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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사임당 Feb 28. 2024

그리미 그린 발그림

그림 굴러 가유~ (천천히 하면 되지유 뭐)

균형을 맞추는 것에 어려움을 느낍니다. 일과 개인의 삶. 애인과 친구. 가끔은 죽는 건 언제일지 모르니 먹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해야 한다는 키팅선생님 교훈(카르페 디엠?)과 건강을 위해 적당한 운동 건강한 식사를 해야지 하는(교과서적인) 생각 사이까지요.


작년 브런치에 글을 '발행'할 수 있는 작가 신분을 수여받았어요. 믿을 수 없이 기쁘고 들떠 매일 글을 썼어요. (근무하던) 슈퍼에 온 앵무새 얘기며 딱복 물복하며 여름 복숭아 얘기, 앞집 사는 할머니가 콩나물 나눠주신 일까지 미주알 고주알요. 재미있었어요. 잔소리도 하지 않고 비난도 하지 않으면서 아주 은근히 글 쓰길 부추기기까지 하는 분위기에 취해서요.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작가'라는 활동이 주는 뿌듯함과 평생 그런 거 받기 힘들 거라는 생각으로 살았던 '관심'. 그리고 인정받는다는 기분을 주는 '좋아요'까지. 마음속으로 바라던 욕망 갈망을 충족시킬 수 있을 거 같다는 느낌까지 들었답니다. 열심히 정말 열심히 썼어요. 뭘 쓰는지도 모르고 쓴 글이 더 많을 거에요.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도 모르고 달리기만 하는 눈이 가려진 '말' 같았다니까요.


재작년부터 그림을 그렸어요. 이런저런 이유로 시작은 했는데요. 드로잉이니 어반스케치 수업을 듣다 보니 인생 취미라도 찾은 듯 빠져 마음은 이미 화가였답니다.


그림이 서툴러서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나아질까, 무엇을 해야 할까. 어떻게 하는 게 맞는 거지? 하는 사춘기 성인 되기처럼 방황하던 시기였는데요. 그 질풍노도와도 같은 급변하는 혼란한 때에 브런치까지 하게 되었답니다. 그림도 아직 정신 못 차렸는데 글까지 쓰려니 -온통 정신을 빼놓은 글쓰기 매력에 빠져- 내 본처, 첫사랑 그림에 관심이 가지 않기까지 하는 거예요. 멍하니 아까 써놓은 글 생각이 들 때도, 무엇을 쓸지 생각할 때는 있었어도 붓을 드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죠.


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한 거예요. 매일 하던 일상과 전혀 관계가 없는 글쓰기였으니까요. 그림이라는 여름이 삶을 듯 더위를 발산할 때 이제 겨우 익숙해졌다 싶었으나 이상기온으로 가을이라는 유예기간을 주지도 않고 겨울이 와버린 것처럼요. 무엇이든 익숙해진다는 건 참 무서운 건데 그렇게 익어갈 시간 없이 몰아쳐 버렸던 겁니다. 갈팡질팡. 눈에 띄게 실력은 늘지 않고 허송세월하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이었습니다. 마음은 빚이라도 진 것처럼 항상 무겁게 얹혀 있는데 손은 댈 수도 없는 그림들. 일단 그림 만큼이라도 일상으로 끌어올려야겠다는 생각뿐이었던 글쓰기까지. 수준은 떨어지고 그마저도 편차가 심한 글일망정 기대가 없으니 부담도 없이 글을 적어댔습니다. 그러고 싶지는 않았지만(다 잘하고 싶었지만) 하나만 보고 달리다 보니 이제야 글을 일정하게, 규칙적으로 쓰는 것까지는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브런치가 좋습니다. 제가 우리 동네에서 백일장에 나갔다거나 우리집 신춘문예에 글을 쓴다면 '내가 낸데....'하는 마음도 있겠으나 브런치는 브런치니까요. 저는 걸음마나 하는 글린이라 누구도 대놓고 흉보지 않아요. 싫으면 안 보면 되니까요. 저에게 기대도 없어요. 급류에 쓸려가는 수많은 물방울 중 하나니까 누가 먼저랄 것도 누가 잘났다는 생각도 없이 흐름에 몸만 맡기면 됩니다. 컴퓨터를 켜주고 자판 앞에 손가락만 얹어주면 어딘가로 데려가 줍니다. 저 위에서 통통 튀며 소리를 내는 물방울도, 맑은 글로 눈을 정화해 주는 윗물이 아닌 구정물처럼 흘러가는 아랫물인 저였지만 두각을 나타내는 작가님들과 본류를 이루고 있다는-소속되어있다는- 기쁨만으로도 충분한 작업이었습니다.


