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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층소화 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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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사임당 Jan 12. 2024

층소화를 마치며

에필로그

태어났더니 이뻤다



도 아니고 태어났더니 구멍가게 막내딸이었다. 중매 시장에 본격 투입된 20대 중반(엄마는 왜 그렇게 마음 급하셨을까?)까지 그랬다. 아침에 일어나면 복작 복작 손님이 오는 공간. 삶과 일이 분리는커녕 밥도 온 가족이 같이 먹지 못하는 생활밀착형 생계수단. 밥은 일단 빨리 입에 밀어 넣어야 하는 줄 알았고 아버지와 한 집에 있어도 내가 먼저 밥 먹는 게 무례가 아닌 생활이었다. 자려고 누운 새벽 1시에도 누군가 문을 두드리면 일어나 물건을 팔아야 하는 달동네 구멍가게. 소주 한 병에도 영업장을 다급히 두드리는 소리가 일상인 곳.


자주 싸웠다. 동네 사람들은. 사는 게 팍팍하고 돈은 항상 없다 보니 사소한 일에도 분노를 터뜨렸고 상대를 원망했다. 워낙 사람이 많이 사는 동네라 자기네들끼리 싸운다면 소음에 숟가락 하나 얹는 것밖에 안 되겠지만. 굳이 그들은 우리 집으로 와서 그 짓을 했다. 팔이 하나뿐인 우산 수리공 외팔이 오 씨 아저씨와 뱃사람처럼 귀에 링 귀걸이를 한 키가 크고 외모가 잘 생겼던 내 친구 수빈이 외할머니. 혹은 다른 사람들. 대진표는 화려했고 싸울 일 널렸었다.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시작이다. 어디서 싸움이 나도 꼭 우리 집으로 자리를 슬금슬금 옮겨와 드잡이다. 집들이 종이 한 장 낄 자리 없이 붙었다고는 해도 버젓이 자기네 집 앞 길에서 싸워도 되고 누구 집에 들어가서 싸워도 되련만. 모든 싸움은 우리 집에 와야 본격적으로 볼 만해졌다. 더 목소리를 높였으며 더 거친 몸싸움으로 변했다. 서로 밀고 밀리며 알력을 행사하다 보면 길에 내놓은 과일이나 장난감이 매대에 아슬아슬 매달려 있고는 했다.


아버지 차례다. 모든 싸움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전지 전능한 아버지. 일단 말려주길 바라며 시작된 드잡이를 힘으로 떼어준다. 한 사람 떼 놓으면 다른 사람이 덤비려 연기를 하고 또 한 사람 떼 놓으면 욕을 하고 팔을 휘두른다. 아버지의 다정하면서도 근엄한 목소리와 일단 두 사람보다 월등한 키로 중간에 끼어들며 심판의 위엄을 행사한다. 세 명의 어른이 횡렬로 설 수도 없는 좁은 골목이니 아버지가 가운데 서면 두 이성이 껴안고 뒹굴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물리적 거리는 확보된다. 그때부터 또 다른 종목으로 아버지의 특기가 나온다. 모든 사람의 말을 모든 말이 끝날 때까지 들어주기. 그렇게 이사람의 불평과 저사람의 불만을 들어주고 다독여도 주고 꾸지람도 하며 중재를 하다 보면 점심은 다 식어빠지고 그동안 손님은 눈치만 보다 들어오지도 못한 채 200미터는 떨어져 있는 <고성상회>에 뺏기는 것이었다.


나는 신과 만나고 있다. 싸움이 시작되면 무섭고 불안하다. 힘없는 내가 원망도스럽다. 혹시나 내 잘못은 없는지 한 달 전부터 오 씨 아저씨와 수빈이 외할머니가 가게에 온 기억을 더듬는다. 성과가 없다. 생각이 들어올 자리가 없는 머리는 이미 하얗게 비어버린 상태, 옥상으로 한달음에 올라간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그곳은 아래에서 일어나는 싸움과는 다른 세상인 듯 햇빛만 눈이 부시다. 날씨가 기똥차다. 플라스틱 대야에 아무렇게나 뿌리내린 다육식물이 한가하게 온기를 쬐고 있다. 갑자기 더 당황스럽다. '무슨 일이야? 얼굴이 안 좋네' 나를 불쌍히 여긴 듯 고개를 한 방향을 하고 구부러져있는 식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흙이 있는 어느 곳에나 자가 증식 중인 잡초나 다름없는 다육이가 나를 안쓰럽게 보는 것 같다. 하얀 머리를 흔들며 목적을 챙겨본다.


"하느님, 부처님 제발 싸움 멈추게 해 주세요. 제발요.. 제발... 제가 잘할게요. 제가 잘못했어요."


