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2
못 말리는 친구, 진
내가 살던 동네엔 초등학교가 세 개 있었다. 남쪽엔 남부초등학교, 북쪽엔 북부초등학교, 그리고 그 사이엔 중부초등학교가 중앙통을 중심으로 나란히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남부초를 다녔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여학생은 여중, 남학생은 남중으로 가게 되어 세 학교 아이들이 한데 모였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교회에 다녔고, 동화구연대회나 웅변대회로 학교 대표로 나가다 보니, 중학생이 되기도 전에 이미 다른 초등학교 아이들과도 친하게 지내는, 말하자면 ‘핵인싸’였다.
중학생이 되고 나선 남중학교 다니던 머슴아들과도 어울리는, 소위 남사친들도 여럿 있었다. 그중에서도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교회에서 함께 어울리던 친구들과는 그야말로 죽고 못 사는 사이였다.
그중에서도 ‘진’.
나와 함께 “나중에 연극영화과를 가던지, 아니면 코미디언이 되자”라고 다짐했던, 우리 팀의 웃음 담당이었던 '남자 사람 친구'를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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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이면 우리는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교회에 모였다. 중·고등부 예배실을 청소하고, 주보를 끌필로 새겨 등사기로 밀고, 세등분으로 접어 놓고, 학교 공부와 게임까지—그게 늘 우리들의 주말 루틴이었다.
그날도 토요일 방과 후 교회에 모였는데, 남학생 둘, 진과 영이 오후 늦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농구부 기숙사에서 합숙 중이던 터라 훈련이 길어진 줄만 알았다.
해가 기울 무렵, 헐레벌떡 진과 영 두 친구들이 나타났다. 진은 창백한 얼굴에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야, 나 죽다 살았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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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은 이랬다.
점심때 학교 식당에서 농구부 머슴아들이 모여 ‘누가 비빔밥 많이 먹나’ 내기를 했단다. 합숙하는 운동부 학생을 위해 고봉밥에 구내식당 아줌마의 인심이 더해져 각종 나물들이 산더미 같이 올려진 비빔밥을 향해 먹성 좋은 산적 여섯이 돌진했고, 세 그릇째부터 탈락자가 속출. 다섯 그릇째에 남은 건 진과 또 한 명의 머슴아.
결국 상대가 포기하고, 진은 비빔밥 여섯 그릇 반을 먹고 의기양양하게 방으로 돌아와 곯아떨어졌다.
문제는 그다음.
교회에 가자고 진을 깨우러 간 영이, 남산만큼 불룩 솟아오른 배에 식은땀과 함께 끙끙거리는 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얼마나 부풀어 올랐는지 산달이 다된 만삭의 임산부처럼 부풀어 오른 배로 인해 윗도리의 단추가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영은 그대로 진을 들쳐 업고 병원으로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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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를 목에 두르고 진료실로 들어온 의사가 진의 배를 ‘톡톡’ 튕기니, ‘퉁퉁’ 북소리가 났다.
잠시 후, 의사의 지시를 따라 간호사가 커다란 대야에 비누물을 개고, 석유펌프 같은 도구를 들고 들어왔다. 넘사 시럽고 굴욕적인 비눗물 관장이 끝난 뒤 간호사의 엄중한 한마디,
“30초 전에 볼일을 보면 비눗물만 나옵니다. 꼭 30초는 버티세요.”
진은 병원 뒤 푸세식 화장실로 영의 부축을 받아 들어갔다. 여삼추 같은 30초를 겨우 세고는 영에게 말했다.
“야, 내 대구빡을 쎄~게 한 대 쳐라.”
'퍽!'
그 순간, 머릿속에 한줄기 섬광 같은 불이 번쩍 켜지고, 그걸 신호로 비빔밥 여섯 그릇 반이 폭포수처럼 깊은 심연으로 쏟아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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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고 보면 내 배가 크긴 큰가 벼. 비빔밥 여섯 그릇 반에 비눗물 한 대야까지 다 들어갔으니.”
그 광경을 상상하던 우리는 웃음이 터져 웃고, 기가 차서 또 웃고 또또 웃었더랬다.
하지만 죽을 고비를 넘기고 돌아온 진, 그리고 무거운 진을 업고 병원까지 뛴 영—둘 다 얼마나 반갑고 고맙던지,
그리고 나는 안다. 그날의 진은 단순히 ‘못 말리는 친구’가 아니었다.
그는 나와 함께 코미디언의 꿈을 꾸던, 우리 팀의 영원한 웃음 파트너이자 나의 유일한 적수였다.
물론, 내 유머 감각은 자칭 ‘늘 1등’이었지만. ㅎㅎ
PS.
지금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가, 한때는 KBS 공채 탤런트로 활동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국방부 국방홍보원에서 제작한 드라마 *〈배달의 기수〉*에서 인민군 역으로 서너 차례 출연하며 우리 친구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舞台 위든 屏幕 위든, 그는 여전히 나의 영원한 웃음 파트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