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맞담배

할머니의 장례식에서

by 명건

대학 시절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하필 그쯤에 나와 아빠의 관계가 몹시 좋지 않았다. 아빠의 거듭된 사업 실패와 투자 실패로 가세가 점점 기울었고, 급기야 살던 아파트를 처분하고 도망치듯 허름한 빌라로 이사를 가야만 했다.


계속된 사업 실패는 다정했던 아빠의 성격을 조금씩 삐딱하게 만들었다. ‘미안해' 이 한마디가 겸연쩍어 대신 그는 화를 내고, 문제 자체를 외면하고 매일 잠만 잤다. 그쯤에 우리는 눈만 마주치면 싸웠다. 아들은 집안의 경제를 파탄낸 아빠가 미웠고, 아빠는 가족을 위해서였다는 본심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들에게 서운했다.


한 집에 살면서도 서로를 모르는 사람처럼 대했다. 그가 계단을 올라 현관문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리면 거실에 있다가도 방으로 들어가 굳게 문을 잠갔고, 그가 나가고 나서야 움직였다. 엄지발가락에 가시가 박힌 것 같은 불편한 동거는 반 년 넘게 지속됐다. 감정에도 적응력이 있다. 그렇게 미워하는 마음에 익숙해진 어느 날 그가 내 방 문을 열었다.


“할머니 돌아가셨다. “ 육 개월 만에 우리가 나눈 첫 대화였다.


3남 3녀. 그녀의 슬하에는 자식이 많았다. 덕분에 장례식장은 많은 조문객들로 인산인해였다. 늦은 밤이 돼서야 한산해졌고, 아빠와 형제들은 그제야 담소를 나눌 수 있었다. 왁자지껄하고 화기애애했다. 그들은 잠깐 동안 돌아가신 할머니와 추억을 얘기하고는 금방 서로의 근황에 대해 묻고 답했다. 할머니는 오래 아프셨고, 아흔 가까운 나이에 돌아가셨다. 오래 마음의 준비를 했기에 할머니와의 이별이 지나치게 슬프거나 황망하게 느껴지지 않는 듯했다.


늦은 새벽에야 자리가 파했고, 우리는 대기실에서 잠들었다. 침대는커녕 베개도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선잠을 자다가 허리가 배겨 할머니의 영정사진이 있는 거실로 나갔더니 아빠가 홀로 술에 잔뜩 취해 벽에 기대 잠을 자고 있었다. 그는 주량이 약해 소주 한 잔이면 얼굴에 벌게지는데 얼굴이 시뻘건 걸 보니 꽤 많이 마신 듯 했다. 오랜만에 마주한 아빠의 얼굴이 많이 수척해져 있었다. 문득 가슴 한 켠이 뭉클했다. 그러나 금세 미움이 불쑥 올라와 그를 스쳐 지나갔다.


옥상으로 올라가 담배를 피웠다. 매서운 바람이 부는 추운 겨울이었다. 고즈넉한 새벽, 입김과 더해져 담배 연기가 풍성하게 뿜어져 나왔다. 담배를 끄고 뒤를 돌아보니 아빠가 이쪽을 쳐다보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흠칫했지만 못 본 체 지나치려 했는데 그가 말을 걸었다.


“담배 피우냐?”

“뭔 상관인데”

“끊어라. 좋지도 않은 거”


그는 대화를 이어나가고 싶은 듯 했지만 나는 아니었다. 이미 미워하는 마음에 익숙해져 버려, 갑자기 친근하게 다가오는 그가 불편했다. 아빠나 끊어. 이 말을 삼키고 먼저 내려갔다.



둘째 날에는 염습과 입관식이 있었다. 의식이 없는 차가운 할머니의 육신이 내 눈앞에 있었다. 생전 할머니는 정이 많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그 착한 성격에 화 한 번 제대로 내지 못해 가슴속에 쌓인 것이 많아 노년에 결국 치매 때문에 오래 고생하셨다. 그녀가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을 적에 돌아가시기 전에 자주 좀 찾아뵈라는 아빠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방문해 봐야 알아보지도 못하는데 뭐하러 가냐는 매정한 말로 쏘아붙이고 몇 번 찾아뵙지도 않았으면서 나는 뭐가 그리 서러웠는지 심장이 뻐근할 때까지 오열했다. 무뚝뚝한 친척 어른들도 차가운 할머니의 손을 잡고 저마다 마지막 인사를 하면서 눈물을 쏟았다. 거기서 유일하게 울지 않은 사람이 있었는데 그건 아빠였다.


