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고의 교사 Apr 17. 2023

2022. 4. 9. 토요일. 육아일기

아빠는 초능력자

  오늘은 처남의 결혼식이 있는 날이다. 어제 아내와 이야기를 나눈 후 아이들의 체력을 고려하여 두 그룹으로 나누어 출발하기로 했다. 아내는 결혼식 준비를 위해 필요한 시간이 많아 먼저 출발하고 나와 도담(첫째), 봄봄(둘째)이는 잠을 푹 자고 여유롭게 준비하여 결혼식 시간에 맞추어 출발할 예정이다. 아이들이 엄마 시간에 맞추어 결혼식장에 일찍 도착하면 예식이 시작하기도 전에 지쳐버릴 것만 같았다.


  평소 주말 오전보다 부지런히 움직였다. 결혼식장이 집에서 차로 1시간 20분 정도 되는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시간이 더 걸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푹 자고 일어난 두 아이에게 아침밥을 먹이고 서둘러 준비한 후에 결혼식장으로 출발했다.


  도담이와 봄봄이가 각각 7살, 5살이 되어 많이 성장하긴 했지만 아직 어린아이들이라 자동차를 오래 타면 굉장히 힘들어한다. 아이들이 칭얼대거나 힘들어할 때면 보조석에 타고 있는 아내가 아이들에게 간식거리를 주거나 아이들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며 달래주는데 오늘은 나 혼자 두 역할을 다 해야 한다. '아이들이 잘 해내겠지' 하는 믿음과 '과연 잘 버틸까'하는 걱정을 반반씩 가슴에 품고 출발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출발한 지 30분도 안되었는데 두 녀석이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


 '망했다……'


  아내가 없는 상황에서 운전에 집중하며 '먹을게 먹고 싶다', '졸리다', '햇빛이 눈부셔서 커튼을 설치해 달라' 등등의 칭얼거림에 대처하기가 정말 어려웠다. 게다가 우리 아이들은 본인들이 원하는 요구사항을 누군가 들어주지 않는다면 들어줄 때까지 똑같은 말을 계속 반복한다. 똑같은 음성을 계속 되풀이하는 녹음기처럼 지치지도 않는다. 두 아이가 반복하는 말을 계속 듣다 보면 정말 혼이 내 몸에서 빠져나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내가 가진 아빠능력치를 뛰어넘은 초능력을 발휘했다. 아이들의 요구 사항에 말로 침착하게 달래고 대응한 뒤에 신호 때문에 차가 멈출 때마다 아이들의 요구사항을 하나씩 처리해 주었다. 마치 킬러가 되어 나의 혼을 빼놓은 아이들의 요구사항을 하나씩 처리해 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 모습이 멋있다.


  길고도 험난했던 1시간 20분이 지나고 예식장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안도의 한숨이 나왔고 내 온몸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었다. 육아를 하다 보면 순간순간 정신이 쏙 빠지는 상황이 생긴다. 이때 아이들에게 화를 내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나를 힘들게 만들던 상황이 끝나있다. 이런 상황들을 대처하는 경험이 내 안에 쌓이다 보면 어른으로서, 두 아이의 아빠로서 성장하는 것이 아닐까?


  결혼식장에 도착하고 어른들께 인사를 한 뒤에 도담이와 봄봄이는 우리가 준비해 간 예복으로 갈아입었다. 두 녀석 모두 한 번도 입어본 적이 없는 멋지고 예쁜 턱시도와 드레스를 입어서 그런지 매우 신나 보였다. 이 옷을 매일 입고 싶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삼촌의 결혼식은 무사히 잘 마무리되었고 우리 가족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 결혼식은 매형의 신분으로 참석했다. 먼 훗날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일이겠지만 도담, 봄봄이가 결혼할 때에는 혼주로서 참석을 하게 될 것이다. 자녀를 둥지에서 떠나보낼 때 어떤 감정이 내 안에서 피어오를지 지금으로서는 전혀 알 수 없다. 그 시기가 되어야만 알 수 있겠지. 결혼은 너무 먼 미래의 일인 것 같고 얼른 두 녀석이 20대가 되어 온 가족이 모여 맥주나 한잔하고 싶은 밤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2022. 4. 6. 수요일. 육아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