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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사임당 Feb 16. 2024

나는 남자다

오랜만에 알았다(나는 중학생때도 남자였다)

AI 카메라를 켠다. 찍을 곳으로 렌즈를 댄다. 사물을 인지한다. 대상 물체가 무엇인지 판단한다.



 인물

초상

....

남자

....

'나는 남자다.'


라는 결론이 났다. 나도 모른 내 성별이다. 애도 낳았고 남자랑 결혼도 했는데 현대과학 집약체(?)인 AI, 그것을 활용한 카메라가 날 남자라고 판단한 거다.


미용 아니 이발했다.- 나는 남자였을 테니- 손가락이 불편해 어제 머리를 감지 않았더니 슬슬 머릿결이 살아나고 냄새도 살아난다. -님아 그 선은 넘지 마오.- 이리된 거 미련처럼 붙여놓았던 머리카락을 자르겠노라 결심하고서도 가지 않았던 미련마저 자르러 출발한다. 남편의 단골집. 미용, 이발 모두 가능한 머리 집으로. 정체성은 생각보다 필요 없을지도 모를 곳으로…. 머릿결이 살아나니 찰랑한 머리가 신기해 자르기가 싫었다. 머리에서 나는 냄새가 청국장처럼 퍼지려고 하니 반드시 가야만 했다. (며칠 파마약 냄새가 두피에 남아 게으름을 물리쳐 줄 것이다.)


초등학교 5학년 무렵이었을 거다. 어머니가 사춘기를 준비 중인 딸의 위생을 위해 단발령을 내렸다. 누구 말에도 토를 달지 않고 '노'를 외치지 못하는 나는 울면서 겨자를 먹었을 거다. 그냥 싫다고 할 것이지. 그날 어머니가 머리를 자르고 나자 나는 울었다. 하루 종일 방바닥에 머리를 붙이고서. 조선의 왕에게 나라 잃은 슬픔을 전할 길 없어 혼자 가슴을 치며 울었을 조상님들처럼. 미련뿐 아니라 온갖 상념이 든다. 그래 나에게 '머리 자르기'는 단발령에 항거한 선비들만큼이나 싫은 것이었다.


글에서12화 오늘 연재 발간합니다. (brunch.co.kr) 약속한 대로 머리는 잘라야 한다. 그리고 거추장스러운 머리를 좀 자르고 작업에 집중할 필요도 있다. 앞서 글에서 밝혔듯(작가인듯 작가아닌 작가같은 (brunch.co.kr) 작업을 너무 벌여놓았다. 게으른 나와 이별해야 하는 거다. 환경이 변하면 마음도 어느 정도 변하리라.


이별의 대상이 꼭 이성인 남자 친구만이지는 않을 테니 헤어질 기념으로 나는 머리를 잘라야 하는 거다.


"나를 게으름과 미련이라는 혼란에 빠뜨린 머리카락을 당장 매우 많이 쳐라!"


머리카락 숱이 너무 많아져 가위가 도저히 들지 않게 되자 어머니가 선택한 차선책이었다. 나에게 어릴 적 미용실은. 태어나면서부터는 아버지가 전담하여 바가지머리를 만들어주셨고 조금 크고서부터는 어머니가 재단 가위로 거사를 치러주셨다.

고등학생 때부터였을 거다. 단발하라는 교칙에 따라 중학 내내 올리고 다닌 커트 머리를 길러내려 단발로 만들어야만 했다. 아마 여자분들은 알 거다. 커트에서 단발을 만들기 위해서는 웅녀가 힙스터이던 시절 <호랑이 사람 되기 프로젝트> 속 시간처럼 그것은 내 편이 아니라는 걸. 갈림길에 서게 된다는 걸. 기르려니 너무 더럽고(지저분하게 삐죽삐죽 자라고) 그렇다고 계속 자르려니 교칙에 어긋날 것 같아 갈팡질팡 어쩔 줄을 모르게 되는 거. 그럼에도 공부 안 하는 모범생인 나는 머리를 길러야 했다. 알고 보니 커트하고 다니는 아이들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자른 지 일주일만 지나도 지저분해지는 머리카락을 온갖 인내심을 발휘하여 단발 비슷할 때까지 길러야 한다. 백일. 머리 기르기는 시간만이 해결해 주는 것 중 하나다. 그러고 나면 드디어 어깨 정도까지 길게 되고 악어 이빨처럼 자란 머리카락을 고르게 수평 맞출 수 있게 되는 거다. 인테리어 업자들이 그렇게도 돈처럼 생각하는 수평을 맞추어야 하는 거다. 그때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아이고. 무슨 머리가 가위를.. 자를라카믄 도망을 가고 한 (가위) 날에 잡히지를 않노. 챠라 마. 담부터는 미용실 가라 니는. 안되긋다."

