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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일리 프로방스 Jun 21. 2024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 지인지감

논어의 지인지감

그가 행하는 바를 보고 그 말미암은 바를 살피며 그가 편안해하는 바를 들여다본다면 사람이 어떻게 자신을 숨기겠는가? 사람이 어떻게 자신을 숨기겠는가?

논어 위정 10.


"저 사람이 과연 누구일까. 믿어도 되나. 이 일을 맡길 수 있을까. 혹시 내 재산을 몽땅 털어가는 건 아닐까. 어쩐지 인상이 맘에 안 든단 말이야...".


한 번쯤 이런 갈등과 고민 없이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인지감이란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을 가리킨다.


이 단어 속엔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도의 능력이 함축되어 있다. 지인지감의 자질을 갖춘 사람은 성공의 길에서 그리 멀지 않다. 그와 비례해 사람을 알아본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옛 왕정시대에 임금에게 요구된 최고의 덕목이 지인지감이었다. 인사관리를 주관하는 정승을 누구로 할 것인가.


통치의 모든 성패가 여기에 달려 있었다. 이거 하나만 잘해 놓으면 만사는 순풍대로를 탄다. 인사가 만사인 거다.


그 반대라면 혼란은 불 보듯 뻔하다. 권력의 위기가 엄습하는 것이다. 하여 논어는 이렇게 말한다.


정치를 함에 있어 덕으로 한다는 것은 비유하자면 북극성이 자기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서 뭇별들이 그것을 둘러싸고 도는 것과 같다.

논어 위정 1편.


북극성이 자기 자리에 가만히 머물러 있듯이 왕은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인지감을 잘 발휘하여 온전한 인사등용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치의 핵심이 뭘까. 인사문제다. 통치자에게 지인지감의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가 관건인 것이다.지도자의 리더십이란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고 제대로 쓸 줄 아는 데 있다.


대한민국의 문제는 언제나 정치에 있다고들 말한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여기에 합격점을 받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어디 정치뿐이랴.


고대 그리스에서 연극배우들은 가면을 쓰고 무대에 서야 했다. 그 가면을 '페르소나'라 불렀다.


 '페르소나'는 특정 캐릭터의 성격이나 감정상태, 사회적 지위등을 나타내는 상징물이기도 했다. 여기서 나온 단어가 인격을 뜻하는 퍼스낼리티(personality)다.


이 말은 가면을 쓴 존재란 뜻이다. 우리가 평상시에 만나는 사람들은 죄다 가면을 쓰고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진정으로 사람을 알아보려면 그가 쓴 가면을 벗겨내야만 한다.


오천 원권 지폐를 장식한 율곡 이이는 지금까지도 위대한 인물로 추앙받고 있다. 그런 율곡조차 흠이 없던 건 아니었다. 지인지감의 능력이 부족했던 탓이었다.


당시 선조 임금은 이이를 이조판서에 등용했었다. 이조판서는 문관의 인사를 책임지는 최고 책임자 자리였다.


오늘날 대통령 비서실에 해당하는 핵심요직이었다. 판서 자리에 오른 이이는 선조에게 정여립을 쓰자고 추천했다.


안타깝게도 정여립은 겉과 속이 다른 배신의 아이콘 같은 인물이었다. 이이가 살았을 때 그를 공자에 견줄 정도의 인물이라 칭송하더니 그가 죽자마자 헐뜯기 시작했다.


율곡은 자신을 떠받들어 칭찬하는 정여립의 말에 혹했을 수 있다. 이유야 어쨌든 이이는 사람을 잘못 본 것이다.


 지인지감의 능력이 떨어졌던 것이다. 이 점은 율곡의 이력에 지울 수 없는 흠이 되고 말았다.


선조는 정여립의 이중성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그를 관직에 등용하지 않았다. 이리저리 출세를 도모하다가 선조의 눈 밖에 난 정여립은 낙향하여 비명횡사하고 말았다는데.


이로 미루어 보아 사람 보는 능력에서 율곡보다 선조가 탁월했던 것이다.

 

가면 속에 숨은 인간의 참모습을 읽어내는 능력 지인지감. 그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그 방법을 논어에서 제시한다.


상술한 논어 위정 10편은 세 단계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첫째 그가 하는 행동을 보라.


사람은 공적인 영역에서는 자신을 철저히 감춘다. 모두가 친절과 웃음의 가면을 쓰고 있지 않은가.


그를 제대로 알려면 사적 공간에서 보아야 한다. 지인을 통해서라도 알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의 행동거지에서 문제가 드러나는데도 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그건 순전히 자기 책임이다.  


미국 메이저 리그를 대표하는 오타니 쇼헤이 선수는 고등학교 시절 자신이 성공하기 위한 방법을 노트에 기록하며 실천해 나갔단다.


쓰레기 줍기, 다른 사람에게 먼저 상냥하게 인사하기, 심판에게 너무 심하게 불만을 표출하지 않기, 독서하기 등이 그것이었다.


모두 싸가지 있는 행동들이 아닌가. 어린 나이지만 말이다. 사람을 제대로 알려면 감추어진 이런 면을 놓쳐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 한 가지가 또 있다. 말의 문제가 그것이다.


"사람의 말을 모르면 그를 알 수 없다."

