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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사임당 Jan 24. 2024

그림은 글쓰기와 닮았다

관찰과 관심. 그것만이 이 세상~~~

손 끝으로 원을 그려봐 네가 그릴 수 있는 한 크게 그걸 뺀 만큼 널 사..


'사' 자로 시작하는 말을 여기서 쓰려는 의도는 아니고요. 물론 작가님들을 그거 하지 않는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이 단락에서 하려는 말이 아니기에 명사로 된 그 단어를 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걸 말하는 순간 이 글은 "백 년 전 영국에서 시작한.."으로 여는 어느 글처럼 좀 의도와는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거예요.

"손 끝으로 돼지를 그려봐."

"..."

갑자기 돼지는 '왜' 하시겠지요? 좋아요. 하라면 하라는 식의 주입식 교육을 받았음에도 비판의식이 살아있다는 것은 지금 같은 시대에 아주 필.. 오늘따라 군소리가 참 많습니다. 단 1초도 말을 쉬지 않는 둘째가 막 학교를 가서요. 제정신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엄마, 말은 하고 싶은데 할 말이 없어. 랄랄랄라라라라라라라"

이렇게까지 최선을 다해서 (떠드는 데) '열심히'인 아이입니다. 아.. 내 귀..

정신 차리고.


꼭 필요합니다. 제발 돼지를 손끝으로 그려보세요. "필기도구를 들고 그려보세요." 하고 싶지만 읽던 글마저 손을 뻗으려다 만 귀찮음 속에 녹여버릴 수 있기 때문에 그건 건드리지 않겠습니다.  Voilà, 어때요? (그렸다 칩시다) 돼지를 손 끝으로 그리는데 아주 자연스럽나요? 이까이꺼 쉽나요?


그럼 사진으로 확인해 보시죠. 내가 그려놓은 형상과 닮았는지.

<다음>에서 퍼 온 사진입니다.

예. 그 마음 압니다. 돼지가 '생각보다 날씬하네? 다리가 기네?' 하셨죠? 저도 그랬습니다.

돼지 저금통 따라 그리기가 아니라 돼지를 그려보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더라고요.


그런데 말입니다.


이상한 점은요. 우리는 매일 돼지를 봅니다. 내 속에 지금도 있습니다. 아침으로 먹..

이렇듯 매일 보고 느끼고 '소중한 내 몸'속에 담아 놓는데도 불구하고 돼지를 떠올리면, 쉽지 않아요. 왜냐고요? 관심이 없으니까요. "뭐 좋아해?" 하고 물으면 "돼지 좋아해." 하면서 왜 돼지에게 관심이 없는지,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부분육으로써만 그 존재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가봅니다. 발만 보고도 그 존재를 좋아한다고 하고.. 불쌍해.. 미안해.. 사ㄹ.. 에헴.


"우리 아기 손이 왜 이렇게 쪼그매? 발 많이 컸네?!"

볼이 통실 통실 '떠들이' 귀요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자는 모습까지 그냥 놔두기 아까워 또 쳐다봅니다. 잠든 발가락이 귀여워 자꾸 깨뭅니다. 보고 또 보고 다시 보다 보면 '어? 눈두덩에 점이 있네? 눈이 갈색이네? 책 보는 걸 좋아하네?' 하며 알게 됩니다. 좋아하면 보고 싶고 관심이 가고 그러다 보면 더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되는 것 같네요. 그렇다면 저는 우주 만물. 아니 거기까지 가지 말고 제가 항상 사용하고 이용하며 가까이하는 사물에 사랑이 없나 봐요. 그러니 이렇게나 관심이 없고 관심이 없으니 몰랐겠죠. 돼지 속눈썹이 무슨 색인지, 귀(생각보다 크다)는 얼마만 한 지..


그림을 그리면서 무척이나 낯설게 깨닫는 점이 있습니다.

주변에 관심 없이 참 잘도 살았다는 점.(나 밖에 몰랐다는 점)

글을 쓰면서 또 느낍니다. 그림이 글쓰기와 참 닮았다는 점이요. (관심이 생기니 구르는 낙엽에도 눈길을 주게 되고 이쁨도 발견하고 그렇게 또 웃게 됩니다. 혹시.. 오춘기?)