그때부터 내 머리의 수평은 미용사 아주머니의 몫이 되었다.


"머리 자르시게요? 이렇게 긴데? 대변신이네요? 진짜 자르시게요?"

"예. 손가락을 다쳐서 머리 감기 힘든 김에 겸사겸사 자르려고요. 그리고 이제 나이도 드니 머릿결도 예전만 못하고. 맘과 달리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네요."

"아니 머릿결도 좋으시고 숱도 적당하고 아까운데…." 아니 미용실 사장님이 머리자르기 싫나….

"머리를  너무 오래 묶고 다녔더니 견인성 탈모도 오고 염색도 이제 그만하고 싶고 그래서 잘라야겠어요."

"맞죠? 저도 이제 미용 염색이 아니라 새치염색을 하니 그건 그렇더라고요. 저도 머리카락이 그냥 뚝뚝 끊어지고 그래요."

싹뚝 싹뚝 칙칙 챡챡챡챡


"다 됐습니다. 근데 진짜 파마 너무 잘 나오네요. 머리가 탱글탱글 동그래요."

"저 파마 한번 하면 5년은 머리 안 해요. 잘 안 풀려서요. 흐흐흐"

"아니, 머리를 잘라놓으니 머리숱 너무 많으시네. 아까 말한 대로 층 좀 낼까요?"

"네. 조금 숱을 죽여야겠어요." 착 착 착 착. 이미 짧은데 더 짧아진다. 아…. 내 머리카락.

"눈썹 손질도 좀 해 드릴까요?"

"아니요^^" (아니 눈썹까지? 시골인심인가 요즘 대세인가? 하여튼 내 자연산 눈썹은 건드리지 마셈. 내 얼굴에서 볼 건 눈썹뿐입니다. ㅋ)


이미 머리는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알고 있다. <패완몸>이라고 패션에서는 억지로 말 할수 있지만 <리의성은>인건 만고의 진리란 거. 얼굴이 이미 안 어울리는데 제아무리 비달사순이 재주를 부린 머리모양인들 무슨 소용? 쌀떡처럼 둥글넙적하니 머리를 하면 참 민망하게도 얼굴만 두드러지게 뜬다. 얼른 계산하고 집으로 간다. 나는 항상 이 시간이 부끄럽다. 뽀글해진 머리로 집으로 가는 이 길이.

네이버에서 퍼 온 사진*(DK헤어디자인 출신 머리모양)

네이버에서 퍼 온 사진(박승철헤어스튜디오 디자인)

살롱드잇 남자 단발 모양(네이버 퍼 옴)


집에 와서 서둘러 거울을 본다. 처음 해보는 턱을 넘지 않는 단발머리. 튼튼한 성처럼 네모난 내 턱을 강조하는 단발일지 걱정했는데 생각보단 어울린다. 약간 휘청휘청한 몸매에 머리까지 좀 짧아지니 요즘 남자아이들이 하는 긴 파마처럼 청년미(?)도 있고. 가르마를 이쪽저쪽 넘기며 각도를 달리해본다.

이상하게 마음에 든다.


이 미용실만의 매력이다. 머리를 했으니, 대부분의 미용실 손님이 느끼듯 마음에 들지 않아 기분이 나쁘다. 그런데 기분이 나쁘지 않다. 가방은 받았는데 뇌물이 아니라는 말처럼 좀 이상은 하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이 미용실은 매번 이런 기분이다.

컷에 파마에 샴푸까지 다 했는데 4만 원. 다 한 머리에서 인상 한 번, 계산할 때 미소 만발.


아! 이 미용실 머리 잘하네!!!


이것은 미용사가 만든 머리모양

내가 보여준 모양들

결국은 미용사 의지대로.. 의외의 효과로 결과가 나쁘지 않은건 가격이 마음에 쏙 들어서 일 뿐인가??(백여개의 사진은 핀터레스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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