매번 신과의 만남에서는 시험 때보다 더 애절하다. 시험에 백점 맞게 해 달라 빌어본 적은 없는데 싸움은 제발 멈추게 해 달라고 빌고 있다. 절실하다. 내 인생이 끝날 것처럼 무섭다. 모아 쥔 손이 내 손이지 않은 것처럼 하얗게 변하는 중이다.


쿵. 턱 퍽. 주르륵 도로록. 쿠궁


진동 소리..


진동 소리에 잠이 깬다. 아. 30년도 더 된, 팔아야 할 물건만으로 채워진 구멍가게와 어디서 돈을 주고 사기만 한 물건으로 채워진 아파트가 동일시되는 순간이다. 진동, 아파트가 흔들린다. 소음. 울고 웃고 고함을 지르고 문을 꽝 닫는 소리들.

또 시작이다. 싸움이 멈추길 빌며 올라갔던 옥상도 사라진 마당에 소음과 물건이 부서질 듯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들에 내 영혼은 어딘가 있을 옥상으로 가출했나 보다. 두부를 대충 잘라도 네모가 되는 내 솜씨로 11층을 깍둑 썰어 날려버리고 싶다. 폭파시키고 싶다. 잠에서 깨자마자 나도 놀랄 만큼 즉각적인 반응이 떠오른다.

심호흡 심호흡. 나는 어린아이가 아니야. 무기력하고 무력한 아이가 아니야. 내 감정은 내가 조절 가능하다. 내가 감당할 수 있다.


내 감정을 내가 온전히 컨트롤할 수 없다는 감정은 폭력적인 생각으로 변질된다. 내가 아닌 외부에서 찾으려 한다.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에서 '우리가 보는 세계는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라 말하는데 헤세도 층간소음에 고생을 했나 보다.

외부에 원인 제공이 있었더라도 분노든 화든 그것은 내 속에서 나는 것이란 걸.

그걸 나보다 먼저 알아차린걸 보면 말이다.


뱉어내자. 토해내자. 내 화를. 내 감정을. 외로움이라는 골방에 감정을 가두어 숨긴다고 절대 사라질 성질의 것이 아니다. 도망가지 않게 오히려 더 숨어들지 않게 조금씩 빛도 쬐어주고 구멍을 내어 환기를 시켜주자.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흙탕물에 새 물을 붓듯 조금씩 희석시키는 거다. 오늘 한 번. 내일 한 번. 시간을 들여야만 하겠다.


오늘 나에게는 할 일이 있다.






(대문 사진은 1월8일 해돋이 보러가서 찍은 진주시 금산면에 있는 금호못입니다.)


--------끝--------




제 안에 있던 어린아이의 성장을, 글을 쓰며 보게 되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느긋한 제 본성이 그동안 어디에 있었는지 모르게 나오는 것도 같습니다. 행복해서 불안하던 감정이. '불안한 행복'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불안의 다른 이름으로 불리던 행복이 아니라 편안하고 익숙한 기분인 것만 같습니다. 익숙지 않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모르던 행복이 내 것처럼 느껴집니다.


 층소화를 바라보는 저의 마음.. 제 마음 속 아이만큼 많이 자라진 못했습니다. 생각보다는요. 홀가분할 때까지 써보리라 생각했지만 아직은 현재 진행형이라서인지 과거만을 붙들고 다독이는 것만큼 쉽지 않습니다. 양이 시원하게 줄지를 않습니다. 불편했습니다. 그러니 더 써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더 들어주는 건 저 하나로 만족하겠습니다. 짐을 나눠지어달라 떼를 썼지만 이제부턴 혼자서 조용히 응석 없이 해 보겠습니다. 그 정도는 컸습니다. 차도는 분명 있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렇게 잊으려 노력했던 층간 소음을 글로 던져보았습니다. 생각도 하기 싫던 감정을. 떠올리지 않으면 사라지지 않을까 싶던 헛된 상상을 다독이며 글을 썼습니다.


제 어린양에도, 바닥에 드러누워 떼를 쓰는 것 같았던 글에도 관심 주시고 댓글 주시고 위로와 위안을 주셨던 많은 분들께 감사함을 표하고 싶습니다. 글벗님이 없었다면 이룰 수 없는 일상 회복입니다. 찌꺼기가 남은 회복이지만 그것들은 제가 차근차근 치우겠습니다. 치운 눈이 바닥에 남았지만 제 상처가 어느만큼은 자가치유되듯 햇님이 어느정도는 공짜로도 해 줄겁니다.


큰 짐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미숙한 감정에도 공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층간 소음으로 집 밖을 떠돌 일도 더 없을 겁니다. 울고 불며 내 말 좀 들어달라 보채는 것도요. 그럼에도 다 키우지 못한 제 감정이 구석으로 숨어 들려할 때, 도저히 혼자서는 안될때 도움을 구하겠습니다. 혼자 째려보지 않을게요. 왜 그렇게 못났냐고 혼내지 않겠습니다.


진심으로 진정으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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