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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사임당 Feb 05. 2024

운명을 읽어 드립니다

궁금하면 커피 한 잔

"생년월일"

"76년 2월"

"시"

"진주시"

"이름"

"노(no) 사임당"

"그래, 뭐 궁금해?"

"곧 입주가 시작인데 이사를 가야 하는지 궁금해요"

"복채부터 내"

"얼마..."

"오늘은 아침을 안 먹었으니 강(깡) 커피는 안 되겠고 녹차라테랑 빵"

"소금빵? 머핀?"

"둘 다"

"선생님 혹시..."

"지금부터 잘 들어! 두 번 얘기 안 한다."




어릴 때다. 대부분의 업종에 무허가가 통용되던 무법의 시대. 길에 침 뱉었다고 경찰이 사람 잡아가서 인간 교육이랍시고 가두는 게 이상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스케일링한다며 엄마가 데려간 곳에는 간판이 없었다. 인생 첫 치과이니 간판이 없는 건 (구멍가게를 하는 우리 집처럼) 그런 걸 달 필요도 없이 장사가 잘되어서겠지 하며 들어간 곳이었다. 뭔가 정신을 차려보니 가정집처럼도 보이고 의자는 병원에서 쓰는 거고 한, 관념에 혼란이 오기 딱 좋은 그런 곳.


"이 집 인물은 얘가 다 타고났네(그날따라 얼굴이 멀쩡했나 보다)"

"선생님, 얘 이 좀 봐주세요"

"앉아봐라 함 보자!"

앉으니 의자가 뒤로 넘어간다. 역시 간판만 없지 병원이네. 뭔가 수술이라도 할 것 같은 싸늘함이 느껴지는 의자에서 이상한 안도감이 든다.

"스케일링할 건데 힘들면 얘기해라(입이 막혔는데 어떻게요?)"

"윙잉이이이이이잉징찡 낑 휭 앵앵~(뭐지? 드릴인가?)"

"뭐 이렇게 훅 들어 어러머렁러얼얼 얼얼 얼 오그르르륵"

꼬르륵 숨이 넘어갔는지 손을 들었는지 이러다 무허가 간판 뗄 사고가 날지 걱정이 되셨는지 처치할 시간을 주셨는지 기억은 없다. 그런데 아직 자판을 치고 있는 거 보니 어찌어찌 좋게 좋게 처리되었나 보다.

그래 맞다. 생에 처음으로 먹고 죽을 뻔했다. 스케일링하는데 흡입기없었던 거다. 나는 그렇게 치과라는 곳과 처음 만났다. 자기 침과 물에 숨을 거둘 수도 있는 전두환 시대에 어울리는 무허가 치과.

여담으로 그날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온몸으로 보여서인지 그다음에는 간판 붙은 병원으로 데리고 주셨다. 흡입기도 있는, 건물에 있는 치과로. 감사합니다. 어머니.


초등학교 특수학급(일반 학교에 설치된 특수교육 대상 아이를 위한 학급)에서 알게 된 친구가 있다. 아직도 그 학교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동갑내기 선생님은 도망치지 않고 연을 이어가는 귀한 존재다. 보통 바쁘게 살다 보면 연락이 뜸해지고, 그러다 처음에 알게 된 관심 분야든 직장에서든 벗어나게 되면 슬그머니 남남이 되는 인연의 특성상 교집합이 사라진 상태인데도 말이다. 나이는 같은데 어른스럽고.... 뭐랄까? 선비스럽달까?(무슨 의미냐?) 진주에서 대대로 교사 혹은 선비 혹은 사대부(?)였던 집안 출신답게 친구는 점잖다. 두루두루 많은 걸 못 가진 내가 제일 적게 가진 점잖음을 태생적으로 가진 사람. 얘기를 해보면 배려와 겸손이 묻어나 동안(내적으로 어린 상태)을 만들어 주는 좋은 친구다.


"샘, 타로 잘 보는데 알아? 올해 이사 가는 거 함 물어보고 싶은데..ㅎㅎㅎ"

올커니 오랜만에 손 좀 풀까?

"무허가로 봐줄게. 언제가 좋아? 우리 만나는 화요일?"

"화요일은 일정이 있어.. 월요일?

"그려~"


무허가 시대에 태어난 나는 무허가가 아직도 일상이다. 어쭙잖게 배운 타로를 일생일대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는 사람에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사람의 심리를 교묘히 이용해 써먹는다. 직장을 그만두어야 하느냐 궁금해하는 동생에게 당당하게 그만두라는 결과를 읽어(?) 준다. 나이 오십에 빚을 지고 이사를 해야 하는지 궁금해하는 친구에게 당당히 말한다. 드르와. 궁금하면 봐줄게.

너무 걱정은 마시길. 내가 아는 사람에 한해서. 인간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만 봐준다. 그러니 당신도 해당된다. 궁금한 거 있죠? 걱정 있죠? 드르와. 타로 봐줄게요. 무허가가 원래 실력은 좋아요~(무슨 원리?)


그런데 친구의 카드는 맥락을 달리했지만 큰 흐름으로 보자면 같은 질문에 대답이 비슷했다.


진퇴양난.

고민, 고뇌가 함께 하는 패였다. 이사를 하여도 돈 때문에 걱정. 가지 않아도 가족이 서로를 원망하게 될 카드. 참 이상도 하지.... 경제활동도 열심히 하는 집안이고 친구도 항상 일을 하는데 매번 이 문제가 발목을 잡는 느낌이다. 무언가 좀 막힌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친구의 성숙한 인성이 부럽다가도 친구가 답답해하는 걸 보면 안타깝다. 나도 비빌 언덕 없이 가난하게 살지만, 굳이 악착같이 일하지 않고 즐겁자고 그림이나 그리고 글이랍시고 끄적이며 작가 흉내 내며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데... 도대체 친구에게 다른 점은 무엇일까? 나의 철 없음이 보지 못 하는 걸 친구는 주도적으로 해결하려 하기 때문일까?


다른 질문으로 몇 번을 더 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다. 개운하고 깔끔한 카드가 단 한 장도 없다. 재미로 봐주면서도 재미가 없었다. 미안하네. 에잇. 재미라도 있게 내 것도 보자. 어.. 뭘 궁금해할까나? 점심 뭐 먹을까? 누가 살까? 아! 올해 출간할 수 있을까? 하하하. 좋다. 마음을 차분하게 하고 카드를 배열한다. 간단하게 석 장을 뽑는다. 쓰리 카드로!~


보자 보자~~~ 자축인묘진사오미.....카드가...

오잉?

과거카드가... 컵 1번 카드/ 정신적으로 충실하고 새로운 시작과 기회를 잡는 카드인데.. 사랑과 희망이 넘치는, 충만한 마음 상태. 행복한 일이 생기는 징조로 보기도 하고. 뭐 그럴 수도....


현재카드는... 은둔자 9번 카드/ 현명한 마음, 지혜를 갖고 있기에 길을 모르는 사람에게 방향도 알려줄 수 있는 예언가 같은. 도를 깨친 사람 카드? 뭐라는 거야?


미래카드는? 앞 카드와 달리 마이너이긴 하지만 10번 컵카드/ 행복 사랑 창조력을 상징하고 지금껏 해온 노력이 결... 실?

뭐야.. 책 낸다잖아. 엉터리네.

에휴... 미안하다 친구야. 커피는 얻어먹었지만, 점심은 내가 산다.

갈비탕 먹으러 가자.

무허가 영업으로 커피 한 잔 얻어먹으려다 소고기다.

얄팍한 상술에 자승자박 되는 건 못 읽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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