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쓰장 Apr 16. 2022

엄마에게 물어본 적 있나요?

울 엄마의 평생소원

  2020년 코로나 때문에 일상의 평범함이 무너진 10월 가을날 오후였다.      


  여동생이 시어머니 장례를 치르고 나서 시골에서 가져온 20kg이 넘을 듯 묵직한 마늘 한 자루를 내려놓았다. 90에 가까운 사돈어른이 병원 입원하면서 돌아가시기 전에 자식들을 위해 마지막 농작물로 남겨놓은 귀한 마늘 선물에 잠시 마음이 아려왔다. 마늘을 한 톨 한 톨 까면서 고인을 위한 간절한 바람으로 신께 구하였다.     

  ‘고인의 평안한 안식을 허락해주소서!’   

  

  우리네 부모들은 떠나는 날까지 자식들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고도 늙고 병들어 쓸모없다고 생각하면서 할 수만 있다면 육신까지도 내어주실 기세다.      


  엄마의 평생소원은 가정주부란다. 70세를 한참 지나 드디어 소원하던 가정주부의 꿈을 이루셨다. 그렇게 원하던 소원, 가정주부가 뭐라고!


  평생직장인 가정주부는 부업이고 주업은 조그마한 가게 운영이었다. 달리 이야기하면 가게를 폐업하고 가정주부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맞벌이 주부들이 많아지면서 부업과 주업이 헷갈리는 부분이지만 엄마 세대는 가정주부 역할을 기본으로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 분위기였다. 요즘은 남녀가 육아휴직을 같이하면서 남자들이 주부 역할을 더 완벽하게 하기도 하며, 예나 지금이나 휴일에도 가정주부는 쉴 틈이 없다.      


  내 기억 속에도 울 엄마가 편안하게 휴식하는 일이 드물었다. 가위질로 퉁퉁 부은 손가락과 늦은 밤까지 재봉 일을 위해서 부엌에 앉아 잠을 쫓느라고 커피를 억지로 마시고 계신 모습. 어린 시절에는 설탕이 귀해서 명절 선물로 인기 품목이었다. 달콤한 설탕을 먹고 싶은 욕심에 나는 속도 없이 커피 알갱이 서너 톨에다 설탕 몇 숟가락을 듬뿍 넣어 달라고 엄마를 졸라댔다. 달콤하고 맛난 연한 설탕 커피 맛 어찌 잊을 수 있으랴, 엄마와의 추억인데!    

 

   친정집 뒤에 있는 성당을 반백 년 동안 다니시다가 갑자기 ‘절에 다닐까?’ 하신다.

  왜? 자식들 제사 지내는 것이 힘들까 봐서 나중에 절에 모시고 편하게 살라고!

  오늘날은 부모님이 계셔도 가족이 모이기 어려운데 부모님이 안 계시면 제사라도 모셔야 가족이 모일 것 같다. 제사를 누가 어떻게 모시느냐가 또 문제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종교를 바꾸려고 생각하실 만큼 걱정을 하시는 모습에 속이 상했다. 제사음식을 장만하는 일이 몇 날을 고민하게 만드는 일이어서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는 일이라 그런 생각을 하신 것이리라.      


  아버지 형제는 고모만 다섯 분이고 엄마는 외며느리라 시집살이와 가족 제사 모시는 고달픔에 힘이 드셨을 것이다. 60세도 안 되어 먼저 떠나신 아버지의 마지막 병간호도 힘이 드셨고 기울어가는 살림에 자식 넷을 키우느라 평생 생활전선에 나서야 했던 엄마는 그렇게나 소원하던 '집에서 살림만 하는 평범한 가정주부'를 꿈꾸신 것이다. 팔순에 들어선 엄마가 옛날처럼 한없이 젊은 엄마였으면 하고 바라본다. 늘 바쁜 엄마의 빈자리가 표 나지 않게 한평생을 사셨는데 이번에는 자식들이 빈자리를 메꾸어 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늘 바쁜 엄마에 비해 아버지는 자식들에겐 한없이 좋은 역할만 하신 분이었다. 귀가 얇아 재산도 많이 없애고 말년에 건강이 나빠져서 육체적인 고통이 제일 심하셨겠지만, 경제적으로 엄마를 힘들게 하셨다. 학생들에게도 인기 많은 고등학교 체육 교사였으며 나의 직업 선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분이다. 부모의 기대를 말없이 따랐다는 표현이 맞는 말이지만 지금 생각해도 내 선택에 후회는 없다.  내가 사람들과 말하기 좋아하는 성격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듯하다.


