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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사임당 Feb 01. 2024

오늘은 나를 칭찬해 봐요

성적표가 나빠도요


특별한 일이 없는 데도 지칠 때가 있다. 기운이 빠져버린 상태 같은.



누가 보더라도, 아니 내가 볼 때 죽을힘을 다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꾸준히 했다. 이 정도 성실하게 했다면 개근상 정도의 칭찬도 가능할 정도다. 그런데 거기까지. 아무리 봐도 성과가 미미하다. 결과물은 초라하고 비례하여 나의 노력이 부족했나 자책도 거들게 될 때 기어이 한 소리 하게 된다. 자신에게 적대적으로 된다. 그러고 나면 그만 힘이 빠지고 어둡고 조용한 곳에 들어가 혼자 있고만 싶어진다.


"더 열심히 할 수 있지 않을까?" 불쑥불쑥 공격하는 말들. 내 안에 있던 다중이가 존재감을 드러내면 각자의 입장에서 상대를 비난한다.

"너는 그걸 노력이라고 한 거니?"

"이 정도면 수고했어."


게으름을 피운 걸까? 열심히 하지 않았으면서 좋은 결과만 바란 걸까?

아니, 더 열심히? 인생은 그거 하나 끝냈다고 완결되는 컬러링북이 아닐텐데. 하고자 한 일에 결과를 봤다고, 성공했다고 누군가 "합격입니다. 당신은 당신 소임을 다 하였습니다" 하지 않을거라고. 당장 목표한 일을 해냈다고 앞으로 어려운 일이 없는 것도 성공이 보장되는 것도 행복이 굴비처럼 엮일 일만 남은 것도 아닐 거다. 나는 내 삶을 더 살아야 하고 힘을 배분해서 일상의 허들도 넘어야 한다. 캐내면 찾아질 소소한 행복도 가끔 누리면서 무리하지 않으며. 도전 과제가 있다면 열심히 해 보는 거고 그런 후에 찾아오는 결과와는 별개로 주어진 삶도 마주할 여유가 있어야 할 거다. 사람은 각자의 속도가 있다. 분명히. 나는 나만의 빠르기. 너는 너만의 것이. 달팽이에게 시속을 운운하기 곤란하고 치타에게 경보를 가르칠 필요가 없을걸, 굳이. 끝도 없이 자신을 몰아세우고 채찍질하며 살 수 없다. 인생은 장거리 경주. 마라톤이라 하지 않는가 말이다.


가만 보면 인간계, 지구에서는 사람을 모두 같은 인간이라 명명하지만 참 많고도 다른 속도가 있는 것 같다. 누구는 태어나자마자 달리는 듯 보이고 누구는 어린이집 들어갈 나이에 겨우 긴다. 누구는 시키지 않아도 능률 높게 작업을 끝내고 누구는 가르쳐줘도 이해가 늦다. 모두 같은 사람이기에, 빵틀에 빵 반죽을 넣듯 같아져야 할까? 같은 모습이면 좋은 것일까? 나는 크루아상으로 너는 소시지 빵으로 살아야 할 밀가루이지 않을까? 같은 학교에 다닌다고 같은 회사에 적을 두고 있다고 같은 모습 같은 결과를 내기를 바라는 건 맞지 않는 생각인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내가 나 아닌 기준에 맞추려 하니 자꾸 힘이 드는 건가?


그런데 여기서 잠깐. 나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이 말을 꺼낸 목적이 있을 텐데. 뭔가 쉽게 읽히지도 않는다. 무슨 말인지를 억지로 하는 것 같은데.... 말해봐! 뭐야? 장광설을 늘어놓는 진짜 이유를 말해보라고.


나는 실은 말이야... 그림이 맞지 않는 사람일지 모르겠. 그림이 버겁다. 꾸역꾸역 이어오고 있지만 물이 무섭더라? 물감이 두려워. 붓이 펜만큼 편하지 않. 즐겁다고 했는데. 그리고 싶다고 한 것 같은데. 왜 이런 감정에 휩싸인 걸까? 왜 포기하고 싶은 걸까? 억지 이유를 들어 애꿎은 글만 쓰고 있다. 오늘 해야 할 그림을 미루고 미루다 자정을 넘긴 시간에 겨우 마친다. 내일이 피곤할지 알면서도 늦추고만 있다. 의미 없이 보낸 아주 잠깐의 시간만으로도 끝낼 숙제를, 아침이든 점심때든 해놓지 않는다. 나는 왜 망설이고 있을까? 대학 입시를 위한 그림도 아닌데. 천천히 즐기며 동반 취미로 같이 쭈욱 가 보자고 얘기하지 않았나? 대단한 걸 하자 하진 않은 것 같은데 뭔가 이상하다.


가만 보니 안 하던 짓에 힘이 드는가 보다. 일상으로 하던 일에 도전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만들어놓고는 당연한 실패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 잘하지 못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데도 불구하고 '못함을 거부'하고 싶은 욕심. 잘하리라 기대했는지도, 헛된 상상을 하며 시작하는지도 모르겠다. "이 정도는 조금만 하면 되겠지!" 하는 교만한 마음으로 다가간 것 같다. 평범하다면 들인 시간에 비례해 실력이 늘 텐데 누군가가 그려놓은, 완성된 그림을 앞에 놓고 나는 왜 안 되는지 화를 낸 듯하다. 굳어진 손이면서 내 속도에 맞추어 그저 열심히 꾸준히 천천히 하면 될 텐데 말이다. 묵은지는 시간이 만들어주는 거지 요령이 있다고 한 달 만에 묵혀지지 않는데도...


남과의 비교도,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도 더 빠르지 못함의 조바심도 살짝 옆으로 치워놓고 그려야지. 들풀처럼 다시 일어설 감정들이라 버릴 수 없다. 버려지지도 않는다. 그저 같이 가야겠다. 두려움도 조바심도 비교도. 대신 스케치북으로의 침범을 거부하겠어. 제 할 일 해 낼 손에 자동운전 모드 5단계 설정. 완료! 매일 매주 매달 이렇게 설정이 유지되고 있는지만 신경 쓰면서 가야지.


운전은 손이 한다고 했으니, 머리는 쉬시기를 바랍니다. 오바! 


운전해~! 가제트 자동손!

잘 될지 모르겠네.. 눈 감고 쉴 수가 없다..


이번 주 펜화 책 마칩니다. '벌써'인지 '이제야?'인지는 몰라도 책 한 권 끝냈습니다. 펜화는 언제나 즐겁지만 수채를 시작하니 좀 버거워요.  넘어야 할 산인지 그냥 좋아하는 거 하는게 나은지 모르겠습니다.


손 풀기로 선을 그렸으니, 다음에는 간단한 펜선과 더 간단한 수채 작업을 도와주는 책으로 해 보겠습니다.(이미 하고 있지만요) 수채를 위한 손 풀기가 되겠습니다. 그러고 나면 본격적인 스케치를 도와줄 드로잉 책을 할까 하는데 쌓아둔 책이 많아 바뀔 수도 있습니다. 단계별로 가려는 마음이라 더 알맞다 싶은 책으로 해 볼게요.


그래서 오늘은 9일 치 펜화입니다.


공책이 자꾸 넘어가려고 해서 꽃반지로 고정^^

마지막 펜화는 입체 장식이라 저렇게 떠 있습니다^^(오른쪽)

 책의 목차순으로 소개 간단히 하고 이번주 연재는 마칩니다.

도서관 책으로 책걸이가 불가하여. 죄송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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