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더해지는 섬

올레 10-1코스

by 에우름

모슬포항에서 가파도로 가는 여객선에 올랐다. 내가 걷게 될 길은 가파도 올레 10-1, 섬을 한 바퀴 도는 4.2킬로미터였다.


소형 여객선은 1층과 2층에 실내 좌석이 있고 2층 밖에는 작은 갑판이 있었다. 전날 섶섬을 바라보며 걸었던 올레 6코스 해안과는 다른 바닷바람이 거세게 불었고 파도는 거칠게 밀려왔다. 가파도까지 15분이라는 안내 방송을 들으며 갑판에 앉아 있었지만 오래 버티지 못해 결국 실내로 들어갔다.


가파도(加波島). 가오리 모양의 이 섬은 이름 그대로 파도가 더해지는 곳이었다. 모자는 아무 소용이 없어 귀와 머리를 감싸는 워머를 단단히 눌러썼다. 해안가를 걷는 내 앞쪽으로 들이치는 하얀 포말이 통쾌했다. 파도는 막혀 있던 마음길을 뚫어주려는 듯 거듭 밀려왔다.


올레길은 S자 형태로 해안과 섬 내륙을 지나 다시 해안으로 열려 있었다. 낮은 빛바랜 지붕과 돌담 사이 골목길을 지나 섬 중심부의 높은 지대로 들어섰다. 그곳에는 툭 트인 밭이 있었다. 가파도는 초록의 청보리밭이 아름답다고 하지만, 나는 사람들이 북적이는 그 풍경보다 누런 빛으로 텅 빈 밭에서 더 편안했다. 밭 사이로 난 좁고 긴 길을, 바람을 동무삼아 걷고 있었다.


자전거를 빌려 섬을 도는 가족, 화사한 옷차림의 중년 부인들, 한쪽 무릎을 꿇고 할머니의 사진을 찍어 주는 할아버지. 해안가에서 지나쳤던 사람들은 섬 안쪽까지는 들어오지 않고, 해안 가까이에 모여 있는 짬뽕집과 커피 가게 주변에 머물 뿐이었다. 나는 올레길을 걷기 위해 섬의 중심으로 들어왔고, 파도가 내어 준 마음길을 거침없는 바람이 마저 쓸어 주었다.


가파도에서의 두 시간은 내게 제주 해안길보다 더 선명했다. 잔잔한 물결로는 다듬어지지도, 달래지지도 않던 답답함이 거센 바람과 파도를 맞으며 휩쓸려 갔다. 그날의 성난 가파도는 내게 특별한 섬이었다.


울고 싶을 때는 차라리 뺨을 맞는 것이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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