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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사임당 Apr 03. 2024

화가가 꿈인가요?

우리 집 거실에 걸 그림 하나 그릴 수 있는 자칭'화가'는 어때요?

수요일입니다.



매주 이날은 옆 읍에 있는 도서관에 갑니다. 지금까지 1년 반 정도 매주 만남을 이어가는 그림 동아리, '열쩡스케치' 모임 날이지요. 무료로 해 주는 수업에 우연히 들렀다가, 옛날부터 그리고 싶었으나 여건이 안 되었는데 기회가 된 김에, 사람이 그리워서라는 이유든 어쨌든 지금까지 하는 그림 되겠습니다. 그 당시 무료 수업이 끝나가지만 이런 좋은 분들 다시 만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게다가 평생 그림 잘 그려보고 싶다는 소망만 간직한 채 살았는데 드디어 시작도 하게 되었고요. 제일 걱정이었던 재료비마저 마트에 파는 청정지역 호주산 스테이크 한 덩이 값으로도 가능하니 망설일 이유를 찾지 못했음입니다. '이만'하며 헤어지려는 시점에 다리를 붙잡았어요. 제발 계속 모여 그림 그리기를 이어가자고요. 그렇게 몇몇 분의 동정심과 마침 시간도 남으니 그럴까... 한 운이 맞아 꾸준히, 다툼도 없이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선 하나 그리며 서로를 폭풍 칭찬하고 색 하나 칠하며 이제 입시반 졸업하고 서울대 가라는 소리를 해대며 그림을 그리니 포기하고 싶었던 날들도 얼렁뚱땅 넘기게 되었습니다. 서로가 없었다면 '그런 적 있었지'하는 과거형으로 끝이 났을 겁니다. 이분들 이 시간이 있었기에 세계대전 급 층간소음 어머니와의 백년전투 사춘기 딸과의 국지전도 남편과의 각개전투마저 다 백기 투항 없이 휴전까지 올 수 있었겠습니다.


열정이 길을 안내한 걸까요? 미대 나온 전문 화가 선생님을 지원받는 이벤트(?)에 당첨도 되었고요. 물론 너무 초짜라 무언가를 배웠다고 하긴 조금 어려웠네요. 그저 일주일에 크로키 100장씩 그려야 했던 미대 생활로 단련된 선생님의 <눈 감고도 그림 그리는 실력>만 체감한 수업이었습니다.

책을 떼며 독학도 해 보았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돈 드는 일에 거부감이 있다 보니 유료 선생님을 모시는 것에 회의적이었고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았어요. 회원분들께 도움을 드릴 수 없어 답답하고 방법이 보이지 않아 힘들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기초부터 익혀보자 생각을 모았고 '책으로 독학하기'를 시작했습니다. 벌써 번째 책을 하고 있네요. 도서관 도서관 책방 책방을 다니며 사냥을 때는 책 정도면 그림도 스타일도 설명도 딱 맞겠다 싶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절망하곤 하는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요. 그 과정을 지금 또 하고 있습니다. 잘 안되고 때려치우고 싶고 좀 쉴까 싶은 복잡한 마음을 다독이는 그림 익히는 과정이요. 물론 남들이 그려놓은 '핀터레스트' 그림 따라 그리기 하며 지난주와 비슷한 그림으로 즐겁기만 한 취미. 딱 그 정도로만 남겼어도 좋았을 겁니다. 하지만 잘하고 싶었어요. 실력이 늘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없어지지 않더군요. 말은 하지 않았지만 겨우겨우 나오는, 좋은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그만뒀을 회원도 나올 만큼 밀어붙이는 시간도 보냈습니다. 너무 거창하고 대단한 일 한 것처럼 미화했지만 30%는 사실입니다. ㅎ


결론은 그림 어렵네요. 글쓰기만큼요. 마음대로 안 되는 정도가 글쓰기 급입니다. 뭐 어려운 거 다 갖다 붙이자면 수능 공부 고시 공부 급이다. 막 아무 말, 막말하고 있습니다만 수능은 기억도 안 나고 고시는 해 본 적도 없으니 쉽게 아무 말하겠습니다.


지난주 그림 하나 그려놓고 뻗었거든요. 힘들어서요. 색칠 반하고 누웠다 기력 회복하고 일어나서 다시 하며 완성한 인생 역작!이었습니다. 잘 그렸어요. 보면 볼수록 내가 했나 싶어 보고 또 보았지요(남들이 보기에는 별거 아니라도 제게는 대단쓰). 근데 글이 그렇듯 잘 써지는 날이나 찰떡같이 마음에 드는 날이 있는 반면, 제아무리 엉덩이를 의자에 방석처럼 붙박여도 글이 고산병 걸린 사람 등산하는 거처럼 위험해지고 포기만이 답처럼 보이는 날 있잖아요. 그림도 한번 잘 나온 거지 다음 그림 또 십보 후퇴겠지? 그 실망감 느끼기 싫어 미루고 미루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이 무슨 날입니까. 연재 쓰는 날이지요. 일주일 치 그림 7개를 당당히 올리겠노라 허언했는데 거기서 끝내야지 거짓말까지 되면 안 되니까요. 붓을 또 작정하고 들었습니다. 그래 까짓 껏 해 보자! 망치면 또 그리면 되지. 어제 택배로 비싼 종이 또 왔다. 총알 장전되었다. 그림만 그려보자! 하는 비장한 심정으로 덤볐습니다. 으쌰. 붓이 겉돌고 그리기 싫고 하는 날들이 이어졌는데 오늘은 비도 오고 기분도 차분하니 무기가 손에 감깁니다. 챙챙 휘리릭 "톡톡톡톡" 무 써는 소리가 납니다. 됩니다. 그림이 됩니다, 여러분! 드디어 성공했습니다. 수채화똥손 졸업인 것 같습니다. 지난주에 이어 오늘도 벌벌 떨지 않고 색을 올렸습니다. 짙은 색도 무섭지 않고 조색도 조금 헤맸지만, 꽤 그럴듯합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조그마한 재능도 크게 보였어요. 스타트가 다르게 보이니까요. 그런데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뭉근하게, 꾸준함이라는 간을 맞추니 먹을 수는 있는 음식이 됩니다. 한정된 재료만으로 훌륭한 미쉐린 가이드 별 3개급 음식을 만드는 건 재능 출중하고 노력 피나게 한 요리사님들의 영역이겠으나 나 혼자 먹는 음식은 노력만으로 가능하다. 나 식당 안 할 거다. 혼자 떡볶이에 콩나물국만 끓이면 대만족이다!

전문 작가나 유명한 사람이 되려면 사실 재능이 필요할 겁니다. 하지만 취미를 위한 그림은. 그저 내 눈에 좋아 보이는 정도만으로 소원 성취가 되는 거라면? 재능 필요 없습니다. 시간과 억지! 어쨌든 계속하기! 이것만 있으면 여기까지는 되는가 봅니다.

성급하다 그죠? 겨우 이 정도 해놓고 대통령 당선 수락 연설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요만한 계단이라도 한 계단 오른 것 같아 오늘은 기분 좋게 잠들고 싶습니다. 마음의 짐 조금만 덜어놓고 말이에요.

지난주 펜까지 그린 그림 7장 중에서 이번주는 구름 다 칠했고. 2장은 완성했습니다


부족하지만 이 정도도 사실 괄목할만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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