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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사임당 Mar 20. 2024

온봄달 스무날 삿날

멘토를 바라는 마음/ 혼자 해 보려는 마음

아랫배를 풍만하게 만들어줄 차를 탑니다.



저녁 식사도 마친 시간이라 커피는 안 되겠죠. 말차 라테를 두 봉 따 넣습니다. 글 쓰는 맛을 올려줄 소품, 장치이기 때문에 오래 먹을 수 있게 물은 넉넉히 붓습니다. 우롱차를 마실지 잠시 고민했지만, 커피색은 저녁에 좀 사양하고 싶네요. 오전에 먹은 커피가 되새김질 될 것만 같아서 말이죠. 입천장을 야하게 (홀랑) 벗겨줄 뜨거운 라테를 식혀야 합니다. 냉장고에 들어있던 우유를 망설일 필요 없이 백 밀리 첨가. 색이 좀 연하긴 하지만 우유가 맛을 책임질 겁니다. 이제 한 모금 이나영 김연아가 되어 커피 아니 차를 마셔봅니다. 우아하고 여유롭게. 으음~헛 뜨거워. 아…. 아직 이나영은 안되고 전원주 얼굴만 만들어졌습니다. (그래도 연예인이니 실물은 이쁘시겠죠? 하하 그럼 저도…. 껴 주..) 옆으로 살짝 밀어둡니다.


일단 글 쓸 장치 1은 구비되었으니 손가락 모터를 켜 봅니다. 피아노는 쳐 본 적도 없지만 손톱을 바짝 깎고 자판을 치면 그렇게 맛이 좋더군요. 악기도 손톱 잘 깎아야 한다던데 맞지요? 제 손을 봅니다. 지금 소심하게 자라있네요. 글 쓸 맛이 (-2) 되었습니다.


글은 시작해야 하는데 차는 뜨거워서 마시지도 못하고 손톱도 짧지 않아 맛이 줄었으니 오늘 손가락 모터가 잘 돌아가려나 어째 불안불안하네요. 그렇다면 어쩌나... 그냥 덮어? 그럴 리가. 아닙니다. 환경에 굴복하지 않겠습니다. 뜨거운 차를 한 모금 과감하게 "헙~" 들이키고 손가락을 잘 눕혀 자판을 눌러봅니다. '헐 뜨겁다. 흐미~ 손톱이 자꾸 느껴진다....'

이제 최면을 겁니다. 나는 작가다 작가다 글이 뭐 그냥 재활용 쓰레기 나오듯이 숨만 쉬어도 나온다 나온다. 어제 버린 쓰레기가 왜 또 한 박스나 나와 있냐.. 아니 그리 가지 말고 그거 아니지. 어 글, 왜 이렇게 쓸 게 많냐.. 글감이 아주 집안에 굴러다니는구나.. 올타쿠나. 최면이 걸렸습니다. 그럼 풀리기 전에 시작하겠습니다. 레고~레고!


아옹다옹하다 작가님이 좋아하는 코스모스랑 사차원그녀 작가님이 좋아하는 이름이...뭐더라 꽃도 같이 올려보고..



이번에 새로 시작한 책이 있어요. <사계절을 그리다>라는 어반 수채화 책인데요. 제 수준에서는 좀 어려워 보였어요. 저는 선 전문가(누가? 언제부터?)라서 색에 취약합니다. 색이 주를 이루는, 제 수준에서는 수채를 본격적으로 해야 하는 책입니다. 이건 도전이죠. 가진 능력으로 하던 그림, 그것을 뛰어넘어야 하는 익힘책. 재미로 놀아가며 하는 취미책이 아니라 연습하고 공부하고 익혀야 하는 교재였습니다. 이왕 가기로 한 거 누가 흉을 보겠어. 낙제를 주겠어. 혼자 실망도 하고 절망도 하고 고뇌도 하고 우울도 하면서 인생 배우고 그림까지 배우는 거지. 괜찮다 밀어붙였습니다.


책을 살 때요, 제가 어느 정도 실력이냐보다 내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은가를 더 따져봅니다. 결국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 느낌, 풍경을 고른답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제 실력과 무관하게 제가 그리고 싶은 것들을 담고 있어요. 그러니 편안하고도 부담 없이 넘어가는 책장이 없네요. 한 장마다 배움을 취득하고 도전을 선택해야 합니다.


인스타에 매일 그림 그리고 숙제를 올렸는데요. 연필 잡은 거 하나 올리고 선 하나 그은 거 올리며 농땡이까지 치게 됩니다. 하루에 한 장 완성이 안 되니까요. 다행스럽게도 집어치우고 싶다느니 못하겠다느니 하는 생각은 나지 않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저는 많이 왔다고 자평합니다. 토닥토닥~ 자래써! 거의 성공이야!!


길이 멀어요. 예. 서울까지 걸어가야 하는데 진주도 못 벗어난 거 압니다. 그래도요. 이 고비 넘기면 길이 끝나는 건 아니더라도. 내게 이 정도 언덕은 오를 여력이 있구나. 또 다른 언덕이니 산도 나타나겠지만 그때마다 또 한 발씩 한 호흡씩 하다 보면 되겠구나. 힘들어서 더는 못 가겠다며 눈 들었는데 정상에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희망을 느낍니다. 예. 맞아요. 성급하지요. 진주도 못 벗어나 놓고 벌써 서울 가서 김 서방과 하이볼 마실 생각부터 한다니요.

이번주는 그림이 적어요. 속도가 안 나서요. 예전부터 그려놓았던 이 책의 그림들 또 부려놓고 가겠습니다. 오늘 그림 동아리에 가서 이 책 스케치를 7장 했거든요. 시간 날 때 펜으로 선따야 해요. 하루 몰아서 선을 따고 나면 수채화 늪으로 빠져보려고요. 안되니까 자꾸 해야죠 뭐. 제가 이런 사람이 아닌데 언제부턴가 이렇게 노력을 다하네요. 사람 되어간다니까요. 이게 다...ㅎㅎ 브런치 덕이고. 작가님들이 "잘한다. 우쭈쭈" 해주신 덕이지요. 제가 성공하면 그림 하나씩 다 착불로 보내겠습니다. 반송 없습니다. 무조건무조건이야~

형태를 따고 피그먼트 펜으로 선을 그어야 합니다.

벽돌 마무리 안 하냐? 흐미~ 못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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