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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시대 쉽지 않은 명절 안부전화

by 차밍

내가 대학생 때까지만 해도 명절에는 친할머니집에 삼촌가족과 우리 가족이 함께 모였다.

명절 전날 다양한 명절음식을 하고 명절 당일엔 제사를 지내며 함께 시간을 보냈었다.

그때 우리 엄마와 숙모 정말 고생 많이 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전부터는 각자 집에서 가족들끼리 편하게 쉬면서 명절을 보낸다.


예전 명절 땐 난 할머니집에 가는 게 귀찮고 그 시간이 아까웠다.

요즘엔 그런 부담 없이 집에서 가족들과 맘 편히 자유롭게 쉴 수 있어 좋다.


우리 가족은 아빠, 엄마, 나, 남동생, 여동생 이렇게 다섯 식구이다.

우리 세 남매 중 남동생만 결혼을 해서 경기도에 있는 처갓집과 가까이 살고 있다.

우리 가족집은 경상북도 포항이다.


남동생 결혼 이후 명절에 남동생 부부가 포항집에 내려온 적은 거의 없다.

남동생 아들인 내 조카가 감기에 걸려 이번 설날에도 포항집에 안 내려오기로 했다.


이전에 남동생은 부모님께 안부전화를 많이 했지만 제수씨는 우리 부모님께 안부전화는 거의 하지 않는다.

우리 부모님도 평소 제수씨가 안부전화를 안 하는 건 이해한다.

거리가 멀고 서로 각자 생활이 바쁘기 때문에 안부전화 하는 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설명절 당일에도 며느리에게 안부인사 전화가 없자 부모님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픈 조카 때문에 설 명절에 인사하러 못 오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설 명절 당일에 안부인사 전화 정도는 해주는 게 가족들 간 최소한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난 부모님이 기분이 안 좋은 게 이해가 되었다.

여동생은 나에게 남동생에게 전화해서 이 사실을 알려주는 게 좋지 않냐고 했다

난 아직 점심시간이 안 되었고 먼저 전화가 올 수 있으니 기다려 보라고 했다.


마침 남동생에게서 영상통화가 왔다.

엄마와 남동생이 서로 대화를 나누다 엄마가 먼저 며느리가 왜 안부전화가 없는지 말을 꺼냈다.

남동생은 핸드폰을 들고 자기 아내와 아들이 있는 방으로 가서 영상을 비쳐줬다.


그런데 제수씨는 기분이 안 좋아 보였다.

조카를 돌보면서 굳은 표정으로 폰 카메라를 보지 않고 새해 안부 인사를 했다.

제수씨 기분이 안 좋아 보였다.

엄마도 답변 인사를 하고 영상통화를 종료했고 며느리의 시큰둥한 태도에 엄마는 더 화가 났다.


아빠와 엄마는 며느리에게 큰 실망을 했다.

내가 봐도 제수씨가 좀 심한 것 같았지만 겉으로 말은 하지 않았다.

엄마는 남동생에게 '며느리 행동에 많이 실망했고, 이제 며느리랑 얘기하지 않겠다'라고 카톡을 보냈다.


설명절 가족 간의 다툼이 많이 일어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남동생은 처갓집과 가까이 살기 때문에 처가와 자주 얼굴을 보는데

제수씨는 우리 부모님께 설 명절에도 먼저 안부전화가 안 오니 나도 제수씨의 그런 점은 보기 좋지 않았다.


나중에 여동생이 남동생과 따로 통화를 해보니 '부부싸움을 해서 아내가 기분이 좋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제수씨가 기분이 안 좋은 이유는 남동생이 자기 부모님께 설날 안부인사를 제대로 못해서라고 했다.

(이것도 좀 이해가 안 된다. 제수씨도 안 하면서 남동생에게 너무 그러는 거 아닌가 생각했다. 이런 거 보면 나도 꼰대 마인드가 있는 것인가 싶다.)


나와 부모님은 처갓집과 가까이 사는 남동생이 안쓰러웠다.

남동생이 처갓집에 자주 신경 써야 되는 상황이 힘들어 보이기 때문이다.

처갓집이랑 가까이 있고 우리 집이랑은 멀리 있으니 조카가 우리 가족이라기보다 처가가족같이 느껴진다.

(조카를 힘들게 키운 건 남동생 처갓집이기 때문에 이건 어쩔 수 없다.)


엄마도 남동생과 둘이 따로 통화를 했다.

남동생 한 달 용돈이 30만 원이란다.

물론 제수씨도 30만 원으로 생활을 하고 나머지는 아들에게 돈이 다 들어가거나 저축한다고 했다.

둘이 월급을 합치면 600만 원 정도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조카에게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가는 게 아닌가 싶다.

한 달이 30만 원으로 어떻게 생활을 하나.... 교통비, 식비 다 포함 30만 원이다.


엄마는 그런 남동생의 얘기를 듣고 화를 냈다.

30만 원으로 어떻게 사냐, 10만 원 더 올려달라고 말하고 어떻게 됐는지 알려달라고 했다.

그리고 처갓집이랑 가까이 사니 네가 힘들다고 했다.

그러니 남동생도 처갓집이랑 떨어져 살아야겠다고 얘기했다.


남동생 얘기만 듣고 편파적으로 제수씨가 너무한다는 생각을 할 수 있어

객관적으로 상황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제수씨 얘기도 들어봐야 한다.


하지만 제수씨가 설날 명절에 안부인사 전화가 없었던 것은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평소 안부인사 전화를 하는 것도 아니고, 이번 긴 황금연휴 동안 인사하러 찾아온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내일이라도 제수씨가 안부전화를 하면 부모님은 바로 풀릴 것이다.

가족들 간 정을 유지할 수 있도록 평소에는 각자 마음 편한 대로 지내면서 최소한 명절 안부인사는 챙기도록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이 글을 쓴 다음날 다시 제수씨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이유야 어찌됐든 부부싸움을 한 이후라면 그날이 아무리 설명절이라도 시부모님께 안부인사 전화하기가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다.


(p.s 며칠 후 제수씨가 엄마에게 '연휴동안 연락 제대로 못드려서 죄송하다'고 사과의 전화를 했고

엄마도 그 전화를 받고 기분이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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