글이 지류에서 본류로 올라왔습니다. 성실함으로 초록 배지까지나 받았으니 인정해줘야죠. 그럼 흐름에 몸을 맡기고 저는 그림을 다시 본류로 올리는 작업 하겠습니다. 그림. 어렵습니다. 특히나 수채화는요. 저는 '고양이띠'라서 물을 싫어하니 더 어렵네요. -물 무서워-저만의 색을 찾고 저만의 선을 그리고 싶어요. 또 이것만 생각하는 집중의 시간이 필요하겠죠? 그렇게 그림을 열심히 그리다 보면 그림도 글도 균형점을 찾을 수 있겠지요. 그렇게 된다면 자전거를 배운 아이처럼 핸들을 좌우로 잠깐 꺾을지라도 금방 길을 달릴 거에요. 핸들 생각, 페달 걱정은 잊어도 좋을. 발을 저어야 하는 건 신경쓸 필요도 없이 앞만 보며 가면 되는 자전거 타기 말이에요. 오늘도 일상으로 올리기 위한 그림 그리기 <1일 1 그림> 그리겠습니다.


균형점을 찾을 때까지 '끌올'하겠습니다, 그림.


손가락 부상 후 며칠 쉬어서요. 하루에 두 개도 세 개도 그리며 속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시간이, 여건이 허락하는 한 속도를 내고 싶어서요. 이런 그림 백날 그린다고 실력이 늘까? 하며 하나씩 그렸어요. 사실 조바심이 나곤 했습니다. 그런데 희한하지요. 미세하지만 조금씩 또 늘었어요. 색 쓰는 것도 붓 놀림도요.


그런 실험이 있었다죠. 한 외국 대학교수가 학기 시작 때 학생을 두 그룹으로 나눴대요. 그들에게 사진 찍는 과제를 주었는데요. 한 그룹에는 무조건 많이 찍는 사람에게 점수를 많이 주겠다. 다른 조건은 전혀 없다. 무조건 '양'이다. 나머지 그룹에는 한 장도 좋다. 양은 무의미! 네가 가장 잘 찍었다고 생각하는 사진을 내도록 하라! 는 조건 하나만 걸었다고 해요. 아~ 또 눈치채시네. 역시! 작가님 아니랄까 봐. 행간 사이까지 읽으시다니. 흥칫뿡! 입니다.


그래요. 잘 찍은 사진 한 장을 위해 고뇌한 모둠은요. 잘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 행위보다 고민하는 시간과 회의의 시간을 들이다 보니 실력은 늘 기회가 없었고요. 급하다 일단 많이 많이 하던 모둠은요. 모르겠고 일단 찍다 보니 시행착오를 하며 배운 것들이 실력으로 이어졌고 몸으로 익히는 경험치를 주었던 거지요.


맞아요. 글도 그림도 담배도 술도 아니, 그러니까 무엇이 되었던 시간과 부딪힘만이 주는 값이 있다. 그러니까 '일단(닥치고) 그림. 일단(무조건) 글' 하겠습니다. 말 많았네요. 죄송해요. 그럼 또 일주일 그림 부려놓고 갑니다. 휘리릭.


대문사진은 도서관 간판 작업 의뢰용으로 적어 본 캘리샘플입니다.

노사임이 켈리그라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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