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풍요로웠던 명절 연휴의 그림자가 채 가시기도 전,
사무실로의 회귀는 마치 심해 아래로 가라앉는 듯한 막막함으로 다가왔다.
직장생활 십 년을 훌쩍 넘긴 나조차 이 불가피한 중력을 피할 길은 없었다.
가족과 함께 보낸 평화로운 시간 속에서, 나는 잊고 있던 과거의 향수를 다시금 호흡할 수 있었다.
업무의 잔상은 지워지고
가족의 포근함, 고향집 거실의 푹신한 소파 위 안락함, 엄마가 해주는 집밥, 친척들과의 만남 등
그 모든 게 나를 어릴 적 시절로 되돌려놓았다.
연휴가 끝나가자, 머릿속에 다시 업무의 그림자가 스며들었다.
출근을 며칠 앞두고, 무수한 미해결 과제와 마주할 압박감이 숨통을 조여왔다.
'출근하면 닫시 금방 익숙해 질거야'라는 주문을 되뇌었지만, 이 불안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연휴 끝, 직장 복귀 하루 전인 일요일.
나는 불시에 찾아온 먹구름을 잊으려 친구와 함께 종로를 거닐며 자유의 마지막 선율을 만끽했다.
하루 종일 그렇게 도심을 유랑했음에도, 다음 날의 굴레에 대한 심란함은 옅어지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이 밝았을 때도, 오랜만의 출근에 대한 심란함은 여전했다.
그러나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선 지 채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연휴 전의 익숙했던 일상 속 나로 완벽하게 돌아와 있었다.
출근 전의 번민,
이 모든 것이 실재하지 않는 그림자를 좇았던 나의 과장된 걱정이었음을 깨닫는다.
'막상 출근하면 금방 적응될 거야'라는 이성적 예측보다,
'어색함과 밀려오는 업무의 중압감에 짓눌릴 것 같다'는 비이성적인 두려움이 앞섰던
내 생각은 절반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 허상에 불과했다.
막상 그 일이 닥치면, 내가 두려워했던 만큼의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거나,
심지어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다시금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들에 대해 미리 걱정하거나 두려워할 때마다,
긴 연휴 후 사무실로 돌아가던 그날을 떠올려야겠다.
나의 내면에 잠재된 '그림자의 연금술'을 깨뜨리는 지혜로운 주문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