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는 물건이 별로 없습니다. 아마 사주에 금이 모자랄 거예요. 물이 모자라나? 그러면 몸에 금붙이를 붙이고 다니는 게 유리하다는 거 같았어요. 물이 모자라면 물을 가까이하고 뭐 그런식으로요.
그런데 저는 타고나길 반짝였어요. 눈에 광채가 나고 머릿결은 비단같이 물결치고 피부는 윤이났. 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네 저는 참, 평범합니다. 샤워하고 나온 직후 수분을 잔뜩 머금은 얼굴이 가끔 예뻐 보이는 딱 보통인 사람. 그런데 말입니다. 타고나길 반짝이지도 않는데 이상한 자존심 같은 거랄까요? 꾸미는걸 좀 조심했어요. 눈화장을 하거나 반짝이는 물건을 몸 구석구석 나누어서 달고 다니지도 않았지요. 뭘 좀 신경 쓰면 너무 뭔가 좀 민망해요. 너무 이뻐 보이면 곤란한데.. 아마 그런 마음이었지 않나. 예, 죄송합니다. 심심한 사과의 말씀..
이쁘지는 않으면서 또 무의식적 자신감이라도 있는지 '아 너무 눈에 띄면 곤란해' 하는 마음이 들면서 꾸미는 걸 경계했답니다. 참 이상해요. 거기에 대한 제 해석은 이랬습니다. <내 무의식은 나를 나름대로 괜찮다고 보고 있다. 또 나름 꾸미면 볼만하기도 하다> 그러니 저런 마음이었겠죠. 무슨 기준인지는 모르지만요. 지금 생각해 보니 남들이 흉본다는 엄마 말씀 때문인 것 같아요. 지나치게 사람들을 신경 쓰다 보니 튀지 않으려고 최대한 꾸안꾸를 유지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눈길을 끌고 싶지만 욕먹을 것 같아 최대한 참고 참아서 요 정도까지만..
딱 히피차림이었습니다. 치렁치렁한 흰색 긴치마에 머리는 약하게 컬을 주어 풀고 다녔습니다. 탱크톱을 입고요. 물론 흉추 7번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은 필수입니다. 아 또 이러면 안 되지만. 포레스트검프에 나오는 제니가 히피 생활할 때 정도를 상상하시면 되겠습니다. 비교를 해도 이쁜 여자랑 하냐.
직장에서는 누가 봐도 커리어우먼처럼 입고 다녔습니다. 대단한 커리어가 필요하지도 않은 사무보조업무를 함에도 언제나 마음가짐은 상무이사죠. 이 회사 최초의 여성 상무이사. 검은색 팬슬스커트에 흰 셔츠. 통이 넓은 검정 슬랙스에 V넥 쇄골이 보이는 니트. 트렌치코트에 긴 스카프. 날씬함이 강조되는 실크 플레어스커트. 드레이프가 잡힌 네이비 드레스 등등. 심혈을 다해 고른 물건들이 저를 빛내준다고 믿었습니다. 진한 화장이나 번쩍 번쩍하는 장신구는 너무 꾸민 기분이 들었어요. 그런데 옷은 입고 싶은대로 입어도 지나치지는 않아서 원하는 대로 입었습니다. 옷으로만 힘을 주는 것. 그게 제가 최대한 저를 빛나 보이게 하는 비법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는 몰랐어요. 제가 외부 요인의 도움 없이 반짝일 수 있는 존재라는 걸요. 그럴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호수 구석구석이 한 번씩은 찬란히 빛나듯이. 저도 구석구석 빠짐없이 빛나리라는 것을요. 그저 외부 무언가의 도움만이 저를 반짝이게 할 수 있다고만 생각했어요. 예쁜 옷이, 병원에 들인 돈만큼 빛날 피부같은게요.
오늘도 저는 봅니다. 하나씩 제게서 피어나는 반짝임을요. 검은 구석을 몰아내고 화사하게 피어나는 밝음. 이젠 찾을 필요 없이 눈에 보입니다. 처음엔 제게서 나온것 같지 않은 반짝임이 낯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젠 압니다. 눈부신 날들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요. 돈으로 살수 없는 것이라는 걸요. 백화점에서 고를 수 없다는것도요.
저의 눈부신 흰머리. 오늘도 밝게 빛나는 그 반짝임. 제 속에서 끊임없이 올라오는 은빛 물결.. 막을 수도 없는 변화를요. 물론 제 외모에서 빛이 나는만큼 제 속에 든 내모(內貌)도 빛이나면 좋겠습니다. 그건 자동으로 안되네요. 불공평하다...그러니 시간도 들이고 품도 들여서 이러는지 모릅니다. 구석 구석 제 속을 들여다보고 다시 쌓고 땜빵하는 거. 아이가 언제 "으앵" 울지 몰라 촉각을 곤두세우던 때처럼. 시도 때도 없이 호출하는 글자들. 언뜻 언뜻 비치어요. 영영 사라지기전에 퍼뜩 공책을 펼쳐 적습니다. 쓰고 싶은 기분을요. 대단한 글도 깨달음도 아닌 그냥 쓰고 싶은 그 기분을 얼른 메모합니다. 그렇게 메모한 한 줄이 저 자신에게 들어가는 열쇠가 되어줍니다. 오늘도 열쇠를 구해 이렇게 들어왔네요. 겨우 흰머리 자랑이나 하는 글이 완성이 되었지만. 흰머리 생각도 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까 고민도 하고 그러면서 내면이 자라지 않을까 위안합니다. 제 외모를 따라잡아야하니 물도 불도 가리기 힘듭니다. 그저 적어내어 봅니다. 얻어걸릴 성찰도 기대하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