. 과학적 증거가 뚜렷이 있다. 1: 29: 300의 비율로 나타낸 하인리히 법칙이 그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큰일이 발생하기 전에 300개의 잠재적인 사고가 있다. 대다수가 이를 무시한단다. 악마는 이 지점에 파멸의 발톱을 감추고 있다.


그다음으로 29번의 경미한 사고나 부상이 생긴다. 이 단계를 지나면 중대하고 심각한 사고나 위험스러운 일이 발생한다.


 감당하기 어려운 사태는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사전 경고장이 발부되어 날아온다. 그것도 연속으로. 이런 경고음은 조심하라는 강력한 시그널이다.


이를 무시해 보라. 수습하기 어려운 일들이 터지고 만다. 자동차 운전을 하다 보면 범칙금을 내는 일이 적지 않다.


 이런 일이나 경미한 사고가 연속된다면 큰 사고를 예고하는 신호탄일 수 있으니 조심하란 것이다. 디테일에 각별한 신경을 써야 하는 시점이다.


평소에 무심코 지나친 일들, 사소하지만 부주의했던 일들은 없는지 찾아보아야 한다.



살면서 겪는 가장 큰 고통거리는 질병일 것이다. 암, 치매, 뇌졸중 같은 병들은 아무도 원치 않는다.


이들이 하루아침에 생긴 게 아니다. 불규칙한 생활, 폭식, 야식, 수면과 운동의 부족, 술과 담배 등으로 몸은 이미 적색경고등이 켜져 있었다.


검사상 암으로 진단받으려면 2~30년의 잠복기를 거친다고 한다. 암으로 진단받기 전부터 이미 암이 있었다는 얘기다. 숨어 있다가 겉으로 나타날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이때를 앞당기려면 생활습관을 엉망으로 하면 된다. 작지만 건전한 생활 습관을 무시하고 달리면 질병의 악마는 빠르게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몸에서 일어나는 작은 시그널을 무시할 때 죽음의 그림자는 가까워진다. 큰 것이 아닌 작은 것. 이것이 중요하다.

다음의 격언을 되새겨 보자.


호랑이 꼬리를 보면 그놈이 살쾡이보다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코끼리 상아를 보면 그놈이 소보다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마디를 보면 백 마디를 알 수 있는 것이요. 이로 말미암아 보건대 이미 본 것을 갖고서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을 미리 알 수 있다. 작은 마디를 보면 충분히 큰 몸체를 미리 알 수 있는 것이다.

이 한 우의 설원(상).


미리 헤아리는 일의 중요성을 깨우친 말이다. 호랑이의 꼬리나 코끼리의 상아를 볼 때 두 짐승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결과 두 짐승이 얼마나 무서운 포식자인지 알아채야 마땅하다. 악마는 꼬리와 상아에 숨어 있다. 작은 일 하나만 보고도 큰 일을 짐작해야 한다.


중요한 건 디테일이다. 하나를 알면 열을 보는 안목은 얼마나 필요한가. 특히 사람을 알아볼 때 말이다.


네 귀퉁이가 있는 물건을 갖고서 한 귀퉁이를 들어 보여주었을 때 나머지 세 귀퉁이를 미루어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다시 반복해서 가르쳐주지 않았다.

논 어 술이편.


이 문장도 같은 내용을 반복하고 있다. 네 귀퉁이가 있는 물체가 있다.


그중 한 귀퉁이를 보여 주었을 때 나머지 세 귀퉁이가 어떤 것인지 미루어 짐작해야 한다. 이걸 모른다면 더 이상 가르칠 수 없다는 얘기다.



조선왕조 시대 왕들의 가장 중요한 업무가 무엇이었을까. 놀랍게도 경연이었다.


왕과 신하들이 모여 텍스트를 정하고 그에 관해 여러 시간을 토론하는 장이 경연이었다.


그 시간 '대학연의'라는 책은 언제나 필수과목에 들어 있었다. 그중 한 구절을 살펴보자.


초창기에 어찌 반드시 그의 마음속에 나라를 찬탈하려는 뜻이 있겠는가.


서리를 밟았을 때 추위가 찾아오리라는 것을 경계하지 않으면 그것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점점 얼음이 된다.

진 덕 수의 대학연의.


이 문장은 왕권을 찬탈하는 반역사건에 대한 것이다. 그걸 미리 알고 대비하란 뜻이다.


처음부터 반역을 도모하는 자는 없다. 어떤 계기가 되어 배반의 움이 트고 싹이 나면서 반란의 거대한 나무로 자라 간다.


처음부터 도둑으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되는 것이다. 이런 일에 대해 경계가 늦으면 화를 입게 된다.


대학연의의 저자는 임금에게 당부한다. 서리를 밟을 때 겨울을 내다보라고. 서리가 내리는 평화로운 때에 반드시 반역의 겨울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자질이 없는 임금은 반란의 희생물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인리히 법칙이 정치에 적용된 케이스다.



개인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어떤 사람에게 작은 일을 맡기고 지켜보라. 그렇다면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은 이 문제를 매우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누가복음 16장 10절.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마태복음 25장 21절.



어떤 주인이 여러 사람들에게 일을 맡기고 먼 곳에 가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 결과를 보고 받았다.


그중 작은 일에 충성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주인에게 칭찬 듣고 마땅한 상을 받았다.


그러나 이 문장의 진정한 뜻은 다른 데 있다. 어떤 사람이 작은 일에 임하는 자세를 보면, 큰 일에 대한 일처리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한 가지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 구절은 더 중요하다.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누가복음 19장 17절.


이 본문 역시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한 자가 받은 상급을 다루고 있다. 그가 행한 일이 대단한 것은 아니다.


다만 남들이 지나치거나 무시해도 상관없을 만큼의 작은 일에 최선을 다 했다는 점이다.


여기서 '작은 것'이란 어휘를 눈여겨보아야 한다. 그리스어 '미크로스'(mikros)의 번역어다.


이 단어는 사소하면서 작은 일, 미세하면서도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 따위를 뜻한다.


영어의 micro가 여기서 파생되었다. 오늘날은 마이크로 월드의 세상이다.


컴퓨터 자동차 반도체 인공지능에 이르기까지 마이크로 프로세서 기능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가 되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의 작은 미시세계, 마이크로 칩이 세상을 움직여 나가고 있다.


로켓이나 우주선 같은 거대한 우주 프로젝트를 가능케 하는 것도 마이크로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다. 가장 작은 것이 가장 큰 일을 창조하고 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커다란 사건도 알고 보면 미세하면서도 작은 일에서 시작되었다. 이걸 누가 부인하겠는가.


그러니 작다고 어찌 무시할 수 있겠는가. 오늘도 악마는 디테일 속에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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