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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층소화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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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사임당 Dec 29. 2023

끝이 보입니다.

층간 소음 고백 9번째

자연스러웠습니다. 억지스러움도, 어색함도 없었죠. 말 그대로 물 흐르듯.




주말이었어요. 외출을 하려 엘리베이터 앞에 섰습니다. 집 문은 닫았습니다만 차에 오르기 전까진 집을 나간 것이 아닙니다. 엘리베이터에서도 집에서와 같은 불안 요인은 있거든요. 4년간 이어진 분쟁으로 1층까지 가는 그 짧은 시간도 불편해졌습니다. 가능하면 부딪히지 않길 바라며 엘리베이터 옆 숫자판 속 변하는 층수를 유심히 보게 됩니다. 혹시나 윗 층에서 선다면 엘리베이터 호출버튼을 다시 누릅니다. 취소하려고요.


'어어? 11층에 서네? 아침부터 만나야 되나? 아잇'


저도 모르게 속에 이런 말이 떠오르더군요. 아이들이 있으니 취소 버튼은 누르지 않고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합니다. 그런데 같이 기다리던 아이들도 봤나 봐요. "어? 11층이다" 둘째가 얘기합니다. 주제가 윗집으로 향합니다. 아침부터 대단했거든요. 바로 생각나는 그 이유로요.


"엄마 아침에 지진 난 거 같았어."

"진짜?"

"근데 지진은 땅에서 나는 거잖아. 그러면.. 천진인가?"

"어.. 정말. 천장에서 지진 났으니 지진이 아니네. 천진이라.. 창의적인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지? ㅎㅎ"

"집이 엄청 흔들리더라. 천진 난 줄 알았어. 집이 통째로 흔들려. 어쩌고 저쩌고 종알 종알.."

"하하하하"

"에고.. 언제까지 그럴까. 아휴 참.. 왜 그러나 모르겠다."


아이들은 엘리베이터 안에 누가 있는지 보지도 않고 '천진'난 얘기를 열심히 합니다. 저도 맞장구를 치면서 듣고요. 집이 흔들리니 신기한거죠. 아이들은 그 얘기에 즐거워 보이기까지 합니다. 정색하며 화 낼때도 많지만 기분이 좋으면 희화화도 됩니다.


실은 계획적이었습니다. 아이들이 그 얘기를 하는 동안 우리 뒤, 등을 보이고 있는 사람 들으라고요. 슬픈 목소리, 시름에 잠긴 목소리로 힘들다는 표현을 했습니다. 물론 눈치도 없고 생각도 없는 사람이면 들리지도 않겠지만 윗집사람 중 단 한 명. 아이 아빠는 나름 말이 통하리라 생각했습니다.

남편이 소음에 괴로우니 조심해 달라는 말을 하러 갔을 때였어요. "아이가 말을 안 듣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얘기를 해서 남편 기를 막아 버리는 대사를 했던 아저씨였어요. 가만 생각해 보니 '아이에게 안 되는 건 안된다고 밀어붙이는 뚝심도 계획도 없고 남에게 끌려다닌다는 방증이지 않을까?' 지나친 감은 있지만 나름 해석을 했습니다, 저는요. '소심하구나, 저 집 아저씨가. 말이 안 통할 사람은 아니고 가족에게도 말을 못 하는 사람인가 보다' 추측했습니다.

저희가 '천진'에 대해 얘기를 하는 동안 혹시나 본인 아이라도 들킬까 봐 그러는지 펭귄처럼 굴었습니다. 아이를 자신의 배로 감싸서 엘리베이터 벽을 보고 서는 행동을 하더군요. 슬금 슬금이요. 그러니 들었을 겁니다. 무엇이 문제인지도 알거라 봅니다. 의지가 없는거죠. 아이가 조심한다고 해도 어릴 때는 매트를 까는게 당연에 가까운 건데도 하지 않는걸 보면요.


혹시나 기대를 했습니다. 매일 강경모드로 대했으니 그냥 밑에 집 사람들은 성격이 저 모양이라 생각했을수도 있는데.. 알고보니 아이들까지 무척이나 소음에 시달리는구나. 우리집 민폐가 대단하구나. 하고 생각할 계기가 되지 않을까? 없는 줄 알고 나눈 대화인 척 혹은 엿들으라는 듯이, 피해를 슬그머니 알 수 있게 했으니까요. 하루 이틀 변화가 있나 없나 주목했습니다. 가뜩이나 신경쓰는 소음에 더 신경이 쓰였습니다. 각도가 조금 다른 신경이요.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요.


2주 정도 된 얘기입니다. 결론은, 아저씨에게도 의지가 조금 생긴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 동안 또 조금 더, 몇 발 정도 '소음 측정 불가' 수준에 다가갔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5발은 후진입니다. 지금도 일부러 하는 쿵쿵거림과 물건을 질질 끌며 고문을 합니다. 그래도 바짝 긴장모드는 아닙니다. 하루가 언제끝나나 기다리게 되는 소음이 아니라서요. 글을 시작한 8시 30분. 지금은 10시 30분 입니다. 그 사이 또 폭풍처럼 휘몰아 쳤지만 잠시 잠잠해졌습니다. 아까와 같은 폭풍이 더 치진 않을 것입니다. 그 사실이 저에게는 안정을 줄 거고요. 언제 다시 시작할지 몰라 불안을 장착해야하는 하루가 아니길. 마음을 편안히 하고 낮잠에 도전할 수 있고 한 선 한 선 그으며 펜 그림에도 집중할 수 있을지 모르니까요.


지루합니다. 오래걸립니다. 변화는 더딥니다. 담배도 술도 이는 게 더 어렵다고 하지요. 그냥 딱 사라진다면 좋겠습니다. 그게 어렵다는 걸 아니 더 바라게 됩니다. 하지만 지치지만 않는다면 사라질겁니다. 고통도. 괴로움도. 하지만 견디지 못하는 건 제 마음이죠.

 <많이 생각하는 모든 것들은 문제가 된다>고 니체가 말했습니다.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갇힌 생각에서 벗어나면 좋겠습니다. 2시간 동안 머리가 흔들리고 보니 다시 제자리 같습니다. 하지만 5발 후진이라도 6발 전진 중입니다. 나이지고 있습니다. 그건 사실입니다.


'나를 파괴시키지 못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나를 강하게 만들 뿐이다' 라고 <니체>가 말했습니다. 진실로 그러하길 바랍니다. 또 한 번 강해졌기를.


다행인것은 제가 속에서 감정을 꺼낼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괴로움도 슬픔도 기쁨도 드러낼수 있다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해집니다.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랄까요? 혼자지만 결코 혼자가 아닌 기분이 듭니다. 혼자라서 무서웁던 길도 혼자가 아니라서 씩씩하게 걸어집니다. 재미있는 일이든, 당황스러운 일이 생기든 글벗과 나눌 이야기를 찾았다는 사실에 더 기뻐할때도 있습니다.


처음 이 연재를 시작할때도 마음 속 고통이 딱딱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하나였습니다. 글의 완성도나 흐름은 물론 서툴고 거칠지만 제 마음은 단정해진것 같습니다. 두근거리는 마음도 화가 나는 마음도 이렇게 빛과 같은 벗들께 드러내 놓으니 잘 말랐습니다.


다음은 기분 좋은 마지막 회입니다. 진짜 '마치며'글을 써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문사진은 저의 귀여운 둘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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