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사임당 Jan 02. 2024

눈물로 시 한 편을 읽습니다. 그리고

책 <책 읽는 사람> 그 속에서..

산을 보며


늘 그렇게

고요하고 든든한

푸른 힘으로 나를 지켜주십시오


기쁠 때나 슬플 때

나의 삶이 메마르고

참을성이 부족할 때

오해받은 일이 억울하여

누구를 용서할 수 없을 때


나는 창을 열고

당신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이름만 불러도 희망이 되고

바라만 보아도 위로가 되는 산

그 푸른 침묵 속에

기도로 열리는 오늘입니다


다시 사랑할 힘을 주십시오


이해인



다시 사랑할 힘을 주십시오 다시 사랑할 힘을 주십시오 이해인 수녀님마저 말씀하실 정도라면 사랑이 부족한 내가 힘든 것은 당연하구나. 사랑을 덮고 있는 덤불을 글로 하나씩 치워보자. 사랑이 나올 수 있게. 표현할 수 있게.

내 속에도 사랑이 있을 거라 믿어 본다. 찾아보려 한다. 오늘도 그 여정을 글로 떠나 본다.






사춘기 딸과 나 사이 위험 수위. 경고 경고!



저를 미워만 하는 세상 속에서 산다 생각한 때가 있습니다. '세상이 가혹하다. 사람들이 잔인하다'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제가 미움받을 조건을 갖추어서라고 판단했습니다. 사실 세상에 관심이 전혀 없다 보니 둘러보지도 않았어요. 그저 못난 저만 보았지요. 세상을 통틀어 저에게 가장 관심 있는 제가요. 못남이 미움받을 조건이 헤아리자면 너무 많아 끝도 없이 나열도 가능한 정도더군요. 싫어할 만한 점은 관심을 가질수록 늘어났습니다. 미움은 그렘린(1984년 피비 케이츠 주연만 기억남)처럼 (눈)물이 닿자마자 수를 늘렸습니다.


저는 제가 부끄럽습니다. 싫습니다. 한심스럽습니다.


딸은 저를 똑 닮았습니다. 제 어머니가 "꼭 널 닮은 딸 하나만 낳아봐라!" 하셔서 이리되었을까요? 어머니는 제게 그런 식의 애정, 배신당했을 때나 쓰는 표현을 하신 적이 없어요. 그만큼 관심을 주지 않으셨어요. 그런데도 이 무슨 가혹한 운명의 장난.. 아니고 유전일까요? 유전이니 반반 확률 중에, 두 명 낳은 아이 중에 한 아이는 저를 닮는 게 오히려 당연한데도 말입니다.


말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해 놓고는 아무도 나를 몰라준다고 섭섭해합니다. 매일 공상이나 하며 시간을 보내고 노력은 보태지 않지요. 선생님이 설명하시는 대부분이 이해되지 않는 나쁜 머리도. 코피 한 번 흘리지 않고 학창 시절을 보내는 한가한 모습도. 못 생긴 얼굴도, 어중간하게 큰 키도, 덥수룩한 머리숱도, 대칭을 이루지 않는 눈도, 남들에겐 들리지도 않는 자신 없는 목소리도, 외모부터 내면 버릇이니 취향까지 모든 게 끔찍했습니다. 후회부터 하게 만드는 말과 행동도 모두 다.

제가 제 편이지 않으니 세상은 모두 저의 적이었습니다. 저에게 가혹했습니다. 물론 그럴만해서 저에게 그러겠지만 어쨌든 저를 싫어하는 세상에서 사는 건 힘들었습니다. 한 순간도 편안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 집에서도요.


몇 십 년간 매일 악몽을 꾸었습니다. 매일 똑같은 꿈을요. 감히 대적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존재가 쫓아옵니다. 건물 안이라 도망이라고 간 곳마저 그저 끝까지 내려간 지하실 어느 구석입니다. 막다른 곳으로 몰려서 무서움에 벌벌 떨다 깨곤 했습니다. 무엇인지 결굴 보지도 못한 절대악과 같은 존재는 그림자로만 보이는데도 몸을 끝없이 줄여봅니다. 내가 저 괴물에게 보이지 않기만을 바랍니다.


