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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아니스트조현영 May 05. 2018

 낭만가객의 파라다이스

- 드보르작  교향곡 '신세계로부터' 4악장

<작센 주의 수도임을 알리는 문양>

 작센 주의 수도인 드레스덴은 정말 많은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옛날 바로크 시대에는 귀족들을 위한 최고의 예술도시였으면서, 현재는 낭만가객들의 파라다이스입니다. 관광지답게 일상 속의 예술을 즐길 수 있는 곳들도 많았어요. 구시가지로 가는 도중에 이방인 음악가들이 기타와 팬파이프를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팬파이프를 실제로 처음 봤습니다. 악기의 음색이나 생김새가 참 신기하다며 한참을 멈춰 서서 음악을 듣더군요.

아무 말 안 했지만 자동적으로 멈춰서 듣게 되는 저 반응은 음악의 힘이겠지요. 거리의 악사인지라 밥벌이가 주목적이겠지만 그들의 얼굴엔 밥보다도 더 행복하게 하는 음악의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덩달아 듣는 저희도 행복해졌고요.     

 드레스덴의 도시 정렬은 다소 특이합니다. 중앙역에서 일직선으로 뻗어있는 길들이 모두 볼거리가 가득해요. 특히 도서관 건물 안에 이 도시의 가장 큰 명물인 드레스덴 필하모니가 있다는 건 저에겐 굉장한 기쁨이었습니다. 요즘은 한국도 많이 달라져서 도서관에서 책도 읽고 공연도 볼 수 있지만 서울시향의 연주를 서울시립도서관 안에서 들을 순 없잖아요.

<중앙도서관과 드레스덴 필하모니의 조화>

책과 음악이 제대로 한 곳에서 만나고 있는 거지요. 이 건물을 보기만 해도 행복했습니다. 홀 이름도 헤라클레스 홀이에요. 헤라클레스(Hercules)라면 그 유명한 제우스와 알크메네의 아들로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입니다. 이미 어릴 때 자신을 죽이려 한 헤라의 음모에서도 살아납니다. 독사를 양 손으로 잡았다는 이야기는 유명하지요. 어른인 저도 뱀이라고 하면 보기만 해도 무서운데 정말 용감하긴 한가 봐요. 아무튼 그리스 신화 속 헤라클레스의 이름을 딴 드레스덴 대표 오케스트라의 전용홀입니다. 이런 걸 보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전용홀이 아직 없다는 게 참 안타까워요.


음악은 굉장히 음향조건에 민감해서 그 오케스트라의 최상의 연주를 들을 수 있는 전용홀이 아주 중요합니다.       

<드레스덴 필하모니-출처 구글>

 드레스덴 필하모닉은 드레스덴 젬퍼오퍼를 주 무대로 활동 중인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SKD)와 함께 드레스덴 음악문화를 이끌고 있는 관현악단입니다. 두 오케스트라 모두 궁정에서 시작됐지만, SKD(드레스덴 작센 국립 관현악단)가 오페라 연주 중심의 옛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반면, 드레스덴 필하모닉은 클래식을 일반 대중의 문화로 탈바꿈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시민을 위한 오케스트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요. 그런 이유로 전용홀도 시내 한가운데 중앙도서관과 같은 건물에 있는 걸 겁니다.


<드레스덴 필하모니 음악당>


<음악당 앞엔 역시 분수가 어울린다. 신나서 춤추는 아들>

중앙도서관을 따라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관광 명소들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주말이라 그런지 오늘따라 프라우엔 교회 앞에는 사람들이 엄청 많더군요. 자세히 보니 연주를 준비하는 거리의 피아니스트도 보입니다. 그는 움직이는 그랜드 피아노를 끌고 다니면서 연주를 했습니다.

<공연을 준비 중인 피아니스트>

 사람을 보니 유학 초창기에 쾰른의 라인 강에서 갑자기 연주를 했던 기억이 새롭네요. 누가 연주했나고요? 제가 했답니다. 쾰른에도 저런 피아니스트가 있었는데, 본인 연주 후 관객 중에 한 명인 저에게 연주를 부탁했습니다. 그땐 뭐가 그리 용감하고 도전적이었는지. 젊음이 그리운 건지 그때의 용기가 그리운 건지 아리송한 마음입니다. 갑자기 저 연주자를 보니 쾰른의 피아니스트도, 20년 전 용감한 제 모습도 머릿속에 동시에 오버랩됩니다.     

