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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사임당 Feb 1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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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어져라

하느님 부처님 거기 계신 어느 신이시든 들리시면 소원 좀 들어주세요."

"소원이 무엇이냐?"

"엄마야. 아이고 신이시여~깜짝이야. 그러니까 그 뭐냐. 어? 어휴~ 신이시니 아시면서. 뻔하잖아요."

"나는 모른다."

'뭐야. 신인데...'

"다 들린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그러니까닙쇼. 얼굴은 차은우 아니 어 '엘리자베스 테일러'에 몸매는 '미란다 커' 국산으로 해야 하면 모델 장윤주처럼 해 주시고 뇌가 섹쉬 그러니까 아이큐가 지금(100에 하아안참 모자라니)보다 50은 더 높으면 좋겠고 그래서 무슨 책을 보면 이해가 좀 되게 해 주시고 돈 버는 능력을 주십시.. 주시면 좋겠습니다"

"알았다."

"예? 해 주신다고요?"

"네 소원을 알았다고 했지, 들어준다고는 안 했다."

'뭐야.. 신이 뭐 저렇노'

"다 들린다."

"끄응.."깨갱


접수 기회마저 사라질까 진지하다. 휴, 접수 완료. 두 손이 젓가락 두 짝처럼 똑같은지 맞혀보듯 어긋남 없이 붙인 손을 뗀다. 오늘의 신께서는 내가 빈 희망 사항을 취사하여서라도 좀 들어주시려나..

달님을 보다, 산책처럼 나선 어느 절 대웅전에서도, 지나가다 주운 백 원 동전에마저 뜬금없이 소원을 쏜다. 갑자기 로또가 사고 싶다. 어쩐다고 요즘 소원은 로또로 공식이 정해져 버렸는지 모르지만 좀 반사적이다.


어릴 때 좋아한 만화영화(?) 시리즈가 있다. 문종이를 붙인 격자무늬 연약한 문 하나만 지나면 부모님이 계셨지만, 나는 부모님의 부재로 자라난 아이답게 모든 시간은 내 것이었으므로 눈을 뜨며 TV를 켠다.(구멍가게 막내딸) 내 눈은 티브이를 통해 보이는 세상을 향해 켜진다. 내가 봐주길 기다리는 세계, 그 속에 든 모든 만화는 내 손아귀에 있다. 그곳에서 본 사회를 통해 내 사고와 정체성과 많은 선입견은 체계를 잡는다.

셀 수도 없는 많은 시간과 각각 다른 애정을 들인 나만의 우주에서도 손에 꼽힐 만큼 소중한 만화는 '모래의 요정 바람돌이'였다. 갓모자(삿갓)처럼 생긴 파란 모자를 쓰고 김삿갓이 비 올 때 입는 도롱이를 걸친 것 같은 몸 색이던(노란색인데 우리 집 티브이가 바랬는지 내 기억이 바랬는지...). 요즘으로 치면 포켓몬 같은 존재. 포켓에 안 들어가는 루이바오 후이바오처럼 생긴 '바람돌이' 포켓몬.


조건은 간단하다. 소원은 하루에 한 가지만. 바람돌이가 아이들에게 주는 선물이다. ("카피카피룸룸 카피카피룸룸 이루어져라~"노래 부를 때 아니다. 넣어둬라.)


"그만 먹어. 먹었으면 양치해야지. 학교 안 가니? 어휴. 너는 커서 뭐가 될래? 야!"

출레 출레 바람돌이를 찾아온 친구들. 엄마에게 혼이 나 '뭐가 그리 다운돼 있어. 아무 소원이나 켜'를 위해서라기 보다 버릇처럼. 발걸음 무겁게 온 참이다.


"바람돌이야, 오늘은 잔소리 그만 듣고 싶어. 어른이 될래."

갑자기 바람돌이가 집 울타리처럼 쌓아놓은 폐타이어 속에서 하나를 가져와 꿀꺽 삼킨다. 몸이 붕 뜨더니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신령스러운 360도 '바리시니코프 턴'을 무한 반복하고 그러더니 뽕~! 장면이 변한다.

"이야~! 나 어른이 되었어!!"

지금 유행하는 어른이(어린이 정신에 몸은 어른)로 살아본다. 왕권신수설을 믿은 태양왕 루이 14세만큼 거칠 것 없는 발걸음으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한다. 하고 싶은 것 하고 하기 싫은 건 하지 않을 권리. 누구의 지시 없이 자유의지로 무엇이든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예상과 달리 빠르게 깨어진다. 고작 하루 어른으로 사는데도 무슨 책임은 그리 크해야 할 일은 생각보다 왜 그리 넘치는지. 마음대로 코를 파기도 힘들고 엄마에게 배고프니 간식 달라 떼도 수가 없다. "어른, 거! 쉬운 거 아니네" 말투는 제법 어른 같아진 친구들은 씁쓸한 기분이다. 이별에 눈이 붉어지듯 노을 지며 사라지는 해와 함께 소원은 사라진다. 작아진 몸으로 행복해하며 집으로 간다. 작아진 책임만큼 가벼워진 걸음의 어린이가 되어. 다시 익숙한 내가 되니 행복해진다.


소원이 있었는데. 나도 바람돌이 같은 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옆을 흘끔거린다. 혹시나 바람돌이가 있을까 봐. 바람돌이가 다른 곳으로 놀러 가기 전에 얼른 내가 먼저 소원을 말할 준비가 되어 있는데.. 부족함은 넘치고 나는 내가 보이지 않는다. 이것도 좀 주면 좋겠고 저것마저 주면 더 좋겠는데. '어디 그런 거 줄 사람. 그런 존재 없소? 그러다 친구에게 털레털레 걸어간다. "친구야~" 불렀는데 변함없는 투덜이, 나라는 존재를 진작에 눈치챘는지 벌써 내게 '바람돌이 하루치 소원 같은' 말을 해 놓았다. 급하면 먼저 가세요 (brunch.co.kr) " 재미있으니 계속하세요"새로님의 응원이다.


나는 안다. 내게 권력이 있다면 누구보다 군림하려 들거고 내게 미모가 있다면 과시하기 바쁘리란 걸.


바람돌이에게 온 오늘의 불편러. 눈 깜빡해 보니 티브이 속 눈을 박고 있던 나는 어른으로 변신 완료 상태다. 매일매일 무슨 불편이 그리 큰지 소원은 빌어보지만, 생각보다 그것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만 깨닫게 되는 소원.


그래 나는 잘 나기가 싫다. 잘 났다고 뻐기고 교만에 빠질 내가 무섭다.

다행이다. 내가 나라서. 이렇게 별 볼일 없고 그래서 재미있게 살 수 있는 보통보다 조금 못한 내가 참, 슬프도록 좋다. 똑똑하지도 내가 원하는 아름다운 외모도 아니지만 어쩔 거야. 이게 나인걸. 수다처럼 글 쓸 수 있고 가끔은 내가 봐도 재미있어서 친구도 재미있게 읽어주는 글을 적을 곳이 있는데. 이렇게 친구도 생겼는데.


'친구가 갖고 싶다'던 내 소원은 하나 이루어지기도 한 것 아닌가 이 말이다 내 말이...

모과차 뚜껑이 차받침으로 딱 맞네. 즐거운 행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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