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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아니스트조현영 Apr 28. 2018

영원한 바로크, 드레스덴

-차이코프스키 발레 모음곡' 호두까기 인형'


 드레스덴에 대한 기억은 한 물건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유학생활 내내 동고동락했던 14인치 검정 TV. 정말 작고 싼 텔레비전이었지만 당시의 저에겐 유일한 친구였습니다. 학교가 끝나고 텅 빈 집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TV 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TV 속 광고 한 편에 넋을 잃고 빠졌습니다. 오페라 극장에서 울려 퍼지는 아리아 한 소절에 취해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의 풍경이었습니다. 별이 찬란한 밤! 늘씬하게 잘 빠진 잔에 시원한 맥주가 담겨있고 1cm 거품이 요염하게 얹힌 광고. 그리고 그 뒤로 펼쳐진 그림 같은 오페라 극장. 조명을 받으니 더 멋있더군요.     


<출처 - Beergle 블로그>

 ‘저기가 어딜까? TV가 아니라 진짜 저런 곳에 가서 오페라 공연도 보고 맥주도 한잔 마시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날 작은 텔레비전 안에서 나오는 광고를 보지 않았더라면 저는 드레스덴에 대한 환상을 갖지 못했을 겁니다. 그 극장은 바로 드레스덴의 젬퍼오퍼(Semperoper)였습니다. 젬퍼 오퍼는 드레스덴의 유명한 관현악단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전용홀이기도 합니다.      

<드레스덴 중앙역>

  드레스덴에서 유명한 곳은 모두 구시가지(Alt Stadt)에 있습니다. 중앙역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츠빙거(Zwinger) 궁전부터 젬퍼오퍼 그리고 드레스덴 성과 프라우엔 교회를 보고 군주의 행렬 벽화를 지나 알트 마르크트 광장까지 둘러보면 드레스덴의 주요 장소는 다 봅니다. 유럽의 여느 도시처럼 도심에는 ‘엘베(Elbe)’강이 흐르고요, 그 강을 기준으로 구시가와 신시가지가 나뉘어요.

<이건 드레스덴의 새로운 모습이다. 신시가지>

괴테 선생이 이 도시를 엘베강의 피렌체라고 불렀다는데 제가 처음 본 드레스덴은 피렌체 같다기 보단 공사장 같았어요. 모든 곳이 한참 공사 중이었거든요. 아직 성장 중인 도시 드레스덴은 세계전쟁 전과 후 그리고 독일 통일 전과 후로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바로크 시대의 온갖 유물을 다 갖고 있었지만 1945융단 폭격이라는 비유를 쓸 정도로 도시는 폐허가 됐습니다. 전쟁 때문이었지요. 그들의 역사와 가치관을 이해하지 못했을 때는 도시 전체가 공사 중인 것이 이해 안 되더니, 나중에는 그 생각과 가치가 부러웠습니다.

아는 만큼 보이고 이해한다더니 딱 들어맞는 말입니다.     
<츠빙거 궁전의 크로넨 문>


 츠빙거 궁전은 왕관 모양의 크로넨 문을 중심으로 좌우대칭으로 생겼습니다. 들어가면 십자형의 넓은 뜰에 바로크 양식으로 조각된 분수가 있는데요, 특히 '요정의 샘'이 유명합니다. 이제 유럽의 웬만한 궁전을 다 둘러본 아들 펠릭스는 대충 분위기를 익혔네요. 왕관문을 들어가는 순간부터 “엄마, 저 안에 멋진 정원이 있고 그 안에는 분수가 있지요?”라고 먼저 물어요.  사실 너무 많이 둘러보고 나면 아이 눈에는 다 같은 궁전에 다 같은 분수예요.


