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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니의 글적글적 Feb 16. 2023

라이언 일병 구하기 다음, 포켓몬 빵 구하기

마흔 살 힐링담론:  잘한 일



  

  거리에는 오가는 사람 하나 없이 차분한 평일 오전이었다.

나는 우리 동네 m 편의점 앞에 도착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유리문을 살며시 밀어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편의점 안이 고요했다. 


  “저... 저기요. 혹시, 여기 포켓몬 빵 있나요?”

  나는 진열된 상품들에 멀찍이 떨어져 허공을 대고 말했다.

  “아니요.”

  곧 정적을 깨뜨리는 인기척이 났다. 나는 그 소리를 찾으려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때였다. 계산대 너머 카운터 밑에서 시커먼 무언가가 불쑥 솟아올랐다. 편의점 직원이었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주부로 보이는 직원은 편안해 보이는 인상이었지만 목소리는 건조하게 느껴졌다.

  “벌써 다 나갔죠.”

   직원이 말했다.

  ‘아뿔싸’ 오늘로 포켓몬 빵 구하기 네 번째 실패다. 나는 포켓몬 빵을 사기 위해 며칠 동안 하이에나처럼 동네 편의점과 마트를 어슬렁거렸지만 오늘도 기대했던 대답은 듣지 못했다. 포켓몬 빵이 요즘 대세는 대세인가 보다.    

 

  “그럼 혹시 빵이 언제 들어오나요? 입고 시간이 언제죠? 그리고 여긴 몇 개씩 파나요?”

나는 마치 사건 속의 범인이라도 찾듯 편의점 직원을 채근하기 시작했다. 포켓몬 빵의 품귀현상이 편의점 직원과 관련이라도 있는 듯 말이다.

  “그건 저희도 모르죠. 납품업체 마음이에요. 정해진 시간도 없고요. 혹시 들어온다 해도 물량이 적어서 사실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직원은 그동안 나 같은 손님이 적잖이 다녀간 듯 녹음기를 틀어 놓은 마냥 감정 없는 이야기를 술술 해댔다. 나는 '그냥 이대로 간다면 포켓몬 빵은 커녕 봉지 한번 구경 못해보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포켓몬 빵은 이미 온라인 쇼핑몰에는 품절이고 중고 마켓에서도 못 구해서 안달이다. 포켓몬 테크라고 할 만큼 1500원짜리 빵 하나가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나는 편의점 계산대 앞에서 머릿속이 뒤죽박죽 복잡했다. 뭔가 해야 할 것 같았다. 무언가에 이끌린 듯 나는 편의점 직원에게 바짝 다가섰다. 최대한 상냥한 표정으로.    

 

  “저... 포켓몬 빵이 핫하긴 하네요. 제가 요 며칠 아침마다 동네 편의점을 다녔는데 포켓몬 빵이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 한번 못 해본 거 있죠. 사실 저는 포켓몬 스티커 같은 건 필요 없거든요. 열 살 아들 소원이 포켓몬빵 먹는 거라나? 하하.... 워낙 애들이 포켓몬빵 포켓몬빵 하니까... 그게 궁금한가 봐요. 애가 소원이라는데 참...

  나는 그동안의 포켓몬 여정을 장황하게 늘어놓고는 직원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

   편의점 직원은 카운터 위에 흩어진 물건을 정리할 뿐 별 대꾸가 없었다.

  “그게 무슨 소원인지. 저, 혹시 포켓몬 빵은 어떡하면 살 수 있을까요?”   

   나는 비 맞은 강아지의 눈빛을 하고 다시 한번 말했다. 


  “흠… 그럼, 예약 걸어 드릴게요. 포켓몬 빵이 입고되면 연락드리죠. 거기 노트에 전화번호 적어놓고 가세요. 대신 1개씩 파는 거라 좀 많이 기다리셔야 해요."

