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의 풍경 25

여름 저녁의 골목

by 도린

뜨겁던 태양 아래
새까맣게 그을린
너와 나의 얼굴

해거름에 들려온
방역차 소리에
우르르 달려가던 개구쟁이들

팔다리 흔들며
크게 크게 입 벌려
모기보다 먼저 들이킨
하얀 방역가스

몽글몽글 장난기가 발동해

깔깔 대며 웃다가
애앵- 모기 흉내 내다가

알싸한 냄새가 코를 찌르지만
우린 모두
구름 속을 걷는 신선이 되고
투명인간이 된다

한참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다른 마을 어귀
소독이 멈추면
못내 아쉬운 발길

슬그머니 사라진
뽀얀 연기처럼
시나브로 저물어 가던 여름날

미련 한 줌 안고
털레털레 집으로 가는 길


굴뚝마다 저녁밥 짓는

구수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잊고 있던 엄마 생각에
가슴이 노골노골 데워온다


1970년대 여름, 골목을 가득 메우던 하얀 연기는
모기와 유충, 그리고 뇌염 같은 전염병을 막기 위해
경유나 등유에 살충제를 섞어 고온으로 가열해 내뿜던 방역차의 숨결이었습니다.
차량에 실린 소독기가 뿜어내는 연기는
마을 구석구석을 살충하며 여름을 지켜 주었지만,

어린 우리들에겐 그저 구름 속을 걷는 듯한 신기한 놀이마당이었지요.
지금은 사라진 풍경이지만,
그 하얀 연기 속에서 깔깔대며 달리던 기억만은
아직도 오래된 여름의 냄새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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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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