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맛 알지? 맛있는 음식 이야기: 쑥국
쑥국을 끓였다. 지난 주말, 아이들과 함께 시골 친정집에 다녀왔을 때 엄마가 직접 캐 주신 쑥이었다. 엄마는 올해 처음으로 올라온 어린 쑥이라며, 더 좋은 걸 찾겠다고 마을에서 한참 떨어진 밭둑까지 다녀왔다고 말씀하셨다. 그런 엄마가 손수 다듬어 봉지에 가득 담아 놓은 걸 나는 한껏 들떠서 받아 들고 왔다.
여러 번 빡빡 문질러 씻은 쑥을, 미리 준비해 둔 멸치육수에 넣고 된장을 풀어 끓였다. 냄비 속이 팔팔 끓기 시작하자 떠오른 거품을 걷어 내고, 국물을 살며시 떠서 맛을 보았다. 구수한 된장 맛에 은은한 쑥 향이 어우러져 입안 가득 퍼졌다. 따뜻한 봄 냄새가 거실 가득 퍼져 내 마음도 포근해졌다.
저녁밥이 완성되고, 가족들을 식탁으로 불러 모았다. 쑥국을 담아 아이들 앞에 조심스레 놓아주었다. 그런데, 아이들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국그릇을 보고도 선뜻 수저를 들지 않았다. 아이들에게는 아직도 쑥 향이 익숙하지 않은 듯했다. 멀뚱히 국그릇만 바라보는 것이었다. 평소엔 뭐든 잘 먹는 큰아들마저 이번엔 머뭇거렸다.
“한번 먹어봐, 할머니가 직접 캐신 쑥으로 끓인 거야.”
내가 조심스럽게 권하자, 큰아들은 국을 휘휘 저었다. 국물 위로 두부와 쑥잎이 살짝 떠올랐다. 큰아이는 국물을 천천히 떠서 한 숟갈 입에 넣었다. 작은아들은 숟가락 대신 젓가락을 집어 들더니 두부만 조심스레 건져 올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이게 괜히 긴장할 일인가 싶으면서도 어느새 아이들 표정만 살피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국물을 한입 삼킨 큰아이의 표정이 조금씩 풀어졌다. 그러면서 점차 수저질이 빨라졌고 이내 익숙해진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아이도 형을 따라 조심스레 국물을 떴다. 나도 따라 한입 떠먹었다. 입안 가득 퍼지는 쑥국 한 입이 어릴 적 기억을 데려오는 듯했다. 봄이면 늘 엄마가 끓여주시던 그 맛. 그 냄새.
큰아이는 어느새 빈 그릇을 들고 주방 쪽으로 갔다. 쑥국이 담긴 냄비 앞으로 다가가더니, 익숙한 손놀림으로 다시 한 그릇을 채워왔다. 그 모습은 “맛있다.”라는 말보다 훨씬 확실한 긍정의 대답이었다. 손수 요리를 한 입장에선, 그 어떤 말보다 기분 좋은 순간이었다. 그러면서 언제나 정성 어린 손길로 먹거리를 준비해 주시는 친정엄마께 새삼 감사의 마음이 들었다. 엄마의 손길이 없었다면, 우리가 함께 이 따뜻한 봄의 맛을 느낄 수있었을까.
만물이 소생하는 봄, 도시 한가운데서 자라는 우리 아이들이 자연이 건넨 소박한 먹거리를 통해 오래도록 할머니의 사랑을 기억하길 바란다. 할머니가 손수 캐고 다듬어 주신 쑥으로 끓인 국. 이렇게 봄이 올 때마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따끈한 쑥국을 함께 나누는 시간이 오래도록 이어졌으면 좋겠다.
저녁 식사 시간은 유난히 포근했다. 따끈한 쑥국이 한 그릇, 또 한 그릇 비워지는 동안, 우리는 서로 웃고 또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