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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고의 교사 Apr 17. 2023

2022. 4. 6. 수요일. 육아일기.

이성의 끈을 놓아버리다.

  맞벌이 부부의 출근은 전쟁 같다. 매일 우리 집 아침 일과는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나와 아내는 6시 30분에 일어난다. 기상 후 아내는 아이들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출근 준비를 시작한다. 아내가 아이들 아침밥을 차리는 동안 나는 씻고 아이들을 6시 50분에 깨운다. 도담(첫째)이와 봄봄(둘째)이는 보통 10분 정도 침대에서 꼼지락거리다가 7시가 되면 거실로 나온다. 잠이 덜 깬 상태로 식탁에 앉아 두 아이는 아침식사를 하고 나는 예쁜 천사들이 아침 먹는 과정을 도와준다. 아이들이 아침밥을 먹고 있는 도중에 출근 준비를 끝낸 아내는 7시 20분쯤 집을 나선다.


  7시 25분에 아이들의 식사는 끝난다. 식사가 끝나자마자 도담이와 봄봄이가 차례대로 씻고 옷을 입는다. 등원 준비를 모두 끝내고 7시 45분이 되면 집에서 출발한다. 도담이와 봄봄이는 매일 7시 55분에 유치원에 들어가는데 언제나 1등이다. 아이들 들어가는 뒷모습을 보고 나도 학교로 출근한다. 학교에 도착하면 8시 20분(참고로 내가 근무하는 학교의 출근 시간은 8시 20분이다.)이고 도착하자마자 쉼 없이 곧바로 아침 조회를 하기 위해 학급에 입실한다. 매일 이런 과정을 보내다 보니 학교에 도착하면 선생님으로서 하루 일과를 힘차게 시작해야 하는데 이미 진이 빠진 상태가 된다.


  매일매일 힘든 등원과 출근을 해내고 있는데 가끔씩 도담이와 봄봄이가 꾸물거리거나 짜증을 부리면 나도 모르게 이성의 끈을 놓아 버리는 경우가 생긴다. 아이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어른도 일어나기 힘든 시간에 일어나서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상황이 당연히 힘든데, 나 역시 몸이 힘들고 출근시간의 압박을 받다 보니 이성적인 판단이 순간적으로 마비되고 욱하는 감정이 나를 집어삼킨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욱하는 감정이 나를 집어삼켜버린 날. 아침에 일어나서 밥 먹을 때까지는 도담이가 꾸물거리고 답답하게 행동하더니 양치질을 할 때에는 봄봄이가 바통 터치를 했다. 봄봄이는 본인이 좋아하는 바나나향이 나는 뽀로로 치약으로 양치질을 잘하는 편이다. 그런데 오늘은 난데없이 바나나 치약으로 양치질하면 구역질이 난다며 본인이 낼 수 있는 모든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다. 여기까지는 아이들의 입장을 생각하며 잘 참았다. 하지만 아이들 옷을 갈아입힐 때 일이 터지고 말았다.


  8시 20분까지 출근하기 위해 내가 정한 마지노선은 7시 45분이다. 그 시간에 집에서 출발해야만 나는 지각하지 않고 8시 20분 전에 도착할 수 있다. 그런데 7시 40분인데도 도담이와 봄봄이는 피곤하다며 거실에 누워 있었고 그 모습을 보자 순간적으로 이성의 끈이 '툭'하고 끊어졌다. 결국 봄봄이는 울면서 유치원에 들어갔고 나는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출근했다.


  출근하는 차 안에서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7살, 5살 아이가 오전 6시 50분부터 잠을 깨기 시작해 7시에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일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이른 아침부터 시작하는 아침 일과를 힘들어할 텐데 도담이와 봄봄이는 매일 아침을 무난하게 보낸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두 녀석이 정말 힘들고 지칠 때 오늘처럼 행동하는 것인데, 나는 대부분의 잘한 날 보다 어쩌다 발생하는 오늘 같은 상황에 더 집중해 아이들을 혼낸 것이다. 나는 아직 아빠가 되려면 멀었나 보다.


  도담, 봄봄아! 오늘 너희에게 화를 낸 일 정말 미안해! 말로 표현은 못했지만 사실 아빠가 너희 둘에게 참으로 고맙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 힘든 아침 일과 속에서도 아빠 말을 잘 따라주어서 말이야. 매일 아침이 힘들 텐데 아빠 믿고 따라와 줘서 고맙다. 정말 사랑해 도담, 봄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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