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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댁 떡국 vs 친정 떡국

그 맛 알지? 맛있는 음식 이야기: 떡국

by 로니의글적글적




새해 첫날 아침, 떡국을 끓였다. 부지런히 준비한 덕분에 뽀얀 국물 위로 하얀 떡과 고운 소고기 고명, 노란 달걀지단, 짙은 김가루가 어우러진 떡국이 금세 완성되었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숟가락으로 따뜻한 떡국을 한 입 떠먹는 순간, 어릴 적 엄마가 정성스럽게 끓여 주시던 떡국 맛이 문득 떠올랐다.

설날이면 엄마는 달걀을 노른자와 흰자로 나누어 얇게 지단을 부친 뒤, 곱게 채 썰어 떡국 위에 얹어 주셨다. 거기에 닭고기와 두부를 함께 조려 만든 짭조름한 끼미와 김가루까지 더해지면 국그릇 안이 화사해졌다. 새해 아침에만 맛볼 수 있었던 고운 색감의 떡국은 내가 설날을 손꼽아 기다리게 만드는 특별한 음식이기도 했다. 엄마가 정성껏 끓인 떡국을 먹고 나면 어린 마음에도 왠지 새 기운이 솟아나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시간이 흐른 지금도 설날이 되면, 그 떡국 맛이 생각나곤 한다.

결혼 후 처음 맞이한 설날 아침, 시댁에서의 떡국은 내가 먹던 것과 조금 달랐다. 어머니께서는 진하게 우려낸 멸치육수에 떡을 넣고 끓인 뒤, 달걀을 국물에 바로 풀어 넣으셨다. 마지막으로 깨소금과 참기름을 살짝 둘러 완성한 떡국은, 친정에서 먹던 떡국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화려한 고명과 풍성한 비주얼을 기대했던 내 마음은 단출한 떡국 앞에서 어딘가 허전해졌고, 실망한 기색을 숨길 수 없었다. 고기, 지단, 김가루가 듬뿍 올려진 친정의 떡국과 비교하니, 허전하다 못해 성의가 부족해 보인다는 생각까지 들어 괜히 어머니께 서운했다. 그때까지 나는 고명이 푸짐해야 제대로 된 떡국이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어디선가 용기가 솟은 나는 달걀지단을 부쳐 보겠다고 나섰다. 소고기도 직접 다져서 볶았다. 익숙했던 친정식 떡국을 떠올리며 나름대로 손을 더해보기로 한 것이다.


조금 뒤, 새롭게 떡국이 완성되었다. 떡국을 바라보며 뿌듯한 마음이 들었고, 내가 만든 떡국 맛에 모두가 반할 것이라는 은근한 자신감도 있었다. 나는 기분 좋게 떡국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나서 가족들의 반응을 살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는 아무 말씀 없이 내가 만든 떡국을 드셨다. ‘맛있다’거나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없어서 어딘가 섭섭하고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어머니께서는 원래 고기를 즐기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당뇨로 인해 기름진 음식을 늘 피하고 계셨던 것을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아무런 내색 없이 드셨던 어머니의 마음을 생각하니 죄송스러움이 밀려왔다.

세월이 흐르면서, 처음에는 어색하기만 했던 양가의 떡국 차이가 이제는 자연스레 익숙해졌다. 두 집안의 문화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법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는 내 모습에 스스로도 진짜 어른이 되어감을 느낀다. 꼭 모든 것이 내 방식이어야 할 필요는 없었다. 친정의 떡국은 곱게 채 썬 달걀지단이 올려져 정갈하고 세련된 느낌이라면, 시댁의 떡국은 멸치육수에 풀어진 달걀이 더해져 소박하면서도 정겨움이 있다. 두 떡국은 맛도 모양도 서로 다르지만, 그 안에는 각자 집안의 고유한 방식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이렇게 두 집안의 다름을 받아들이게 되니, 내 마음도 한결 편안해졌다.






요즘 나는 떡국을 끓일 때 달걀을 풀어 넣기도 하고, 때로는 지단을 만들어 올리기도 한다. 가족의 입맛이나 그날의 분위기에 따라 선택하는데 그 덕분에 다양한 방식으로 떡국을 즐길 수 있다. 달걀지단은 떡국을 한결 먹음직스럽게 만들어 아이들이 좋아하고, 풀어진 달걀은 국물 맛을 부드럽게 해 주어 남편이 특히 좋아한다. 방식은 다르지만, 결국 그 모든 떡국에는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이 녹아 있다.


설날 아침, 나는 다시 떡국 냄비 앞에 섰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달걀을 지단으로 부쳐 올리든, 국물에 풀어 넣든, 진정 중요한 것은 그 떡국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사실 아닐까. 떡국 위에 올려진 고명은 제각각일지라도, 그 안에 담긴 사랑은 언제나 한결같다. 그렇기에 우리 가족의 떡국은 늘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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