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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사임당 Feb 14. 2024

어디야?

글쎄. 넘어졌는데 어디쯤인지 모르겠어

남편이 아닌 남자와 한방에 있다. 우리 둘뿐이다. 나는 순순히 손을 내밀고, 그는 당연하다는 듯 내민 손을 잡는다. 지그시 눈을 맞춘다. 마스크 속이지만 그의 입이 벌어지는 게 보인다. 부드러운 음성으로 얘기를 시작한다.




"엑스레이(찍어 본) 결과 골절은 아니네요. 그래도 염증 생기면 안 되니까 물에 넣지 마세요. 처치해 드릴게요. 손 조금 들어보세요."

"예"

"간호사! 머큐로크롬! 거즈! 시저..."


정형외과 선생님이 토요일 다시 만나잔다. 나가는 내게 "약 잘 챙겨 드시고요"하는 말도 어쨌든 잊지 않는다. 전에는 지금 당장 사귀자는 말이라도 할 듯 다정하더니 좀 변했다. 사랑이 어째 아니, 사람이 어째 저러냐... 내가 많이 늙었나? 괜히 손가락보다 마음이 아픈 거 같다. 전보다 환자를, 애인(?)이 아니라 손님으로 보는 건지도 모르겠다.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병으로 인한 증상이 진료를 위해 만난 의사에게까지 발현되는 걸 보니 '나도 참 나다...'싶게 한심할 노릇이다.


 문을 닫으며 "손에 물 닿지 않게"라는 소리가 귓가에 맴돎을 느낀다. 혼인 시장 속 매물 시절에도 들어보지 못한 말을 다 듣는다며 설핏 웃음마저 난다. 극 이성좌(T?) 남편은 결혼을 위해서라도 빈말은 못 하는 아주 정직한 남자였다. 내가 제아무리 김태희 차은우(?) 외모였어도 거짓말은 못 했을 거라며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여유까지 부려본다.


내가 이렇게 속으로 경부고속도로와 88고속도로급의 연관성 없는 흐름을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설 당일. 건강이 걱정되는 부모님 때문에 마음이 복잡하고 몸마저 조금 피곤했다. 내일부터 출근하는 남편 일정에 맞춰 집으로 이른 복귀를 한 참이었다. 잠이 아이를 깨우고 트렁크에서 짐을 내린다. 남편이 있는 만큼 보따리를 내린 것 같으니 나도 가방들을 꺼낸다. 트렁크를 닫는다. '가만, 내가 금방 트렁크 닫기 전에 손을 올려놓은 것 같은데... 아차차 손이 끼었네?'.

"아!"

'됐어. 손가락에 내가 할 수 있는 성의는 다했어. 아야 소리내는 게 어려운 내가 비명까지 냈으니 다한 거지. 괜찮을 거야... 그래도 혹시 모르니 한 번 보기나 할까?' 손가락을 쳐다본다. 어쩐다고 뼈가 보일 듯 깊이 골이 져 있다. 뭐야. 엄청 많이 찍혔네. 아직 피도 안 찼네? 으윽 징그러워라. 아참. 내 손이지. 지나가다 개미 밟은 사람처럼 소리 한 번 내고 말았더니 남편도 대수롭지 않았나 보다. 집에 가서 손가락 사연을 얘기하니 가까이 온다. 보자마자 깜짝 놀란다.


  "맨날 나 둔하다고 타박하더니 어찌 당신이 더 무디냐? 안 아파? 으윽 엄청 많이 찍혔네. 어떻게 해? 응급실 갈래?"


다시 보니 피가 꽉 차올랐다. 까딱 <뼛속까지 내려간 글> 재료 나올뻔했다.


"혹시 인대나 근육이 상하려나? 참을만한데... 막 아프진 않아. 오늘은 그냥 잘래."

"그래, 그래도 자다 안 좋으면 얘기해라. 꼭!"

"알았어"


일요일. 월요일... 설연휴로 문을 닫은 병원을 대신할, 응급실까지 갈 상황은 아니다. 손가락 아프다고 글도 그림도(설거지도) 다 쉬고 있는데 슬금슬금 '골절이 아니면 어쩌지?' 하는 이상한 생각마저 든다. 이런 게 불안이겠지. 쉬고는 싶지만 쉴 명분 없이 건너뛰긴 싫고 그렇다고 손가락 골절까지 시키며 면죄부를 억지로 만들기는 싫은 마음. 다행이다. 그렇게까지 부담을 느낀 건 아니라서. 회사 다니기에 싫어 병이 나고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이상한 행동으로 도망가게 하던 어린 시절의 '나'가 아니라서 말이다. 무의식에 지배당하던 것들이 많은 부분 의식의 범위로 올라왔나 보다. 하기 싫으면 그냥 쉬면 된다. 무의식까지 빌려 '다쳤으니 쉬어야겠다'는 생각은 필요 없지. 또 한 번 다행이다.


아! 그런데 연재. 금요일까지 그림을 그렸고 토요일부터는 집에 와서 그리려고 계획까지 잡... 아서라. 쉬면 되지. 누가 시켰냐? 내가 하고 싶어 한 거지. 맞네. 너 말이 내 말이다.

 그런데 어쩌냐. 골절도 아닌데 내일부터는 그리고 쓰고 해야겠다!? 흥. 뭐래. 그 정도도 못 할까 봐?? 내가 글 실력이 없지, 쓸 내용이 없는 사람이었냐? 그림 실력이 별 볼 일 없었지, 그림 그릴 거리가 없었냐고! 하하하 자신감 좋네! 그래 내일부터 다시 시작이다. 설 연휴 지났으니 새로운 시작! 맞네. 노사임이 새해 새 그림과 새 글 열심히 아니, 재미있게 쓰겠습니다. 그림은 내일부터 밀린 것까지 할 거예요.

말리지 마세요.

어어 말리지 말라니까욧!!

스폰지밥에서 식당 게 사장님 손가락같습니다. 내 사랑 스폰지밥. 오랜만에 보고싶네....

그리하여 며칠밖에 없는 그림이라도 있는지 보아 하니. 그림 연재에 그림은 없답니다. 헤헤

배나무겠죠? 벚나문가? 그려놓고 무슨 나무인지 생각도 안 하고 그렸네요^^

새로운 책 공부 중입니다. <사계절을 그리다> 요즘 인기라죠. 그 외 이것저것 그린 건 있지만 책 공부한 그림이 요거 하나네요^^


대문사진은 노사임이 캘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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