우리나라에도 궁궐 안에 연못이 있듯이 서양의 궁전에는 연못과 함께 분수가 꼭 있습니다. 이 궁전 안의 광장에서는 매년 5월에 드레스덴 음악제가 열립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오케스트라인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Dresden Staatskapelle)가 주요 연주를 하지요. 축제는 츠빙거 궁전뿐만 아니라 도심 곳곳의 주요 명소에서 열립니다. 라이프치히에 바흐 페스티벌이 있다면 드레스덴은 드레스덴 음악제가 있는 것이죠. 유럽은 도시별로 유명한 음악 축제들이 참 많은데 그들의 지독할 만큼 대단한 음악사랑을 엿볼 수가 있어요.      


 츠빙거와 더불어 유명한 곳이 바로 프라우엔 교회(Frauenkirche)입니다. 독일어로 여자를 ‘프라우’라고 하니 우리말로 하면 성모교회라고 번역됩니다. 이곳은 종교 개혁을 주장한 루터파의 개신 교회예요. 라이프치히와 드레스덴은 종교개혁의 본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독일은 로마 가톨릭과 루터파 개신교가 많은데, 전례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성모교회는 바로크 양식으로 1736년에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가 완공 기념 연주회를 했습니다. 

<프라우엔 교회-그 앞을 루터가 지키고 있다.>

이 교회의 상징은 95m나 되는 엄청 높은 돔이에요. 이탈리아 로마의 베드로 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 돔과 견줄만하답니다. 드레스덴 야경사진에 보이는 멋있는 건물 중의 하나가 이 성모교횐데요, 교회 안에서 천장을 둘러보면 정말 저런 그림을 어떻게 그렸을지 경이로울 뿐이에요. 어마어마한 무게를 버티는 기둥이 하나 없는데도 잘 서있어요.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이 교회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완전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연합군의 폭격기 1000대가 폭탄을 던졌으니 드레스덴은 한순간에 폐허가 됐지요. 전쟁이 끝난 후 드레스덴 사람들은 언젠가 재건축할 것을 생각하며 무너진 프라우엔 교회의 돌들을 모아 번호를 매겨 보관합니다. 그리고 독일 태생의 미국인 생물학자 블로벨이 어린 시절 프라우엔 교회의 모습을 봤던 기억을 되살려서 1994년에 프라우엔 교회 재건 사업을 시작했고, 드디어 2005년 재건이 끝나 옛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지금 현재 성모교회의 외벽은 흰 벽돌과 검은 벽돌로 켜켜이 구성되어 있어요. 성모 교회를 보더니 아이가 검은색 레고가 중간중간 박혀있다고 해서 자세히 설명해 줬네요. 사람들이 옛날 벽돌을 소중하게 모아서 다시 만든 것이라고요.     

<우연히 만난 신랑 신부. 그날 프라우엔 교회에서 결혼식이 열리고 있었다.>

 십자가 교회에 가서 천장도 둘러보고 미사도 드리고 나와서는 제가 그토록 보고 싶어 하는 젬퍼 오퍼로 향합니다. 특별히 해가 지기만을 기다렸다가요. 야경을 꼭 봐야죠! 젬퍼오퍼라고 하는 젬퍼 오페라하우스는 드레스덴의 심장입니다. 젬퍼 오페라 하우스는 당대의 건축 이론가 고트프리트 젬퍼(1803~1879)가 만든 것인데, 유럽은 사람 이름을 딴 건축물이나 박물관이 엄청 많아요. 그만큼 이름 걸고 만들어 놓은 명작이라는 증거겠지요. 하다못해 동네의 골목길 이름도 다 사람들의 이름이에요. 아무튼 이 오페라 극장이 바로 그 광고 속의 멋진 곳입니다. 라이프치히에서도 소개한 리하르트 바그너 생각나시죠? 그 사람의 초기 작품들도 이곳에서 막을 올렸습니다.      

