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의 풍경 27

친구 3

by 도린

임이 이야기


자갈밭의 선


드라마나 영화, 혹은 가수로 대중의 사랑을 받던 연예인들이 가끔 학폭 논란으로 하차하거나 물의를 빚곤 한다.

내 학창 시절을 돌아보면, 학폭이라 할 만한 사건은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분단별로 6~7줄로 배치된 교실 뒤편, 키가 크고 덩치 좋은 친구들 가운데 껄렁껄렁하고 공부에 관심 없는 무리들이 있긴 했다.


국민학교 5학년 초여름의 일이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모두 구봉산 자락 냇가로 모이라는 전갈이 돌았다.

편 가르기를 좋아하고 샘이 많던 숙이라는 아이가 주동이었다.

학급 전체가 책가방을 멘 채 자갈밭으로 몰려갔다.


키가 제일 컸던 친구가 커다란 돌멩이로 자갈 위에 선을 쓱 그었다.

숙이는 임이만 저쪽으로 밀어세웠다.

우리에게는 한 사람씩 임이와 손가락을 걸고 “백 년 가도 안 논다”는 맹세와 함께 침을 뱉으라 강요했다.

공부도 늘 상위권이었고, 천성이 착하고 상냥해 선생님의 칭찬을 받던 임이를 향한 질투였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그 선을 넘어 임이 옆에 섰다.

그날, 돌멩이로 그은 자갈밭 위의 선은 단순한 경계가 아니었다.

질투와 두려움, 선택과 용기의 무게가 동시에 담긴 선이었다.

학급 친구들의 손가락 댓기와 침 뱉기 저주를 고스란히 받아낸 후, 우리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대학에서 다시 만나다


중학교까지 함께 다녔지만, 고등학생이 되면서 나는 안동으로, 임이는 대구로 진로가 갈리며 자연스레 만남이 뜸해졌다.

그러다 대학에 들어가서야 다시 만남이 이어졌다.

재수를 한 나와 입학 시기가 달랐지만, 같은 대학교 동아리에서 임이와 마주친 순간, 우리는 단번에 서로를 얼싸안았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준비하며 도서관을 오가던 우리.

그 속에서도 예전처럼 웃고 떠들며 서로를 가까이 느꼈다.

동아리에서 함께 활동하던 지금의 남편은 임이를 볼 때마다 “선배님~” 하며 꼬박꼬박 존댓말을 했다.

오뉴월 하루 땡볕이 무서운 줄 알던 청춘의 한가운데, 반말을 주고받던 우리 사이에 연하 남친이 예의를 다하며 임이에게 굽신거리는 모습은

쏠쏠한 재미를 더하는 관전포인트였다.




서로 다른 신앙, 변치 않는 우정


대학시절에 다시 만난 임이는 불교 신자가 되어 있었다.

지금도 다도와 명상에 깊이 심취해, 차를 우리는 손길에도 마음을 담아내며 고상하게 나이 들어가고 있다.

나는 국민학교 2학년 때 스스로 교회를 다녔지만 임이의 권유로 처음 어린이부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어린이 성가대, 성경퀴즈 대회, 성가 경연대회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며 교회생활에 열심을 내었고, 성경말씀을 나의 삶의 기준으로 삶아 마침내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

임이가 건넨 믿음의 씨앗이 내 삶을 바꾸어 놓았고 시간이 흘러 목사의 아내가 되었다.


서로 다른 신앙의 길을 걸었지만, 종교의 경계는 우리의 우정에 단 한 줄의 선도 긋지 못했다.

기도와 명상이 각자의 방식으로 마음을 닦아가는 것처럼, 우리는 서로의 삶을 존중하며 함께 늙어가고 있다.





선과 마음


친구와 친구를 가르는 선,

신앙과 신앙을 갈라놓는 선.

그러나 마음을 나누고 함께하는 일에는 선을 그어 나누는 어떤 이유도 명분도 되지 못한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선이란 허물라고 있는 것이라 하셨다.

설사 선이 내 앞에 있더라도, 옳은 편에 서라고 하셨다.


한국 방문을 앞두고 있으니, 꼭 만나야 할 사람들이 줄줄이 떠오른다.

그중에 당연히 임이도 있다.

친구야, 이번에도 밤새 차를 마시며 우리의 옛이야기를 진하게 우려내 보자꾸나.

선? 현혹되지 말자. 뭣이 중헌디.

결국 중요한 건 사람이고, 마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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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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