<만남의 장소 -성모교회>

소소한 일상이 주는 행복     

 어딜 가나 만남의 장소가 있지요? 아마도 드레스덴 사람들에겐 성모 교회 앞 루터 동상이 아닐까 싶어요. 마치 루터가 이 도시의 수호신이나 되는 양 용감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무서움이나 거리감 같은 감정이 느껴지지도 않아요. 우리 같으면 사각 철조망 쳐 놓고 못 들어가게 했을 텐데, 드레스덴 사람들은 루터를 둘러싸고 앉아 커피도 마시고 맥주도 마시면서 쉬고 있네요. 종교개혁가 루터보다는 동네 이장 아저씨 루터 같아요.      

<캐나다 식당에서 마시는 독일 맥주 펠트슐로센>

 성모 교회 앞에는 맛있는 식당들이 즐비하게 있는데, 아이들은 독일 음식에 질렸는지 캐나다 식당에 가자고 합니다. 독일에서 먹는 캐나다 음식은 또 다른 묘미가 있습니다만, 맥주는 역시 꼭 독일 맥주여야지요.


드레스덴 전통 맥주인 천사표 펠트슐로센을 주문했어요. 귀여운 천사들이 양 손 가득 거품 맥주를 들고 서 있는 저 로고 너무 귀엽죠? 맛은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천국의 맛입니다.     

<변장한 마네킹 예술가>

 유독 독일에 많은 변장한 마네킹 예술가들. 반갑네요. 저도 처음 봤을 땐 정말 사람인가 싶어서 옆에 가서 만져보기도 하고, 말도 걸어보고 했어요. 역시나 저희 아이들이 가만있을 친구들이 아닙니다. 가서 만져보고 심지어 제 아들은 콧구멍에 손까지 갖다 대보더라고요. 숨을 쉬어야 진짜 사람이라며... 너무 미안해서 저 나무통에 5유로 지폐 넣었습니다. 저것도 예술인데, 그냥 보고 지나칠 수가 있어야지요.


 캐나다 식당이 바로 교회 정 중앙이라 교회에서 결혼식 하는 신랑 신부를 많이 보게 됐습니다. 맥주를 마시니 온 세상이 좋아 보이는데, 그런 기분으로 바라보니 더 아름다워 보입니다. 두 사람이 만나 하나 되는 날. 저희 부부도 그들을 보면서 “우리가 저렇게 만나 오늘까지 살았네“ 하며 웃었어요.

 오래된 예술 도시 드레스덴의 모습도 좋고, 이방인들에게 호의적인 분위기도 좋고, 토요일 오후 이렇게 평안하게 앉아 맥주 마시는 소소한 일상도 모든 게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드보르작  교향곡 '신세계로부터' 4악장     


 드레스덴이 낭만 가객의 파라다이스라고 소개했는데, 드레스덴만큼이나 낭만이 넘쳐나는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드레스덴에서 1시간 30분이면 도착하는 체코이지요. 일정상 옆 동네 체코까지 건너가진 못했지만, 드레스덴에서 꼭 듣고 싶은 곡을 소개하려 합니다. 드레스덴과 앞  글자가 같은 드보르작입니다. 체코 국민작곡가 드보르작이 작곡한 신세계 교향곡  들어볼까요?


행운아 드보르작

 ‘인생 한 방’, ‘대박’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작곡가 안토닌 드보르작 (Antonín Dvořák, 1841~1904 체코)이 떠오릅니다. 물론 아무 노력도 안 하고 있는 사람에게 오는 행운은 절대 없습니다. 그러나 훌륭한 음악가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 중이던 드보르작에게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는 정말 인생을 대박나게 하는 행운의 전령사였습니다.                       


정육점집 아들에서 국민 음악가로

체코를 대표하는 국민주의 음악가 드보르작은 1841년 수도인 프라하 근교의 넬라호제베스에서 정육점과 여관업을 하는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습니다. 제가 처음 드보르작에 대해 알게 됐을 땐 아버지의 직업이 음악과 아무 관련이 없는 정육점 주인이라는 데 상당히 놀랬습니다. 예술은 다른 분야와 달리 부모의 유전적인 영향도 많이 받고, 환경의 영향도 상당한데, 클래식 변방국인 체코에서 비 음악가의 아들로 태어난 그가 어쩌면 이토록 멋진 선율을 작곡할 수 있는지 놀라울 뿐이었습니다.