  아버지는 시험 기간이면 극심한 불안감에 가족들을 함께 초긴장 상태로 만들었던 나를 다독거려주셨다. 대학교 1학년 때는 시험이 끝나기 무섭게 경양식집 돈가스를 사주셨는데 밤새 토하고 탈이 났다. 시험 기간 내내 밤을 새우다시피 하다가 긴장이 풀리니 좋아하던 돈가스를 먹다 체했던 모양이다. 그 뒤로 기름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올라와서 오랜 기간 돈가스를 쳐다보지도 못했고, 10년도 훨씬 지난 어느 날 아주 기분 좋은 날에 돈가스를 한번 먹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조심스럽게 다시 먹게 되었다. 지금도 돈가스를 마주하면 아버지가 제일 먼저 생각난다.     


  엄마와의 관계는 어떠했는가? 

  말없이 챙겨주는 우리 엄마의 투박함은 세월의 억척스러움을 이겨내다 보니 저절로 형성된 것 같다. 자식에게 의지하지 않으려는 몸에 밴 자립심 때문에 살가움은 덜했지만 그런 투박함이 더 정겹다. 나 또한 엄마에게 그리고 딸에게 세련된 표현을 하는 성격이지만 이심전심 느껴지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사랑한다는 표현을 연습해서라도 많이 자주 해줘야겠다.   

  

  내가 대학교 때 자취하러 살림 나던 날이었다. 딸내미 시집보내는 마음 같다고 서운해하는 엄마 모습이 눈에 선하다. 고등학교 때도 집을 떠나 도시에서 생활하긴 했어도 고모님 댁에서 살펴주신 덕에 걱정을 덜 수 있었고, 이번에는 진짜 혼자만의 살림을 난 상황이었다.     


  “이제 집 떠나면 취직하고 시집가고 다시는 돌아오기 힘들겠구나.”

  “엄마, 별걱정을 다하네요. 1시간이면 집에 올 수 있는 거리인데요.”     


  엄마의 말씀대로 그 후로 나는 정말로 우리 집을 떠나게 되었다. 취직하고 결혼하고 내 집이 아닌 친정으로 명칭이 변했다. 시집가던 날 옹기 항아리 두 개를 주셨는데 엄마가 주신 것이라 나의 골동품이 될 것이다. 매년 용도를 바꾸어가며 몇 년 묵혀둔 매실 원액과 복분자술, 쌀과 돈을 담아 두었던 알라딘의 요술램프 같다. 큰아이가 어려서 그 옹기 항아리에 앉아서 놀던 장난감이 된 적도 있었고, 새록새록 엄마가 그리워질 때마다 만져보게 될 것이다.     

 

  친정에 다녀올 때면 이별 상황이 너무 싫다. 다시 방문할 때까지 기다림에 지칠 엄마의 뒷모습을 남겨 두고 와야 하는 발걸음이 무겁기 때문이다. 사는 게 힘들다는 핑계를 대면서 1년에 고작 몇 번의 방문도 어려울 때가 있다. 시댁 방문 횟수가 줄어드는 일도 더 말할 것 없는 대한민국 며느리들의 공통적인 관심사 일 것이다. 나이가 들어 시어머니와 친정엄마의 마음이 조금씩 이해가 되고 미안한 마음이 앞서는 걸 보면, 나에게도 이제 역할을 바꿀 준비가 시작되고 있음이 느껴진다.     


  우리네 부모님이 힘들지 않은 분이 몇이나 되겠는가? 90세가 넘어도 엄마가 그립다던 어느 할머니의 인터뷰 방송을 보았다. 우리네 엄마들도 힘들 땐 얼마나 엄마가 보고 싶었을까? 마음의 안식처 울 엄마 품속에 안기고 싶은 것처럼 이제는 자식들이 엄마를 품어줘야 할 때이다. 또한 자식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은 부모들 마음처럼 자식들도 부모 가슴에 멍자국을 남기지 않도록 인생을 열심히 살아야 한다.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부모님을 웃게 만드는 일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당장 손가락을 움직여 전화 목소리라도 들려주면 좋겠다. 더 늦기 전에 지금 행동해야 한다. 미루지 말고 오늘은 엄마에게 살갑게 꼭 물어보자.      


  엄마 소원이 뭐예요?”      


  누구에게나 부모와의 좋은 추억이 있을 것이다. 설령 좋지 못한 기억이 있더라도 그 시대의 불행한 과거를 뛰어넘자. 그리고 나의 자녀들에게는 좋은 추억을 만들어 줄 책임을 느껴야 한다.  자녀들이 행복한 기억으로 평생 살아가기를 바란다면 말이다.


