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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층소화 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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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사임당 Jan 19. 2024

오늘 연재 발간합니다.

혼자 마무리하려 적는 글입니다. 굳이 챙겨보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사임이 너 요즘도 머리 길러서 질끈 묶고 다녀?"


대학 친구의 물음 속 의미를 모르겠다.

공부 때문에 속을 끓이던 첫째가 부산에서 제일 좋은 부산대에 들어갔다며 오랜만에 연락을 해 왔을 때다. 그건 그렇고 아직도 머리카락을 기르고 다니냐며 묘한 질문을 하는데 출제자의 의도를 모르겠는 거다. 

"어.."

축하한다는 대화를 끝으로 어중간하게 통화는 끝냈지만 께름칙한 기분이 남는다. 친구는 무슨 말이 하고 싶었을까?



음악을 껐습니다.


하루종일 틀어 놓던 라디오를 꺼 봤습니다. 눈을 뜨며 틀고 새벽 2시까지도 집안을 채우던 그것을요. 저에게는 일종의 모험입니다.


I'm not a perfect person,

As many things I wish I didn't do,

But I continue learning,

I never meant to do those things to you,

And so I have to say before I go,

That I just want you to know.


최애곡 중 하나인 The reason(Hoobastank) 노래로 정신을 잠시 홀려보려 하지도 않습니다. 부탁드릴 것이 있다는 듯 신들의 세계로 보내지 않고 있어 봅니다. 끄고 나면 귀에서 우웅 하며 뱃고동소리가 들릴 만큼 크게 틀어놓던 노래를 닫아봤습니다. 귀의 기능이 약해지길 바라며 점점 크게 틀던 음악 소리를 없애보았습니다. 우울이 잘 보이기를 바라는 마음 혹은 떠오른 감정을 글쓰기로 풀 욕심으로는 아닙니다.


둘째가 무섭다고 했어요. 숨이 잘 안 쉬어져서 가슴을 부풀리며 인상을 쓰는 모습에요. 몰랐습니다. 두려움에 웅크린 제가 무섭다는 감정을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낸 줄은요. 배트맨을 호출하려 하늘에 쏘아 올리는 '박쥐 신호'처럼 고스란히 얼굴에 띄워질지 몰랐습니다.


'HELP'


감정을 가리기 위해, 충격에 둔감하기 위해 깔아놓았던 음악. 하지만 효과는 반대로 나타났습니다. 그걸 뚫고 들리는 충격에 더 취약해지기만 했지요.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 


음악을 소음이라 부르긴 싫지만 집을 채운 셀 수도 없는 음표를 뚫고, 소음을 뚫고 들리는 소음에 놀라움은 더 커졌습니다. 두꺼운 화장으로 가려지지 않는 기미가 맨 얼굴일 때보다 화장했을 때 더 두드러져 보이듯이요.


"오늘은 어쩐 일로 라디오를 껐네?"


남편이 저녁을 먹으면서 말합니다.

"이젠 꺼 보려고. 윗 집 소음에 신경 쓰고 있다는 자각이 더 커서 말이야" 하고 말할까 잠깐 망설였어요.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는 걸 말할까 했어요. 하지만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소리를 줄이며 라디오를 켰습니다. 남편에게 숨기려는 의도라기 보단 정말로 괜찮을 테니. 소소한 대화로 받아들입니다.


뭐랄까? 패배자 루저 멍청이 같던 열패감 없이 조용한 공간에 홀로 있어보고 싶습니다. 담담히 받아들이며 이 공간을 제 힘만으로 차지하고 싶습니다. 라디오에 블루투스에 세탁기에 식기세척기를 틀어 놓고 불협화음을 연주하지 않으려고요. 귀를 채운 것들을 헤치고 들어오는 이웃의 호출을 의식하지 않겠다 다짐합니다.


이게 과연 자라긴 할까 하며 심어둔 희망 혹은 용기 이름이 뭐가 되었든. 제가 발을 디디고 있는 힘이 무엇이 마르고 푸석해 보였던 흙을 비집고 움틉니다. 두려움이라는 더러운 거름을 양분 삼아 새로이 일어납니다.


예, 맞아요. 아직은 약합니다.


"집 안에서만 키우면 약해요. 밖에서 키우세요."


비에도 바람에도 태풍에도 견디게 밖에서 키우라고 화원 사장님은 얘길 해요. 그렇게 자란 녀석이 강하다고요. 하지만 처음부터 강했을지도 모르잖아요. 그 녀석은요. 식물을 키워보신 분들은 알 거예요. 얼마나 많이 죽여야 몇 번, 가끔 성공을 맛보게 되는지요. 그렇게나 많은 이별과 죽음을 겪어야지만 강하게 키우게 되는 건지. 혹은 운 좋게 그 식물은 길게  살 운명이었는지도요. 약했다면 첫 장마에 이별이 왔을지도요.


제가 견뎌냈으니 야생에서 살아낸 들풀처럼 강해졌을까요? 원래 강했으나 그걸 몰라서 헤매었던 걸까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변한 사실은 있습니다.


4년만에 처음으로 집 안을 고요로 채운다는, 놔둔다는 것입니다.



오늘 20년이나 고수한 긴 머리를 자르려 합니다. 미용실에 가려고요. 과거 속에 사는 듯, 어제같은 오늘을 살던 저에게 안녕을 고하며. 이제, 오늘, 지금을. 이 순간에 있어보고 싶어졌어요. 조금 더 가벼워진 어깨로 살겠습니다. 불편도 거추장스러움도 그냥 안고 가야하는줄 알았어요. 두통을 자주 겪는 사람이 갑자기 욱신거리는 통증에 특별히 놀라지 않듯, 그러려니 하듯. 모르고 살았지만 이제야 알것같아요. 무겁게 누르던, 몇 년을 미련처럼 붙여놓았던 긴 머리를 -새 마음을 여는- 컷팅식 리본으로 쓸게요. 싹둑 자르고 할 새로운 출발. 시작하겠습니다.



-진짜 진짜 진짜 진짜 끝-

설마 다음 주에 진짜 진짜 진짜 진짜 진짜 끝 쓰는 건 아니겠지요!? 윗집도 무서운데요 제가 더 무서워요.ㅎㅎㅎㅎ 웃자고 한 소리입니다. 이제 감사 그리고 끝이라며 인사 안할래요. 진짜 이렇게 마무리 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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