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층소화 06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사임당 Dec 08. 2023

저는 어찌해야 하나요?

알려주세요. 마치는 법이요.

지난주에 연재를 끝냈습니다.

처음 해본 연재는 유명 작가들의 마감에 대한 부담이나 글감에 대한 고뇌 같은 것도 약간 맛볼 수 있었던 꽤 멋진 경험이었어요. 저도 뭔가 대단한, 인기글을 연재 중인 작가가 된 것만 같은 그런 체험이었고요. 고통에 대한 글을 쓰는 것과 상관없이 글을 브런치에 연재한다는 낙. '모르겠고 좋은 시간이었다' 하고 일기를 닫습니다.


그런데!

어제 '연재 잊지 말고 글 쓰세요'하는 브런치 문자가 오더군요. 제가 뭘 잘못했을까요? 미리 수정을 하지 않고 급하게 마치느라 몰랐을 뿐 아직 진행 중인가요? (브런치 연재할 때 계획 없이 그날 기분에 맞는 소재목으로 10회를 적긴 했어요)그래서 오늘은 글을 써야만 하는 거 같습니다. 끝낸 연재를 어떻게 마무리해야 하죠? 다시 한주만 돌아가서 쓸까요? 완전히 엉뚱한 이야기로 얼렁뚱땅 넘어가야 하나요? 선택해야만 합니다. 인생은 끝없는 선택의 연속이니까요.


1. 갈등에 아팠던 얘기를 더 한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2. 층간소음 대처법을 쓴다

3. 사이좋은 이웃 관계를 위한 해법을 준다.

4. (변덕도 없는) 날씨 얘기를 한다.

5. (한 적도 없는) 고부 갈등 사연을 적는다.

6. (이미 먹었는데) 저녁에 뭐 먹을지 고민하는 글을 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연재 진짜 마지막 회라고 생각하고 야망도 없이 기대도 없이 편한 글을 쓰죠 뭐.



느낌표를 줄 글을 쓰지는 못합니다. 그저 마침표적인 글이죠. 살면서 "말 좀 해봐라"하는, 답답하다는 반응만을 보던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자꾸 말 많은 사람이 됩니다. 글 많은 사람이 되고 있어요. 잠깐이지만 온 가족이 함께 살 때 저는 그냥 막내이기만 하면 되던 그때처럼 좀 발랄해지는 중인 것도 같습니다. 낯선 기분에 기부니가 좋습니다. 요즘은 약도 안 먹어요. 수면제, 불안약 말고 피부약인데요. 묘기증약이에요. 4년 전부터 갑자기 스트레스로 면역력이 약해져서인지 여기저기 좀 아팠거든요. 이상도 없다는데 치통에 머리까지 아프고 피부가 가려워 자다 자꾸 깼어요. 아 오늘은 제 난치병 아니 증상 얘기를 할게요.


그럼 층간소음 마지막 수다 들어갑니다.


제 눈에는 조금 늙었습니다. 원래도 균형 없이(풍만한 뱃살 날씬한 엉덩) 살도 없는데 더 빠졌으니 주름까지 유화를 그립니다. 군데군데 골이 만져집니다. 흰머리가 나고 노화가 눈에 띄게 두드러질 시기일지도 모르지만요. 층간 소음으로 시달리던 4년의 시간은 그렇게 흔적을 남겼습니다.


저는 좀 철도 없고 느긋한 천성을 갖고 있습니다. 책이나 보고 농사를 지으며 안빈낙도 주경야독이 당연한 사람. 장꾸인 아버지를 닮았습니다.

 '내일은 밭에 돌을 더 많이 골라내어야겠다. 비단 같은 흙을 만들어야지' 하는 류의 야망밖에 없는 아버지와 돈, 성공, 인정받음이 인생 최고의 목표인 사람의 만남은 실상 잘못된 만남 같은 거였죠. 두 분이 얼마나 서로를 사랑하는지와는 별개로요.