 논어 요왈 3편.


말은 행동에 앞선다. 행동을 보고 판단하면 이미 늦다. 따라서 말을 듣고서 사람을 진정으로 알지 못한다면 그에 대해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상대가 무심코 던지는 농담, 평소의 말투, 술 취한 상태에서의 말 등. 이런 것들을 종합해 보면 어느 정도의 견적이 나올만하다.  


둘째 그가 하는 말과 행동이 어디서 비롯되었는 지를 찾아내라.


이것은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쉽게 판단하지 말라는 뜻도 담겨 있다. 사람의 속과 겉은 늘 다른 모습일 수 있으니 속기 쉽다. 다음의 가르침을 보자.


"얼굴빛은 위엄을 보이면서 내면이 유약한 것은 벽을 뚫고 담을 넘는 도둑놈 같다".

논어 양화 12.


겉으로는 위엄과 강경한 빛을 띠면서 마음은 음흉하여 세상을 속이고 술책을 꾸미는 사람이 여기에 속한다.


이런 인물은 평소엔 자기 속을 살짝만 드러내면서 결정적 순간에 마각을 드러낸다. 겉으로는 남의 아픔에 눈물을 보이면서도 속으로는 그걸 이용해 잇속 챙길 요량으로 칼을 갈고 있는 사람이다.


참으로 무서운 존재가 아닌가. 오너의 입장에서 이런 류의 사람에게 경영권을 맡긴다고 생각해 보라. 끔찍한 일이 따로 없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생전 "세상을 바꾸는 도구를 만들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말뿐만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 제품 개발과 경영 방식에 그대로 반영했다.


그의 말은 직원들과 팔로워들에게 큰 신뢰감을 주었고, 애플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그의 진정성이 평가받은 것이다.


 사회생활이나 기업경영에 있어서도 문제와 갈등은 피할 수 없다. 겉으로는 갈등을 해결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문제를 회피하거나 상대방을 비난하는 태도를 보인다면, 이는 진정한 해결 의지가 부족하다는 신호일 것이다.


셋째 그가 한 행동이 우러나서인지 남을 의식해서 연출한 것인지를 가려내라.


이는 사람을 알아보는 단계에서 가장 어려운 지점이다. 마음의 눈으로 본다는 뜻이니 말이다.


그의 행동이 진심에서인지 가식적인 지를 어떻게 판단할 수 있단 말인가. 다시 말해 진짜 옥석을 어떻게 가리는가.


다음 구절은 옥석 같은 사람이 누구인지 그 기준을 제시한다.


"남들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아도 속으로는 서운해하는 마음이 없으면 진실로 군자가 아니겠는가."

논어 학이 1편.


속으로 서운해한다는 것은 분노처럼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속으로 꽁하고 열받는 걸 뜻한다.


이런 사례는 흔히 볼 수 있다. 실컷 일을 했는데 알아주기는커녕 쓴소리를 듣는다면 열받을 것이다. 겉으로는 참는 척 해도 말이다.


어려운 일지만 그렇지 않은 마음의 소유자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인물을 알아보려면 먼저 내가 거울 같이 맑은 마음상태를 가져야 한다.


그래야 상대를 알아볼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수준의 지인지감 능력은 아득히 높아 보인다.


관상학이란 분야가 있다. 사람의 얼굴을 자세히 관찰하여 성격과 운명을 내다보는 일종의 유사과학이다.


 관상학이 통계학적 데이터를 근거로 한다면 점쟁이의 사람보기는 순전히 감에 의존한다. 둘 중 어느 것도 확실치는 않다.


이래 저래 사람을 아는 일은 힘들고 정밀한 작업이다. 어느 대기업에선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관상 보는 사람과 영험한 점쟁이(?)를 대동한다는 말이 있다.


우스꽝스러운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사람 알아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우면 그럴까.


후삼국시대의 한 축을 이루었던 궁예는 관심법을 쓰다가 멸망을 자초했다. 궁예는 자기 주변의 어떤 사람도 믿지 못했다.


이런 특징은 독재자들의 말기에 흔히 볼 수 있든 현상이다. 세상에 믿을 놈은 아무도 없다는 생각으로 파멸의 담을 높게 쌓아 올리는 것이다.


내면의 인격이 어두워지고 악해지다 보니 사람 보는 눈은 더욱 깜깜해지고 닫혀 버린다. 독재자들의 말로가 험악해지는 건 지인지감에 완전히 실패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고수란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을 지칭한다. 오랜 세월 농축된 경험과 통찰력으로만 가능한 일이다. 그런 견지에서 사채업자도 전문직에 속하는 고수라 말할 수 있겠다.


돈을 빌려줄 때 떼어먹고 도망갈 사람인지, 갚을 사람인지를 특유의 감으로 알아낸단다. 그 정도 되니까 그토록 험한 생태계에서 생존이 가능할 것이다.


물건을 보는 일에 남다른 식견과 판단력을 가졌을 때, 그것을 지물지감이라 한다. 지물지감의 혜안을 가져야만 명품도 알아볼 수 있다.


세상은 보는 시각과 그에 따른 판단에 의해 모든 게 달라진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고도 비범한 능력은 사람을 알아보는 일, 지인지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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