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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사임당 Feb 21. 2024

정체가 뭐예요?!

나무늘보

우리 집에는 제 첫째 딸의 오빠가 있습니다.

윙?

예, 글자 그대로입니다. 저의 첫째 딸, 그 아이의 오빠.



이름은, 그러고 보니 그 이름이.... 제가 부르는 이름은 '북'이고요. 아이들은 또 뭐라고 이름을 지었었는데 엄마인 제가 '북'이, '북'아 하고 부르니 그냥 북이가 된 모양새입니다. 낌새가? 아마 생각하시는 게 맞을 겁니다. 이렇게 그냥 소개하긴 지루하니 조금 더 스무고개를 이어가자면요. 제가 낳은 게 아니니 태어난 날을 모릅니다. 그러니 태어난 시간도 모르는 게 자연스러울 거고요. '그렇게까지?' 싶겠지만 태어난 해마저 몰라요. 결론적으로 이 애 사주는 못 보겠네요.

얼굴 보고 결정했습니다. 밖에 없어서 서로 상견례만 했다는 게 맞겠지만 하여그럼에도 얼굴도 보고 부모님의 결혼보다는 시작이 친절했습니다. 그렇게 아는 언니의 주선에 만남이 성사되고 보자마자 운명처럼 받아들여 동거를 시작한 거예요. 성격 급하다. 그죠?

미팅이나 할 거 사전 조사를 하면 좋았을 텐데요. 우리집에 온 식물들처럼 살아봐야 제명에 못 죽지(못된마음 죄송합니다)싶은 잔인한 마음 반, 나 아니면 제명까지 못 사는 것도 모자라 제 집 문 나서는 순간 '사망 일자'로 정해질 수도 있을 테니 식물계 저승사자일망정 나랑 하루라도 더 이승 밭에 머무는 게 낫지 싶은 맘 반인 생각으로 결정한 것이었지요. 그러니까 '어어~~알았어요, 내가 데려갈게.' 하며 무료로 주는 '마이쭈가 든 구몬학습지 홍보용 봉지' 잡듯 이래도 저래도 상관없지만 '그래도 마이쭈' 하는 마음으로 갖고 온 것입니다. 그 집 사춘기 아이와 이별하고 우리집 뭐든 키워야 하는 아이 집으로 이사를 들어온 녀석. 스포일러급 이름때문에 예상하셨겠지만, 중3 되는 큰 딸보다 나이가 많은 거북 얘기입니다.


학창 시절 운동회에서 반 대표로 달리기를 한 적이 있어요. 그전까지 체육 시간에 제가 달리는 모습을 유심히 보았던 친구들이 이런 날을 예견해서 점찍은 건 아니고요. 그냥 키가 크니까 같은 속도라면 긴 다리가 유리하리라는 '밥 먹으면 배부르다.' 급의 허무하고 무성의한 선택으로 결정이 나 버린 출전이었지요.

뭐, 꼴등 하진 않았을 겁니다. 그렇다고 1등도 아닐걸요. 1등 했으면 학교 다니면서 해 본 적도 없는데 달리기든 뭐든 그런 걸 했으면 기억을 야무지게 했을 테니까요. 꼴등 했으면 두고두고 부끄럽고 후회가 되니 또 뼈에 새기어 난망한 상태일 테니까요. 어중간한 등수일망정 부끄럽지도 자랑스럽지도 않았을테지요. 저 아니면 하고 싶은 녀석도 없었으니, 친구들도 좋지 않은 등수를 원망도 고마워도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달리기를 못하지는 않아요. 다만 시작도 하기 전에 '땅' 소리를 상상하며 부들부들긴장하고 못 할까 봐 미리 겁먹는 성격 때문에 스타트가 빠르지는 않다는 단점이 있지요.


우리 거북이는 큰딸이 주기적으로 집 청소와 목욕을 시켜줍니다. 저는 북이를 넣은 채 집도 청소하고 애도 샤워시키는데요. 큰 애는 달라요. '집돌이' 북이를 배려하여 집 청소한다고 먼지 날 때만이라도 꺼내놓고 걷게 한답니다. 거북이가 나간 집, 물에서 굴러다니는 먼지도 털고 돌멩이 카펫도 다져주지요.

근데 이상한 건요. 물똥을 찍찍 싸대면서 거실을 아무렇게나 쌩~하니 달려대는 병아리가 아닌 데도요. 잠깐 한눈을 팔면 어디 갔는지 안 보일 때가 있다는 거예요. 배란다 구석에 숨어 버리기도 하고 언제 저기까지 갔지? 싶을 만큼 배란다를 횡단하는 북이를 볼 수 있답니다.