<젬퍼 오퍼- 출처 구글 doopedia>

 바그너와 건축가 젬퍼는 절친한 친구 사이였는데, 두 사람은 고대 그리스에서 그랬던 것처럼 신을 향한 제사를 연상시키는 떠들썩한 연극을 다시 살려냈대요. 신들의 이야기는 젬퍼가 만든 건축의 화려한 장식에 잘 어울렸습니다. 1869년에 오페라 하우스는 화재로 불탔고, 젬퍼는 크게 상심했지만 재건축에 성공합니다.


 젬퍼 오페라 하우스는 개인의 예술에 대한 철저한 사랑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일입니다. 그토록 원하던 젬퍼오퍼를 보고 있자니 유유히 흘러가는 엘베 강물도 음악으로 들립니다. 아직도 공사 중인 곳이 많지만 영원히 발전하고 있는 도시 드레스덴에서 350년 전 바로크를 느낄 수 있으니 이 또한 신비롭네요.     


 차이코프스키 발레 모음곡 ‘호두까기 인형’

- ‘서곡’과 ‘사탕 요정의 춤’, ‘꽃의 요정 춤’     


“엄마! 오페라 극장에 오니까 호두까기 인형 생각나요!” 

저희가 도착한 날 젬퍼 오퍼에서는 현대 작품을 상연하고 있었습니다. 오페라의 내용도 모르는데 독어와 영어자막만 제공되는 프로그램이라 아이들이 보기엔 무리더군요. 마땅히 볼 만한 공연이 없어 고민하고 있던 중에 아들이 한 말은 은근히 저를 기분 좋게 했습니다.


언젠가 예술의 전당에서 봤던 호두까기 인형을 기억해 내는 아들이 말입니다.


 큰 무대와 여러 조명 장치를 필요로 하는 발레 공연은 주로 오페라 극장에서 연주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다수의 발레 공연은 오페라 극장에서 볼 수 있어요.  캐럴과 더불어 12월이 되면 공연장에서 어김없이 들리는 클래식이 있습니다.


바로 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모음곡입니다. 차이코프스키는 우수와 멜랑콜리로 표현되는 19세기 후반의 작곡가입니다. 대부분 그의 작품들이 고상하고 우아한 선율인데 반해 호두까기 인형은 좀 다릅니다. 귀엽다고 할까요? 어쨌거나 예외적인 작품입니다.      

<차이코프스키 1840~ 1893 러시아>

 차이코프스키는 1840년에 러시아에서 태어나 1893년에 죽었는데, 처음에는 법을 전공했다가 나중에 음악을 공부하게 된 사람이죠. 보통 법을 전공한 분들이 문학을 참 좋아합니다. 그리고 차이코프스키가 굉장히 잘 생겼는데, 보기에 예쁜 것들에 대해 대단한 호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발레 같은 예술 장르죠. 러시아 하면 또 발레를 빼놓을 수가 없는데, 마린스키, 볼쇼이 발레단 등 내한하는 유명 발레단들도 정말 많습니다. 어릴 때 부모님 손잡고 발레 보러 갔던 기억이 납니다. 발레 공연을 본다는 게 생각보다 흔한 일은 아닌데. 요즘이야 취미로 발레 배우는 분들이 많지만, 사실 발레는 왕실의 문화였습니다.     


  클래식을 듣는 데 발레도 한몫합니다.

보통 클래식을 접하는 순서랄까 단계가 있는데, 처음에 유명한 선율이 있는 기악 음악에서 성악 오페라를 듣고, 다음 단계에서는 발레를 봅니다. 음악이 빚어내는 서사 위에 발레 동작이 색깔을 입히는 거죠. 발레 역시 종합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 발레의 역사는 세계사와도 연관이 됩니다.     


 호두까기 인형은 여러분들 모두 잘 아는 줄거리예요. 여자 주인공 클라라와 그의 오빠 프리츠 그리고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다 준 드로셀마이어 할아버지 등이 나옵니다. 할아버지가 사다주신 호두까기 인형과 함께 과자의 나라로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인데, 독일 극작가 E T A 호프만의 환상 동화를 각색하여 만든 15곡의 모음곡입니다. 1892년에 초연 당시에는 혹평을 금치 못했죠.     