드보르작의 아버지는 생계를 이어가기도 힘든 음악가의 길을 반대했습니다. 그저 드보르작이 자신의 가업을 이어받아 정육점과 여관을 하기를 바랐지요. 예나 지금이나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예술가라는 직업은 꽤나 부모를 걱정시키는 직업입니다. 성실했던 그는 음악공부를 하면서도 정육점을 물려받기 위해 필요한 자격증 공부를 계속했고, 20세 전에 자격증을 취득하기도 했습니다. (하마터면 우리는 ‘슬라브 무곡’의 작곡가 대신 ‘드보르작 정육점’ 사장을 만날 뻔했습니다.) 하지만 드보르작은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끝내는 음악가의 길을 걸었습니다. 부모의 걱정은 현실이 돼버렸지만,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하는 드보르작에겐 행복이었습니다.


드보르작은 19세기 클래식의 중심지를 서유럽에서 동유럽으로 바꿔 놓은 음악가입니다. 음악가 집안도 아니고 그저 음악을 좋아했던 가난한 정육점집 8남매 장남으로, 평생 고기 썰며 살 뻔했는데 음악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겁니다.     


속 터지는 날에 듣고 싶은 음악

1891년 (그의 나이 50살)에 프라하 음악원의 교수가 되고 (우리나라로 비유하면 서울대 교수), 이듬해 뉴욕의 국민 음악원 원장으로 3년간 재직하느라 미국 생활을 하게 됩니다. 앞서 말씀드린 슬라브 무곡의 대성공으로 드보르작의 명망이 유럽을 넘어 멀리 신대륙 미국까지 알려진 것입니다. 일종의 글로벌 인재 스카우트였죠. 망설임 끝에 신대륙으로 향한 드보르작, 떠나야 고국이 더 그리운 법입니다. 그때 고국에 대한 향수병으로 작곡하게 된 곡이 바로 이 교향곡 9'신세계 교향곡'(1893년 작곡)입니다.


미국의 흑인 음악과 보헤미안 음악을 결합시킨 융합의 대가인 드보르작이 작곡한 교향곡은 모두 9개입니다. 그의 음악 중 가장 유명한 신세계 교향곡은 영화 '죠스'의 도입부와 비슷하여 더욱 유명합니다. 아무튼 제목은 몰라도 야구장에서 목청껏 외쳤을 그 멜로디. 트럼펫, 트롬본 등의 빵빵 터지는 금관악기 소리가 답답한 속을 달래줍니다.


 모두 4악장으로 구성된 이 곡은 1악장 10분, 2악장 13분, 3악장 10분, 4악장 10분가량으로 전체 연주 시간은 약 43분 정도입니다. 1악장은 마단조의 조용한 첼로 선율로 시작됩니다. 처음은 아다지오 (Adagio)로 느리게 시작하지만 어느새 악상이 고조되면서 알레그로 몰토(Allegro molto 더욱 빠르게)로 변합니다. 2악장 라르고 (Larg 아주 느리게)는 흑인 영가 느낌의 ‘Going home’입니다. 오보에의 사촌 격인 잉글리시 호른이 이끄는 주선율은 고즈넉한 기분을 자아내며 선율만 들어봐도 고국에 대한 향수를 느낄 수 있습니다. 3악장은 스케르쵸 (Scherzo 익살스럽게)로 마단조이지만 슬프다기보단 정겹습니다. 주로 따뜻한 음색을 표현하는 목관악기들이 연주되어 낙천적인 느낌이 듭니다.


 마지막 4악장은 이 곡의 제목이 ‘신세계로부터’ 임을 제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육중하고 거침없이 시작되는 서두는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물론 ‘신세계’가 의미하는 것은 아메리카(미국)를 말하는 것이지만 드보르작의 또 다른 신세계 ‘대자연’의 위용도 느껴집니다. 마지막에 길고 웅장하게 울리는 관악기의 투티 (Tutti)가 심장을 뚫는 듯한 강렬한 에너지를 느끼게 합니다.


드레스덴에서 듣는 드보르작 너무 황홀합니다.


    영원한 드레스덴!
                        훌륭한 드보르작!                    


#피아니스트조현영 #조현영의피아노토크 #아트앤소울 #드보르작#드레스덴


드보르작 교향곡 9번 4악장

지휘 구스타보 두다멜

https://youtu.be/vHqtJH2f1Yk

인트로가 비슷한

영화 죠스 OST

https://youtu.be/d6fCxAeJVb8

아가들의 애창곡

아기상어

-인트로가 비슷해요

https://youtu.be/761ae_KDg_Q



드보르작 신세계교항곡 9번 '신세계로부터'

연주 뮌헨 필하모니

지휘 첼리비다케

https://youtu.be/_9RT2nHD6C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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