대상에게 관심을 주고 관찰하지 않으면 그릴 수가 없네요. 글도요. 스쳐가는 바람에도 고개를 들어 음미하고 지나간 바람이 빰에 남긴 느낌을 기억하여야 '바람 기억'을 글로 남길 수 있네요. 내 마음을 흔든 대상에 관심과 생각이라는 먹이를 줘야 글감을 내어 주는 거 같아요. 억지로 그리고 억지로 쓴다면 아마 오래 그리지도 쓰지도 못할 거예요. 그렇지 않더라도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것에 대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면 금방 들통나겠죠? 금방 무너질 모래 위 집처럼요. 누구에게도 읽히지 않는 글이 될 겁니다.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이 글이냐.. 아 나 왜 눈물 나냐..


어반스케치를 하려고 이 책 저 책 기웃거릴 때가 있었어요. 물론 지금도 이 책 저 책 다니며 비책 같은 게 있을까 헛된 상상력을 실행 중이긴 하지만.. 그래서 찾은 책 중에 누군가 "무슨 책 사야 해?" 하고 물으면 "이 책!" 하고 권하는 게 있어요. 이기주 작가의 <리기가 이토록 울 줄이야>인데요. 그림 배우는 책인데 어쩐다고 글도 좋고 막 그래요. 책  속에 이런 글귀가 있거든요. 같이 보시죠.


p.17

..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림을 그리겠다면 일상의 모든 것을 허투루 스쳐 보내서는 안 된다. 늘 다니던 길모퉁이 전봇대, 골목길 어귀의 추억의 문방구, 지날 때마다 개가 짖던 파란 대문의 그 집, 쓸쓸히 걸었던 그 밤, 그 골목길의 외등까지 (중략) 새롭고 의미 있고 소중해진다. (중략) 그림에 푹 빠진 한두 시간 정도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사각거리는 펜 소리와 종이의 감촉, 집중하는 미간과 앙다문 입술. 오롯이 그 시간엔 '나'만 남는다.


'그림'이라는 글자를 '글쓰기'로 바꾸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두 작업이 닮았다는 말 공감하시죠?


나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법을 알아갑니다. 의도치 않았지만 이걸 한꺼번에 한 번의 사건으로 하게 되었네요(층간소음 때문에 집을 나가야만 했기에 시작되었어요. 그럼에도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윗집에 감사하다는 말은 못 합니다. 이렇게 소중한 변화였음에도 말이죠. 진짜 많이 늙어버렸음요. 철이 없어서 늙고 있었는데..)


오늘도 무언가를 바라봅니다. 같이 그림을 그리는 동아리 언니의 옆얼굴도. 카페라테의 거품까지도요. 지긋이 시간을 들이고 있는 그대로를 보려고 합니다. 내 머릿속에 들어있는 어떤 사물로써가 아니라 본모습 그대로를요. 언니가 어디 아프냐 묻습니다. 아픈 거 아닙니다. 이 순간에 함께 있는 사물들. 귀한 시간 곁을 내어주는 사랑스러운 사람들과의 시간. 세상을 보게 해 주는 그림 그리는 시간. 나 자신을 들여다보게 해 주는 글을 쓰는 시간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오늘이. 지금이. 당신이. 당신을 알게 된 나에게도.  



일주일 간 그린 그림 부려놓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야외 촬영하였습니다. 발로 찍었기 때문에 별 차이는 없지만 느낌은 (예의상) 많이 다르구나 하면서 봐 주시기를..


스케치를 좀 꼼꼼히 하면 될텐데 대충하니 줄기도 틀리고 그러죠? ㅎㅎ


그림을 그리면서 사물을 관찰하게 되었고 글을 쓰면서 사랑을 배웠다. 노사임당- 제가 출간 작가가 되거든 묘비에 좀.. 

오늘이 책 마지막 그림 그리는 날입니다. 왼쪽 사진이 할 과제. 내일 책걸이 해야겠습니다^^
펜화의 매력으로 안내해 준 <펜그사>책에 감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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