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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사임당 Mar 06. 2024

함께한 지 68일째

너를 알아가는 시간

오늘이 68일 차예요. 그림을 매일 그린 지가요.



그림을 시작하고는 싶은데 처음엔 막막했어요. 하고 싶다는 생각을 묵혀둔 지가 꽤 되었던지라 사놓은 책도 있었고 매주 가는 도서관에도 미술 관련 책은 있었지만요. 어떻게 '일단 시작'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 걸까? 고민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다 버릇처럼 둘러보던 도서관에서 우연히 펜화 책이 눈에 띄었어요. 이상하게도 손이 절로 갔고 그 길로 빌려와 바로 그려봤더랬죠. 그런데 '어? 내 취향이네!' 싶은 거예요. 뭔가 한다는 생각 없이 은근슬쩍 끼워넣기가 될 것 같다는 느낌. 뭐든 시작이라는 것에 겁부터 먹는 유형인데도 펜화는 수업 시간 공책에 낙서하는 마음 같은 게 편한 거예요. 고향에 온 느낌. 익숙한 낙서의 향기가 스멀스멀....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 부담스럽지 않았거든요. (낙서에) 소질도 있어 보이니 재미있었어요.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은 조금의 자신감을 선물로 주더군요.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동력이 되어주었고요.

선에 조금 익숙해졌다고 생각한 후에는 대충 칠하는 수채+펜화를 했어요. 정교한 작업이 있어야 하는 극사실주의 보태니컬 아트가 아닌 것으로요. 색을 살짝 올리는 정도로요. 본격적인 수채가 아니다 보니, 펜으로 그린 선의 허전함을 채워주는 정도, 딱 그 정도 물감 사용이요. 색의 느낌만 전달하는 정도의 작업이었습니다. 색을 굵게 쓰며 칠했지만, 조색 연습이 되었어요. 낙서만 하며 살던 저의 그림 경력에 색은 참 어려운 거더라고요. 배워보려고 해도 자연스럽게 습득도 안 되고 색감이 이미지로 그려지지도 않았지요. 이게 되는지 안 되는지 모르겠다 싶으면서도 매일 물을 묻히고 색을 섞다 보니 뭐랄까 미세먼지 '나쁨 수준'까지는 시야가 걷힌 느낌입니다. 미세먼지 '매우 나쁨' 상태의 시야감이었는데. 좀 좋아졌죠? 그래도 아직은 앞이 뿌옇.. 그렇게 60여 일 동안 권의 책을 뗐습니다.


다행히 선 긋기 연습 같은 펜화 책과 조색을 연습할 수 있는 거친 수채 작업으로 기초 1단계를 배운 것 같아요. 그래서 다음 책을 뭐로 할까... 생각합니다. 집에 밀린 책이 무려.... 번짐 수채화. 나도 수채화 잘 그리면 소원이 없겠네. 사계절을 그리다. 다정한 나의 오일 파스텔. 일상의 소녀. 마크 키슬러의 드로잉 수업. 나의 감성 수채화. 매일매일 수채화. 수채 스케치. 게다가 조색 이미지 도서까지.... 아주 조금 있네요.

책을 사놓으면 그림이 절로 늘 것 같은 기분에 산 책이다 보니 이젠 건너뛰어도 되겠다 싶은 쉬운 책도 있고 그림 톤의 유행 변화로 예스러워지려는 책까지 생기네요.

뭐 어쩌겠어요. 붓 들고 펜 드는 시간보다 책 욕심이 더 커 쇼핑에 들인 시간이 더 많았으니, 당연한 결과일 텐데요. 그런데 아깝지 않아요. 전시용으로 책만 산 게 아니니까요. 조금씩 노력한 결과로, 68일간의 증거가 '처음보다 나음'으로 남아있으니까요. 그냥 못 쓰는 책이 된 것이 아니라 연습한 만큼 실력이 조금이라도 늘었으니 건너뛰어도 되는 책, 필요 없는 책이 된 거니까요. (그러면 책을 그때그때 사지 이 사람아...)


 <나도 수채화 잘 그리면 소원이 없겠네>를 하겠습니다. 이번에는 물을 좀 많이 쓰는 작업이 될 예정이고요. 저의 필살기인 펜을 쓸 수 없는 수채로만 하는 그림을 그려보겠습니다. 가~~~~ 장자신 없는 그림을 그려보려고 합니다. 펜선 없이 바로 수채화. 수채화를 세밀한 꽃으로 연습하는 과정을 해 볼게요. 꽃만 그릴 거예요. 이런저런 물건이니 물체를 그리는 것은 무리가 있으니까요. 지난번에도 말씀드렸다시피 꽃이라는 건 꽃잎이 크건 작건 내 마음속에서 이미지를 조금 가공한다고 엉터리가 되지 않는 그나마 또 접근이 쉬운 재료 같으니까요.

그럼 또 책 속으로, 그림으로 들어갈게요.



지난 일주일간 한 권 빨리 떼기 위해 하루에 두세 장을 그렸거든요. 너무 두꺼웠어요. 이번 책이요. 뭐 그림이 많으면 돈은 안 아까울지 몰라도 사놓고 안 그리면 죄책감이 클 텐데 뭐가 더 나쁜지는 모르겠지만요. 하여튼 (속마음은 조금 지겨웠다) 속도를 냈습니다. 책거리하는 쾌감이 있습니다. 왠지 해보지도 않은 도장 깨기 느낌도 있고요. 성취감 생기네요. 수다는 여기까지 떨고 부려놓고 가 볼게요. 바이~~

이런 책입니다. 책 두꺼워요. 본전 생각은 안 나실 듯...


실력이 없기 때문에 도구를 탓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이소 천원짜리 종이에 그렸는데요. 실력이 좋아지면 다이소 170매 천원보다 비싼, 장당 2,000원짜리를 사서 그려보겠습니다. 흐흐흐 발 그림을 그리니 비싼 거 싼 거 구분을 못해서요. 못 그리니 비싼 종이에 그려도 차이를 모르겠고 싼 데 그려도 어차피 못 그린 거라 구분 안 됨. 슬프지요? 자 그럼 다음 그림은 다이소 종이 졸업하고 수채화지에 그리겠습니다. 수채화를 할 거니까요. 아휴 잘 할 수 있으려..아니 잘 하고 싶다아.. 자 또 출발!!

천원짜리 다이소 공책 꽤 그럴듯한 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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