 발레로 보면 1시간 30분이 가까운 공연인데 기악 연주곡은 모두 8곡으로 구성되어 있고 평균 30분 정도 걸립니다. 그중에서 두 번째 곡 행진곡과 세 번째 곡 사탕 요정의 춤 마지막 꽃의 왈츠가 아주 유명해요. 이 행진곡만 들으면 무용수들이 무대 뒤에서 뛰어나와 행진하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사탕 요정의 춤은 광고에서도 자주 들었던 것 같고요.          


사탕요정의 춤에 쓰이는 신비한 악기가 있습니다. 바로 첼레스타입니다.


19세기 말에 개발된 첼레스타는 건반으로 철제 울림판을 때려 연주하는 건반악기입니다. 게다가 음의 높낮이가 달라서 멜로디를 연주할 수 있는 유율 타악기입니다. 종소리와 비슷한 음색이 특징적이며 건반을 이용해 빠르게 연주할 수 있어서 오케스트라에서도 독특한 역할을 하고 있어요. 음색과 음량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오케스트라에서 다른 건반악기나 하프와 함께 연주할 때는 고민해야 합니다. 음색이 비슷하게 들릴 수 있거든요.

<첼레스타>

저와 아들은 차이코프스키 호두까기 인형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최근 광고에도 많이 사용되었어요.

우아한 발레 음악으로 그렇게 재미난 광고를 만들었다는 게 참 신기해요.

그런데 지금의 명작인 이 작품이 초연 때는 실패를 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보는 관점은 많이 달랐습니다.


 일단 주인공이 마리라는 여자 어린이인 것이 사람들은 싫었어요. 보통은 예쁜 공주나 왕자가 주인공이어야 하는데, 주인공 설정 자체가 호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한 거죠. 그랑 파트되. 그러니까 남녀 두 주인공인 무용수가 서로 춤을 추는 장면이 그려지질 않는 겁니다. 클래식 발레에서는 그랑 파트되가 아주 중요하거든요.


 원작에 재 안무가 가미되고,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과자 왕국의 여왕인 사탕 요정의 춤이 겹쳐지면서 인기를 몰아갑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1954년에 미국에서 공연을 하게 된 이후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지죠. 바로 가족을 중요시하는 미국 문화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크리스마스가 되면 으레 공연 하나쯤은 봐야 할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면서부터 호두까기는 연말 단골 상품이 됐다고 봅니다.     


 곡 전체 구성은 작은 서곡- 행진곡- 사탕 요정의 춤- 러시아 농부의 춤 (트레팍)- 아라비아의 춤- 중국 춤- 갈잎 피리의 춤- 꽃의 왈츠 8곡입니다.


서곡, 사탕 요정의 춤과 더불어 트레팍과 마지막 곡인 꽃의 왈츠가 가장 인기가 좋습니다. 러시아 농부들의 춤인 트레팍을 묘사한 부분도 아이들이 굉장히 좋아합니다. 템포도 빠르고 신나거든요. 마지막 곡 꽃의 왈츠 들을 건데, 드라마에서 꽃처럼 예쁜 인물들이 나오면 자주 나오는 음악입니다.

차이코프스키- 호두까기 인형 중 '사탕 요정의 춤'

Semperoper Ballett - Tanz der Zuckerfee 2010                                                                                                                                                                

https://youtu.be/X45CawjywAQ

사탕 요정의 춤이 들어간 텔레비전광고

https://youtu.be/36JvP5pw3po




차이코프스키- 호두까기 인형 중 '서곡' suite

https://youtu.be/BZEgtbN6p6o

차이코프스키- 호두까기 인형 중 '꽃의 왈츠'

https://youtu.be/SZD_ZzubDxs

#피아니스트조현영#조현영의피아노토크 #아트앤소울#차이코프스키 #드레스덴 #호두까기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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