완벽하며 완전하길 바라는 모친의 영향은 제게는 좋은 쪽으로 발현되지 못했어요. 더 잘하길 원하는 누군가에게 '한 번 해 보이겠어!' 하며 덤비는 <생각>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던 거예요. '나는 안 되는 아이'라는 자체 낙인만 찍고 만 겁니다. 누구를 탓할 것도 없지만 저의 천성을 조금 편안하게 있는 대로 받아주는 누군가 있었다면 어떨까. 자아상이라도 편안했지 않을까 싶은 점은 누구에게 하는 소리인지 모르게 '안타깝네'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당신은 자학을 많이 하지!" 하며 남편이 말을 끼워 넣습니다. "저리 가있어. 주 차기 전에!("당신의 엉덩이가 내 다리에 축구공화(化)가 되기 전에"라는 경상도 사투리입니다)" 저도 점잖게 한 소리를 하려다 마음속에 넣어둡니다.

더 나은 저를 바라셨던 어머니의 바람은 기대도 갖기 전에 급하게 철회되었습니다. 항상 기대 이상을 이루어내는 큰오빠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커지는 일만 더욱 자주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태생이 외향인, 수다쟁이도 아닌데 더 소심하고 의기소침한 채 실패자의 열패감속에 살았지요.


결혼이니 임신이니 제 한계를 벗어나는 집단에 소속될 상상을 한 적도 없는데 결혼도 임신도 하게 돼요. 하지만 끔찍할 것 같던 임신은 기쁨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냥 아무 일도 없이 기분이 좋아졌어요. 저를 한심해하지 않는 사람과 같이 있다는 현실 때문일까요? 기쁜 감정의 연속이었지요. 그래서 첫째의 태명은 기쁨이라고 지었습니다. 너무도 사랑스럽고 귀여운 아이와 책임감 강한 남편, 결혼생활은 꿈같았어요. 행복도 하다가 힘들기도 하다가 둘째도 생기고 누구나 그렇듯 평범하게요. 그러다 갑자기 찾아온 이웃 간의 사생활 침해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주었습니다. 원래도 그리 내성이 강하지 않은 타인과의 갈등이었으니 혼자 속을 많이 끓였나 봅니다.


이런저런 증상을 얻었지요. 그래도 나름대로 잘 풀었을지도 몰라요. 그냥 증상 정도로만 앓고 지나갔으니까요. 우울증. 묘기증, 탈모증.. 이 정도?


묘기증은 증상을 없애는 약이 아직 없어요. 급작스럽게 가려움이 몰려오면 손톱으로 십자가나 만들고 침좀 바르고 해서 넘기면 좋을 텐데. 유리대신 책상에 까는 말랑한 플라스틱 있죠? 그걸 피부 위에 올려놓고 긁는 느낌이 들어요. 긁고는 있는데 피부에 긁는 동안이라도 시원한 느낌을 주는 효과가 전혀 없지요. 그럼에도 뜬구름 잡듯 피부를 긁으면 손이 지나간 자리는 표식이 남아요. 인터넷에 치면 나오는 사진이 제 모습일 거예요. 좀 보기에 불편해요. 으윽. 끔찍 뭐 이런..

옷을 입어도 벗어도 그 자극에 가려움이 활성화됩니다. 열감이 생겨서 가려움이 함께 오는데 긁어서 시원하지는 않지만 본능적으로 막 긁게 되지요. 그러면 벌집 모양 피부가 됩니다. 그림도 그려지고 글도 써집니다. 뭐 어쩌겠어요. 약도 없는데. 아. 약은 있는데 낫지 않고 증상을 잠시 차단? 약효가 있는 동안 편안해지는 효과정도.


얘기 하나 해드릴게요.