그는 평정심을 유지하며 할머니의 차가운 손을 잡고 덤덤하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그런 아빠의 인간미 없는 모습에 실망하면서도 어쩐지 감탄스러운 감정마저 들었다. 그는 낡은 빌라로 도망치듯 떠났을 때도, 그의 친한 친구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도 한 번도 울지 않았다. 한 번도 아빠의 눈물을 본 적이 없었다. 참 그 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 날 화장터로 가기 위해 새벽 일찍 출발하려는데 지금이 아니면 종일 담배를 피울 수 없을 것 같은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화장실 간다고 거짓말하고 비상계단을 통해 옥상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가 이미 그곳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잠깐 고민했지만 맞담배를 피우는 것은 그에게 달가운 상황이 아니면서 동시에 내 도덕적 기준에도 벗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그대로 몸을 돌려 밑으로 내려가려는데 그가 이쪽을 바라봐 눈이 마주쳤다.


“엄마가 빨리 내려 오래”

“아침은 먹었냐?"

"새벽 네 시에 무슨 아침이야.”


나는 도망치듯 먼저 내려갔다.



입관식은 정면이 통유리로 되어 있고 세 벽은 막혀 있는 작은 방에서 진행됐다. 유리 창 너머에는 할머니의 관이 있었다. 잠시 후 창 너머로 직원이 나타나 꾸벅 인사를 하고 사라지자 컨베이어 벨트가 기계음을 내며 움직였다. 관이 뜨거운 불더미를 향했다. 동시에 천장에서 벽이 천천히 내려오며 통창을 서서히 가렸다. 시꺼먼 벽이 창문을 가리며 방은 점점 어두워졌다.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울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울음이 누군가의 마음을 툭 찔러 눈물을 터트렸고, 그 날카로운 울음이 또 누군가의 마음을 툭 찔러 눈물을 터뜨렸다. 모두가 울었다. 허망한 표정으로 그저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는 고민수를 제외하고. 갈색 코듀로이 재킷을 입은 고민수가 가슴에서 이미 터져버린 울음이 눈 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게 버티고 있었다. 고개를 천장으로 들어 새어 나오는 눈물이 다시 역류하기를 기다리면서.


격식 있는 장소에 갈 일이 드문 그에게는 포멀한 옷이 단 한 벌, 이십 년이 넘은 갈색 코듀로이 자켓 뿐이다. 그의 옷장을 열어보면 망한 브랜드에서 창고 정리할때 산 싸구려 체육복만 가득하다. 그래서 그는 경조사가 있으면 매번 선택권 없이 그 옷을 입는다. 얼마 전 우연히 이모 결혼식 사진을 보고 경악했다. 그 재킷을 입고 있는 고민수 옆에 그의 손등까지 키의 내가 심술 난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십년 전 사진 속 그는 제법 풍채가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 우리 동네 천하장사였다. 유치원 체육대회 때 학부모 씨름대회를 했는데, 아빠와 겨루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바닥에 꽂혔고, 나는 우승 상품으로 연필깎이를 받았다. 모두의 박수 갈채를 받는 의기양양한 뒷모습이 자랑스러웠다.


그랬던 그의 등이 그때는 왜 그렇게 작게 보였는지, 둥글게 말린 어깨가 어쩜 그렇게 안쓰러워 보였는지 그의 날갯죽지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갑자기 그가 울었다. 벽은 점점 내려오고 있었고, 할머니의 관이 조금씩 불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찰나였다. 그는 짧고 강렬하게, 마치 토해내듯. 마치 짐승이 울부짖는 것처럼 강렬하게 울었다. 벽이 완전히 닫히고, 빛 한 점 없는 어둠 속에서 잠시 동안 아빠는 그렇게 울음을 토해냈다.


다른 친척 어른들의 울음에 아빠가 우는 소리도 자연스럽게 묻혔다. 나는 울지 않았다. 어쩐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아 꾹 참았다.


이내 닫힌 벽이 천천히 올라가면서 조금씩 빛이 새어 들어오자 그는 재빨리 눈물을 훔치고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가장 먼저 문을 열고 나갔다.


밖으로 나가자 눈이 내리고 있었다. 아빠와 형제들은 앞서 걸으며 시답지 않은 정치 얘기를 하고 있었다. 방금 어머니를 화장한 사람이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저 멀리 아빠가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터를 찾는데 안 보이는 눈치였다. 아빠 형제들도 주머니를 뒤졌지만 미처 챙기지 못한 듯 보였다. 나는 성큼 다가가 라이터를 통째로 건넸다.


어른들이 명건이 담배 피우느냐고 핀잔을 줬지만,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아빠는 잠깐 당황했지만, 이내 담배를 연거푸 피우며 형제들과 정치 얘기를 계속했다. 눈이 점점 더 세게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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