눈을 떠도 현실은 꿈보다 덜 무섭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불안하고 우울한 나날을 살던 어느 날 어쩌다 보니 평범한 남자와 결혼을 했습니다. 조금은 평범하지 않은 결혼 생활이라 남편을 힘들게도 했지요. 남편이 힘든 건 제가 모르겠고 저는 행복함을 느꼈습니다. 처음으로 안정도 느꼈습니다. 그때부터 서서히 악몽은 사라졌나 봅니다. 10년 동안 다시 꾼 적은 없네요. 꾸지 않았다는 의식도 없이요. 진정 잊은 것입니다.


두 딸 중 첫째는 제가 경멸해 마지않는 저의 수많은 점을 그대로 갖고 태어났습니다. 불안도 무서움도 많이 줄었지만 저를 닮은 딸은 또 다른 고통의 시작이었습니다. 

힘든 세상에 또 하나의 제가 태어나다니요. 그것도 제 속으로 낳아버렸습니다. 얄궂은 운명에 대한 원망은 딸에 대한 미움으로 커졌습니다. 저를 미워하며 보낸 시간이 부족했는지 이젠 딸에게까지 미움을 퍼부었습니다. 아침에 눈 떠서 학교 갈 준비보다 멍하게 천장만 보는 게으름이. 잘하고자 눈빛을 반짝이기보다 길고양이나 걱정하는 오지랖이. 지나온 길마다 물건을 흘리고 다니는 헨젤 같은 짓도, 친구가 1등을 하면 나도 열심히 해야지 하는 욕심보단 내 친구가 1등이라며 자랑을 하는 모습도. 종목을 가리지 않고 다방면으로 미워했습니다.


보다 못한 남편이 딸 좀 그만 괴롭히라며 2달간의 별거를 진행시켰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제가 벗어놓은 허물 같은 모습으로 자라는 딸과 그런 딸을 더 미워하지 못해 안달 난 것 같은 저를 말입니다. 캠프를 갔다 오면 길고도 긴 방학은 끝날 것 같습니다. 하루 종일 얼굴을 보고 있어야 하는 방학이 말입니다.


캠프를 보내기로 정해놓고 읽던 책이 있었어요. 에세이를 힘껏 빌려왔을 때 본 책인데요. <우린 잘 살 줄 알았다>라는 의미 심장한 제목의 책이었습니다. 잘 살 줄 알았는데 망했다는 건지 잘~~ 살 줄 알았지! 하는 후련한 내용일지 궁금해지는 제목처럼 내용도 무척 흥미진진했습니다. 

어릴 때 "우리 어른되어서도 같이 살자!" 다짐하다 소원을 이룬 것도 아니었고요. 어른이 된 대학에서 만난 사이입니다. 어쩌다 열심히 다니던 회사를 둘 다 그만두고 전 재산을 털어 세계 여행을 같이 떠나요. 몇 백일을요. 돌아왔지만 복귀할 직장이 없는 둘은 여행 관련 글을 쓰고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같이 있어야 하는 시간이 늘게 되지요. 그러다 보니 집에 데려다주고 헤어지기 아쉬워 결혼하는 레퍼토리로써가 아니라 너무도 비효율적인 일처리에 답답해 한 가정(?)을 이룹니다. 그렇게 어쩌다 한 식구가 되면서 벌어지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써 놓은 글 잘 쓰는 젊은이들의 이야기인데요. 글도 너무 재미있고 이야기도 흥미 있고 공감도 깨달을 점도 많은 책에서 엉뚱한 지혜를 얻었습니다. 