  편의점 직원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 입 모양은 보이진 않았지만 눈꼬리가 반달 모양으로 내려간 것이 상당히 희망적인 느낌이었다.    

  “아! 그럼요, 그럼요! 포켓 느님을 만날 수 있다면 당연히 기다려야죠. 늦더라도 꼭 연락 주세요.”

  나도 모르게 직원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편의점을 나오는데 포켓몬 빵을 박스 째 얻은 것처럼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나는 그날 이후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서둘러 휴대전화 화면을 보았다. 평상시엔 모르는 번호는 받지 않는 나였지만 새 번호가 뜰 때마다 혹시 m 편의점 전화가 아닐까 하는 마음에 자꾸 신경이 쓰였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아들의 포켓몬 빵 열기가 잠잠해지던 어느 주말 아침,

  “안녕하세요? 여기 m 편의점인데요. 포켓몬 빵 예약하고 가셨죠? 오늘 빵이 입고돼서 연락드려요.”

  “네? 아, 네 네네.”

  “지금 오실 수 있으세요? 혹시 필요 없으시면 다음 대기자께 넘길게요.”

  “아니요, 가야죠. 지금 바로 가요.”


  나는 전화를 끊자마자 방으로 달려갔다. 남편은 아직도 단잠 중이었다. 자고 있는 남편을 흔들어 깨웠다. 마음이 급했다. 방금 잠에서 깬 남편은 내가 포켓몬 빵을 사 오라고 하자 그야말로 아닌 밤중에 홍두깬가 싶은 표정을 하고 일어나 앉았다.

  남편은 잠시 쭈뼛거리다가 내 눈빛을 보더니 곧 편의점으로 출동하였고 잠시 뒤, 속이 비치는 포장지에 푸른빛 포켓몬이 그려진 빵 하나를 손에 들고 호기롭게 현관문으로 들어섰다. 결혼 후 남편을 이렇게 설레며 기다렸던 적이 있었던가?     


  “와와! 포켓몬이다! 꼬부기네!”

  포켓몬빵 소식을 듣고 거실로 나온 아이는 빵을 보자마자 펄쩍펄쩍 뛰었다.

  ‘크~ 드디어 포켓몬 빵을 실물영접하다니! 그것도 꼬부기님.’ 나도 덩달아 신이 났다.    

 


  

  꼬부기 빵은 한눈에 보아도 거북이 등딱지를 닮은 모양이었다. 노릇하게 잘 구워진 울퉁불퉁한 빵 위에 보석처럼 하얀 설탕이 솔솔 뿌려져 있었다. 아이는 얼른 봉지를 뜯어 스티커를 확인한 후 바로 빵을 먹었다. 그리고 내게도 빵을 먹어보라고 내밀었다. 꼬부기를 한입 베어 무니 달콤하고 고소한 마가렛 맛이 마치 곰보빵 같다고 생각할 즈음 부드럽고 파삭한 맛이 치고 들어왔다. 정말 맛있었다.

  7개의 포켓몬 빵 가운데 아들의 위시 리스트 중 하나인 꼬부기라니 꽤 괜찮은 성과였다.      


  얼마 전부터 그렇게 핫하다기에 꼭 먹어 보고 싶었던 포켓몬 빵. 쉽게 가질 수 없어서 감질 맛이 더했고 기나긴 기다림은 덤이었다.  다른 포켓몬이 궁금하긴 해도 여기까지만. 

   아이가 포켓몬 띠부실(스티커)엔 관심이 없어서 천만다행이다. 열 살 아이의 수만 가지 소원 중 하나였을 포켓몬 빵 먹기. 나는 마치 크리스마스를 잘 보낸 산타가 된 듯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참 잘 일. 라이언 일병 구하기 다음으로 어렵다는 포켓몬 빵 구하기 성공! 투명 포장지위에는 꼬부기의 밝은 얼굴이 환하게 반짝인다.       


- by 2022. 포켓몬 빵 난리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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