저는 주로 둘째랑 자요. 제겐 남편 정말 소중해요. 사랑하지요. 허나 합방을 요구하는 저희 집 꼬마를 내칠 수가 없어서요. 고 녀석을 안고 자면 너무 행복도 하고요. 그럼에도 남편이 우리가 남일지 모른다는 오해가 돌이키기 힘들어지기 전에 한 공간에 있어도 주는데요. 어느 날 부부가 어색하게 한 침대에서 자고 있었어요. 약도 안 먹고 잠이 든 저는 한참 꿀잠 자야 할 시간에 열감이 드는 거예요. 그러면 가려움이 밀물처럼 들이닥치거든요. 차가운 이불을 찾아 떠돕니다. 그러고는 옷을 벗다시피 하며 긁었나 봐요.  옆지기가 자꾸 옷을 벗으며 몸을 만지고.. 그래서 한 유부남이 무척 오해를 하여 즐거운 상상을 하다 마누라에게 무안을 받았다. 하는 옛날이야기입니다. 쓰고보니 미안하네요. 오늘 조용히 손이나 한번 잡아주어야겠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 증상이 좀 뭐랄까? 지금 약 없이 2주째를 보내고 있다는 겁니다. 층간소음 연재를 하며 증상이 완화된 거죠. 약효가 나왔다. 그렇다고 보겠습니다. 되도록이면 약 없이 버텨보려 억지로 잠을 자도 결국은 새벽에 약 먹으려 일어나곤 했거든요. 지금은 한 번씩 가렵지만 꽤 참을 수도 있는 수준이고요. 그럼에도 옷에 쓸려 벌겋게 부어오르면 아이들이고 남편이고 깜짝 놀라긴 해요. 어우~하면서요. 약을 먹은 4년 동안 2주 동안 안 먹은 적은 없었으니 희망을 가져도 될 것 같지 않나요? 이러다 조울증도 다 낫고 묘기증도 다 낫고 사는 게 그냥 재미있고 행복해서 글쓰기도 잊고 살.. 아도 좋을 거 같다는 생각 해봅니다. 그런데 나쁘지 않을 거 같네요. 사실 첫째를 임신하고 육아일기를 다 쓴 후는 글을 전혀 안 썼으니 저는 행복하면 글을 못 쓰긴 하던데 말이에요. 육아에 치여서인지 모르지만. 제가 행복하면 글을 안 쓴다고 치면 제가 글을 쓰는 게 좋은 건가요 안 쓰는 게 좋은 걸까요? 아니 그게 아니라 써도 써서 행복하고 못써도 못쓰니 행복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요. 저는 행복하렵니다. 아뇨. 저는 행복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읽어주셔서요^^


 이렇게 도대체 왜 쓴 건지 모르겠지만 억지로 한 회를 쓰며 층간소음 진짜 연재를 마치고 싶은데요. 또 쓰라고 하면 이제 뭐 써요? 저는 어찌해야 하나요? 글소음을 마치고 싶답니다.

그러기는 싫지만 맛보기만 보여드리겠습니다. 일단 피부를 살짝 만져줍니다. 붉어지면서 피부가 변신 준비를 합니다.

벌집이 만들어졌습니다. 많이 긁지 않았는데 올라오네요.

가라앉고 있습니다. 한번 긁고 나면 연쇄적으로 가려웠는데 가라앉을 동안 참을만합니다. 진짜 괜찮아졌네요. 다행입니다.


예전에 자신도 겪었다면서 누가 "가려움을 좀 참아봐라. 그러면 가라앉는다"는 조언을 해주었는데요. 사실 심할 때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말이었어요. 누구든 아플 때 "금방 지나간다 조금만 참아라" 하는 말을 도움을 주려는 마음으로 하곤 하는데요. 오히려 참기 어려운 마음을 키우는 말이 되기도 하고, 차라리 말을 참으면 어떨까.. 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힘들어 죽겠는데 주변에서 짐을 더 올리는 것 같은 그런 거. 좋은 의도였더라도요. 누군가 힘들어한다면 곁만 지켜주리라. 좋은 의도로 간섭하지 않으리라. 제가 알리 없는 마음의 고통을 쉽게 단정하지 않아야겠다 또 한 번 기억해 봅니다. 외로움은 옆에 사람이 없을 때보다 마음을 몰라주는 옆 사람 때문에 더 느껴지기도 하니까요.

이전 05화 층간 소음 연재를 마치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