저는 가끔 거북이를 보면서 나도 저렇게 살아야 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뜬금없이 하곤 해요. <토끼와 거북>에서 왜 토끼가 분해하면서도 재경기를 요청하지 않았는지, 결과적으로 질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절로 되기 때문인데요.

평소 이 녀석은 놀라서 목 넣을 때 빼고는 제법 차분하고 몸짓 속도가 느려요. 그래서 항상 집중해서 녀석을 관찰하면 이변도 없이 뻔한 손바닥 안이라는 마음으로 밖에 내어놓는단 말이죠. 첫걸음을 뗄 때는 속으로 무슨 목적을 정한 건지 당최 알 수 없는 게으른 걸음에 불쌍한 마음 측은한 마음마저 들고요. 혀를 끌끌 차며 잠시  하던 일을 하다 보면 결국 한 걸음도 쉬지 않고 시선을 붙여놓은 그곳에 도착해 쉬고 있는 녀석을 놀란 눈으로 보게 되는 겁니다. 존경스러운 마음마저 든달까요? 스타트가 빠르면 유리한 건 사실이지만 꼭 그 시작이 끝을 예견하는 건 아니라는 결론을 절로 주는 거예요.


빠르면 좋지요. 항상 바라 마지않습니다. 오늘도 동아리 방에 가서 그림을 그렸는데요. 동료들은 완성하고 집으로 돌아간 시간에도 혼자 남아 2시간을 더 그렸어요. 열등하여 선생님이 남겨서까지 과제물 준 아이처럼요. 그렇게 시간을 더 들였는데도 다 못 그렸습니다. 조금은 속상했습니다. 의자에 앉자마자, 책상에 수채화 종이를 펼치자마자 막힘없이 그림을 시작했다면 같이 나갈 수도 있었을 텐데. 온기가 들 때까지 벌벌 떨 수밖에 없는 화목보일러처럼 왜 그렇게 시작이 늦는지.... 매주 아니, 매일 그림을 시작할 때마다 드는 생각 때문에 제 행동이 지겹기까지 합니다.


거북이 같은 저. 느려터져서는 보는 사람도 하는 저마저 답답합니다. 동아리 언니는 "잘할거면서~"하며 용기를 주지만 당장의 흰 종이 앞에 막막한 건 매번 똑같네요. 이런 저도 달라질 수 있을까요?


그런데 다시 보면요. 꼭 달라져야 하는 것, 고쳐야 하는 습성일지 하는 생각도 들곤 해요. 이게 제 속도일지도 모르잖아요. 저는 거북이니까요. 토끼만큼 용수철 닮은 뒷다리가 없어요. 타조처럼 기다란 다리도 없고요. 다리가 짧아도 날개가 있는 참새처럼 포르르 빠르게 날아갈 수도 없답니다. 대신 느리지만 튼튼하고 오랜 시간 갈 수 있는 다리가 있는 거지요. 15년도 넘게 살았는데 그만큼 더 살지 모르는 시간마저 내 편으로 갖고 있습니다. 이거야말로 내 시간에 맞추어 조급해하지 말고 가야 하는 진짜 이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천천히 그리다 보면 어느샌가 완성입니다. 느렸지만 답답했지만, 끝이 보이지 않았지만 결국은 마지막 점을 찍습니다. 그렇게 오늘도 하나의 그림을 제 속도에 맞추어 그려봅니다.



지지난 주 손가락 부상으로 이틀분만 있어요. 그거랑 이번 일주일 7회차 합하여 9회분입니다. 다시 성실 모드 들어갔으니 책 지루하지 않게 끝내질 듯합니다. 이 책은 이제 적응이 되었어요. 부담도 없고 그래서 머뭇거릴 이유도 없이 다가가 지네요. 스케치부터 색칠까지 간단한 그림이긴 하지만 5분 10분이면 끝낼 수 있습니다.


그럼 '어느것이 똑같나요?' 그림 구경하세요. 거북이 그린 그림입니다.

성실 지수가 낮을 때 그림이라 성의가 없어 보입니다.ㅎㅎㅎ

다시 회복되는 듯 보이네요.

제가 봐도 참 똑같네요. 뭐 열심히 공부했구나...할 만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금방 그린 그림까지 이번 주도 숙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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