정말 유쾌하고 낙천적인 김멋지씨에게 번아웃이 오고 아파하는 모습을 우연히 훔쳐보게 된 것인데요. 직장 생활의 어려움이나 사는 것은 이렇게 힘들다는 걸 보여주려 쓴 책이 아님에도 젊은이들이 자신을 밀어붙여 일하는 지금의 대한민국이. 모든 직장인들이. 최선을 다하여 사는 지금 세대 사람들의 삶이 참으로 가슴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무한 경쟁 사회에서 밥 벌이 하기 위해, 행복이니 이루려 한 무엇을 위한 것도 아닌 밥 먹고 살자고 하는 일 때문에 힘든 사람들 말이에요. '그저 의식주 해결을 위해 하는 일에도 온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하는 현대인의 삶에서, 살과 뼈를 갈아 넣어 열심히 하는 것이 꼭 필요한가?' 싶었어요.

아이가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여유를 부린다고 채근해야 하는 일일까? 갑자기 충격적인 깨달음을 얻게 되었던 거죠. 소유하는 삶, 경쟁하는 삶, 내가 더 나아야 하는 삶이 행복이나 자기만족과 연결될까? 


직장인들이 자신을 위해서라기보다 직장에서 필요한 일을 위해 하루 대부분을 바치고 젊음도 바치고 사는 게, 이렇게 열심히 일 하는 게. 들인 시간과 공만큼 만족을 느낄까? 행복을 위해 지금을 즐길 여유를 낼 수 있기는 한가? 누구라도 번아웃이든 우울증 없이 살아낼 수 있을까? 지금처럼 해야 한다면 말입니다.


친구가 1등을 하면 내가 자랑스러워하며 공동체의식으로 행복해하면 안 될까? 지식을 더 많이, 나만 소유하기 위해 내 아이가 푸는 문제집을 알려주지 않는 마음가짐이라면. 종국에는 열심히 살려고 한 행동이었다며 공감을 받고 이해도 받아 행복까지 이르게 될까? 


너무 이상적이라면. 


앞으로 사는 세상은 창의력의 시대라고 치자고요.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하는 물건을 만들 수 있을까요? 타인에게 관심이 없는 이기적인 사람이 공감받는 세상을 만들 수 있겠는가 말이에요. 그렇다면 게으름은 오히려 현대사회에 결여된 인간성이나 창의성을 숨기고 있는 장비이지 않을까요? 비약이 심하긴 하네요. 죄송합니다. 게으름이 인간성이라니..


딸아이의 못난 부분이 오히려 다름으로 보였습니다. 남과 다르기 위해 더없이 노력하는 지금 현대 사회에서 딸은 타고나길 다르게 타고났을지도 모르는데. 남들과 같지 않다고 닦달을 한지 모르겠습니다.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저도 제 생각보다는 꽤 괜찮은 인간일지도 모른다는 자각도 한 번. 

예 맞아요. 요즘 제가 이렇게 변했습니다. 사람이 쉽게 변하기도 하네요. 제가 저를 좋하하는 거 같다니까요. 그러니 제 딸도 달리 보입니다. 공부 마치고 돌아올 딸에게 줄 사랑도 적립 중이고요.


사랑만이~~ 내 세상~~~


"아우~ 요즘은 사람들이 나한테 인상 좋다고 한다니까 호호홍"

"갑자기 너네 엄마 왜 저러냐? 예전에는 자학하기 바쁘더니 요즘은 본인 잘났다고 야단이다?"

"뭐. 왜? 어쩌라고?"


너무 자신을 사랑하게 되어도 좀 곤란한 사람이 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자학보단 사랑이 좀 나은 것도.. (중간이 없냐.. 어렵다.)


변화가 변하지 않기를 바라며 이만 총총히..



고맙습니다. 자알 읽었습니다. 좋은 책! 부러웠습니다. 글도 잘 쓰고 열심히 살고 잉잉 ㅎㅎㅎㅎ 뭘 깨달은 거니?

도봉이 사진. 공개~! 책방 마스코트인가요? 사저와 책방을 가장 편하게 다니는 거 같아요. 도봉이 선택받아 이쁨 받고 책도 사고 아직도 행복모드. 책방 가는 길 글도 곧 올릴게요.

매거진의 이전글 행복한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