 



  팔순을 맞은 엄마에게 다시 물어봤습니다.


  2022년 가을날 연휴!

  맑고 시원한 가을바람이 낯을 간지럽히는 화창한 날, 80세 생신을 맞이한 엄마를 모시고 4남매가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팔순에 큰 의미를 담은 1박 2일 동안 엄마의 웃음소리를 많이 듣고 왔다. 당신을 위한 자식들 돈 쓰는 것이 마음에 걸려 한사코 안 가시겠다고 사양하시더니 손주 녀석의 한마디에 여행길에 나섰다.


  "지난 추석 때 할머니가 담가주신 파김치가 너무 맛있어서 금방 먹었어요.

  이번에도 할머니 파김치 또 먹고 싶어요."


  "둘째야, 지금 파김치 담고 있다."

    

  첫째 언니네와 함께 파김치와 떡, 음식들을 준비해 오셨고 자식들 입으로 맛나게 들어가는 장면을 흐뭇하게 바라보셨다. 오랜만에 4남매 자식과 손주들을 모두 만난 자리에서 가족들의 온 마음을 모아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는 생신 잔치를 열었다. 활짝 웃는 엄마 모습을 동영상과 내 눈 속에 담고서 가장 행복한 날에 찍는 가족사진을 남겼다. 밤새 깔깔거리며 눈물을 찔끔거리는 즐거움도 맛보았다.


  특별한 생신 선물로 '엄마의 80세 인생 이야기 1부' 추억 앨범을 만들었다. 돌아가신 아버지, 자식들, 손주들, 엄마 형제들 사진을 모아 주인공 엄마의 이름이 새겨진 앨범 속에 정리해 보았다. 그동안 사진을 너무 안 찍어 드렸다는 미안함이 앞섰다. 지나간 추억을 새록새록 떠올리며 한 장씩 넘겨보는 재미로 ‘힘겨웠던 세월의 작은 보상’이 되었으면 하는 간절함을 담았다.

  이제부터는 '엄마의 100세 인생 이야기 2부' 추억 앨범을 만들기 위한 핑계 목적으로 삼더라도 자주 만나서 가족사진을 찍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젊은 엄마의 평생소원은 '가정주부'였다. 가정경제를 책임져야 하는 주업에서 벗어나 70세가 넘어서야 온전한 가정주부의 꿈을 이룬 것이다.  80세 팔순을 맞은 엄마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엄마, 지금 소원이 뭐예요?"


  "제일 소원은 우리 가족들 건강하고 모든 일이 술술 풀리는 것이고,

  두 번째는 자식들에게 폐 안 끼치게 내 몸뚱이 건강관리 챙기는 거란다." 

    

  모든 어머니의 비슷한 소원 이야기일 것이다. 자식의 행복에 부모가 미소 짓듯이 엄마가 행복해져야 자식들이 더 행복해질 것이다. 자식을 먼저 생각하는 위대한 어머니들 건강하게 장수하시기를 기원하며 울 엄마에게 드리는 글로 감사의 마음을 대신한다.


  "엄마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2022년 10월 가을날.

  울 엄마의 80번째 가을이 깊어갑니다.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는 가족들의 마음도 함께 익어갑니다.     

  4남매 가지마다 매달린 탐스러운 가족 열매들이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을 지켜봐 주시길 소원합니다.

  새로운 생신을 기다리며, 사랑하는 엄마를 평생 기억하겠습니다.   


  



' 위대한 어머니상 '

                                           성명  울 엄 마

당신은 위대한 어머니입니다.

4남매를 훌륭하게 키워내신 자랑스러운 우리 엄마였습니다.

     

금단의 지역에 둘러쳐진 튼튼한 울타리처럼

우리 남매들을 지켜주셨습니다.     

의식주 걱정 한번 내색도 없이

자식들에게 평생 모든 것을 내어주셨습니다. 

    

세파에 몰아치는 눈보라를 헤치고

홀로 꿋꿋하게 긴 세월을 견뎌오신 어머니!     

이제는 자식들이 지켜드릴 차례,

오래오래 옛 이야기하며 곁에 있어 주세요.

     

팔순을 맞이한 어머님께 이 상을 바칩니다.    

 

202210월 가을날.

엄마를 사랑하는 가족 일동.      

        

엄마에게 드리는 상장

이전 20화 가족사진 찍는 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