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글쓰기 연수에 참석했다. 궁금증과 작은 호기심을 안고 가벼운 마음으로 몇 시간을 컴퓨터 앞에 앉았다. 처음엔 그냥 듣기만 하려고 했는데 열정을 다하는 강사님의 칭찬 한마디 때문에 지금 이렇게 나를 변화시키는 글을 쓰고 있는 것 같다.
주제 키워드를 못 잡고 하염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는데 강사님이 한마디 툭 던진다.
“장 선생님은 꼼꼼하잖아요.”
“맞아요. 일하는 스타일이 꼼꼼해서 주변 사람들이 도움을 받고 있어요.” 하고 같이 온 지인께서 한마디 거들어 준다.
“아하,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저는 꼼꼼함이 사람 잡는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을 하다 말고 순간 머리를 스치며 ‘꼼꼼함이 사람 잡는다고?’라는 생각에 집중하게 되었고 '꼼 꼼 함이 진짜 사람을 잡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꼼꼼함이 사람 잡는다’라는 말뜻을 생각해 보면 금방 이런 느낌이 난다.
첫째, 조금 거리감이 있지만, 긍정의 의미로 생각해본다. ‘꼼꼼하다’라는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빈틈이 없이 차분하고 조심스럽다’라는 좋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래도 그 꼼꼼함 때문에 나 자신을 힘들게 한다는 의미로 기울어지는 것이 솔직한 표현이다.
둘째, 부정의 의미로 더 가깝게 다가온다. 뭐라 딱 설명할 수는 없지만 꼼꼼함 때문에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이 힘들어지고 강박증 쪽에 가까운 성격의 소유자일 것이라는 느낌이 난다. ‘꼼꼼함’에는 조금의 긍정적 어감이 내포되어 있다지만 ‘사람 잡는다’라는 표현이 더해지면 확실하게 부정적인 느낌이 훨씬 강하다.
20대 초반에 초등학교 보건교사로 시작하여 30년 이상 학교에 근무하다 보니 나름 노하우가 생겨서 어느 시기에 뭘 해야 할지 미리미리 준비하게 되고, 다양한 업무자료들을 정리하는 습관이 생겨났다. 신규로 첫발을 내딛는 후배들을 생각하면 옆에서 작은 도움을 주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서 결국은 또 오지랖을 떨게 된다.
누구나 30년의 세월이 지나면 자신의 분야에서 달인이라는 별칭을 얻는다고 한다. 나 역시 특별한 것은 없지만 업무자료들을 찾기 쉽도록 세세하게 분류하고 기존 자료와 새로운 자료를 비교해가며 정리해 나가는 꼼꼼한 습관이 생겨났다. 한 해 두 해 쌓이다 보니 나의 보물 자료가 되었고, 주변 동료 교사들이 자료 도움을 요청하면 쉽게 해결해 주는 경우가 많아졌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다 보면 각종 공문서와 지침들로 넘쳐날 때 다른 사람의 참고자료들은 그냥 쓰지 못하고 재작업을 거쳐 나만의 것으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린다. 마감 기간이 많이 남은 사업들을 뒤로 미루지 못하는 성격이라 미리 사업 계획서를 만들고 주변 학교 동료들에게 참고자료로 공유해준다.
이러한 사정으로 사람들은 나에게 꼼꼼하게 앞서간다고 말을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꼼꼼하든 설렁거리든 마지막에 가서 일의 결과를 살펴보면 비슷해진다. 일이 늦어지면 어쩌나 하는 쓸데없는 초조함과꼼꼼하게 미리 시작해야 안심되는 소심한 성격 탓에 종종 나 자신을 잡는다고 하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남들은 일을 쉽게 쉽게 풀어나가서 그것이 부러울 따름인데 말이다.
‘꼼꼼한 내 업무 스타일 이대로 괜찮은 걸까?’
여태 살아오는 동안 과정을 확인하며 정해진 규칙에서 벗어나지 않게 더 꼼꼼해지려고 노력하며 살았는데 나 자신에게 너무 인색한 점수를 준 것 같다. 서당 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다. 나는 학교생활 30년인데 왜 여태 ‘꼼꼼함이 사람을 잡는다’고 부정적인 생각만 했을까?
관점을 전환해보면 ‘꼼꼼함 때문에 내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 준 진짜 사람들을 잡았는데...’
다른 말로 이야기하면 훌륭한 인생의 친구들을 만났다는 표현이다. 나의 부정적인 습관으로 여겨졌던 것도 달리 생각해 보니 긍정적인 좋은 습관이었음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수시로 만나는 불안감과 조급함에 스트레스가 쌓이고, 실수를 줄이기 위해 몸부림쳤던 꼼꼼함이 나의 장점을 살려주고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그 결과로 마음을 나누며 인생길에 동행하는 좋은 사람들을 만난 것은 엄청난 행운이다.
일상적이고 익숙한 규칙에서 탈출해보고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일 자체가 처음에는 불안하고 어색하겠지만 새로운 경험에 도전하는 일도 필요하다. 반복되는 익숙함에서 조금 벗어난다고 위험한 일은 많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익숙한 환경에 취해서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경우가 종종 생길 수 있다. 누구에게나 좋은 습관 나쁜 습관이 있다. 나처럼 혹시 부정적인 느낌의 습관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은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보자.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유익한 이유를 찾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좋은 습관으로 발전시킬 정신적 여유를 찾는 길이라 생각된다.
나와 같은 이유를 발견한 꼼꼼한 사람들에게 조심스럽게 한마디 하고 싶다.
“꼼꼼한 인간관계로 엮인 삶의 놀이터에서 진짜 사람 좀 잡아봅시다.”
복잡한 거미줄처럼 얽힌 꼼꼼한 관계를 통하여 사람 사는 세상 속 한 부분으로 자리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사람들은 인생의 출발선에서 이제 몇 발자국 떼었다고 느끼거나 한 참 멀어졌음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마지막종착지가 얼마나 남아있을지 아무도 모르지만 도착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가는 길이 험하고 시간과 거리가 모두 다를지라도 결국은 정해진 지점으로 다다를 때 인생은 끝을 맺게 된다.
지나오는 길에 만났던 사람들과 앞으로 만날 사람 중에 인연을 맺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그냥 옷깃만 스치는 관계가 아닌 내 인생을 풍성하게 해 줄 사람을 만나러 가야 한다. 그 길 위에서 내 손을 잡고 동행 길에 서로에게 등불을 밝혀 줄 친구를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