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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Jul 18. 2022

'말'은 잘하는데, '대화'는 못하는 사람


당신이 생각하는 '말을 잘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내 기준에서 말을 잘하는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상대방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지금까지 대화를 나눠본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이 부류에 속한 사람들의 수는 의외로 아주 적었다. 그렇다면 내가 왜 이런 생각을 갖게 되었는지에 대해 지금부터 얘기해보려고 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설명하는 게 어려운 이유



당신 앞엔 사과가 하나 놓여 있다. 당신이 보고 있는 사과를 다른 사람에게 설명한다면, 어떻게 말하겠는가? "빨갛게 잘 익은 사과가 있다. 성인 주먹만 한 크기의 이 사과는, 만져보면 물렁하지 않고 딱딱한 느낌이 든다. 겉엔 벌레 먹은 자국이 조금 있지만 대체로 상처 난 곳 없이 매끈하게 보인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처럼 말할 것이다.



그러면 이번엔 조금 다른 질문을 해보자. 당신은 몇 년 전 떠난 유럽여행에서, 파리의 에펠탑을 본 적이 있다. 만약 이 사실을 알고 있는 누군가가 당신에게 "에펠탑을 처음 봤을 때 어떤 기분이었어요?"라고 묻는다면, 당신은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아마 앞서 사과를 설명할 때보다 훨씬 더 뜸을 들이거나,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눈에 보이는 사물을 표현하는 것보다, 과거의 경험이나 느꼈던 감정 등을 타인에게 설명하는 게 훨씬 어렵다. 추상적인 무언가를 언어로 옮기기 위해선, 그것에 걸맞은 표현을 많이 알아야 한다. 또한 듣는 대상이 누구인지에 따라 똑같은 표현이라도 좀 더 쉬운 표현을 써야 할 때도 있다. 즉, 자신이 알고 있는 표현이 다양할수록 똑같은 경험이라도 좀 더 다채롭고 떠올리기 쉽게 전달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구사할 수 있는 단어나 표현을 많이 안다고 해서, 꼭 설명을 잘한다고 단정 짓긴 힘들다. 특히 보이지 않는 것을 설명하는 경우엔 더욱 그렇다. 왜냐고? 그 당시 자신이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모르는 경우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말을 잘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



살다 보면 생전 처음 겪어보는 일에 부딪히기도 한다. 처음 시작한 연애, 첫 회사생활, 첫 해외여행. 아무리 철저하게 준비를 하더라도, '처음'이기에 실수를 저지르거나 좋지 않은 일을 겪기도 한다.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좋은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원초적인 감정을 가장 먼저 느낀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 나오는 즐거움, 슬픔, 분노와 같은 감정들 말이다.



순간적으로 느끼는 감정은 우리의 몸을 지배하며, 그것은 행동으로 드러난다. 즐거워서 웃음이 절로 나오거나, 너무나 슬퍼 눈물을 펑펑 쏟기도 하며, 분노에 못 이겨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나고 나면 이런 감정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사라지고 만다.



여기서부터 '말을 잘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생긴다. 말을 잘하는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 감정이 사그라들었을 때, 자신이 '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그 상황에서 내가 느꼈던 감정에 대해, 그럴만한 타당한 이유가 있었는지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화를 냈다면 정말 화를 낼만한 상황이었는지, 슬펐다면 그 상황이 왜 슬프게 느껴졌는지에 대해 말이다. 더 나아가 자신에게 특정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말이나 상황을 인지하면서 살아간다.


 

'감정 되돌아보기' 3단계



부정적인 감정을 컨트롤한다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단지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난 화내지 않았어'라고 생각하는 건 자신만의 생각일 수도 있다. 내가 예전에 알던 한 사람은, 화가 나면 온 몸으로 자신이 화가 났음을 드러냈다. 무표정한 얼굴, 딱딱한 말투, 평소보다 거친 걸음걸이. 누가 봐도 화가 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 사람은 자신이 감정을 상당히 잘 제어한다는 식으로 내게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그럴 거면 차라리 화를 내는 게 낫겠군.'



자신이 느꼈던 감정에 대해 생각하기 전, 가장 선행되는 건 '감정의 조절'이다. 화를 '참는다'와 '다른 방식으로 푸는 것'은 다르다. 부정적인 감정을 꾹 누르는 것이 아닌, 자신만의 방식으로 어느 정도 누그러뜨릴 줄 알아야 한다. 크게 심호흡을 하거나, 잠깐 자리에서 벗어나거나, 좋아하는 간식을 먹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 자신의 감정조차 다스릴 수 없는 사람은, 감정을 되돌아볼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시간이 지나 격해진 감정이 어느 정도 줄어들게 되면, 다음이 '상황의 복기' 단계이다. 좀 전에 있었던 상황에서 자신이 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이 단계가 익숙해질수록, 스스로에 대한 객관화가 가능해지며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 또한 수월해진다. 정말 자신의 잘못은 없었는지, 상대방이 어떤 이유로 내게 그런 말과 행동을 했는지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는 것이다.



상황의 복기가 끝나면, 감정을 느낀 이유가 명확해짐을 알 수 있다. 자신이 예민했던 것인지, 아니면 상대방이 무례하게 군 것인지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이 가능해진다. 이제 마지막으로 해야 할 것은 '정리 및 대비'이다. 복기를 통해 자신이 어떤 사람이며, 어떤 말과 행동을 싫어하는지 정리해보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자신이 싫어하는 상황을 예측하고 피하는 것이 어느 정도 가능해진다.  



나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과 같은 자기 합리화를 매우 싫어한다. 그래서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특정한 포인트들을 정해놓고 상대가 얼마나 자기 합리화를 자주, 많이 하는지를 관찰한다. 시간을 두고 꾸준히 관찰한 결과 상대가 자기 합리화를 많이 한다고 판단되면, 그 사람과 거리를 두는 편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내가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 자체를 아예 봉쇄하거나, 최대한 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말을 잘하는 것'과 '대화를 잘하는 것'의 차이



'말을 잘한다'는 건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을 설명하는 것뿐만이 아닌, '추상적인 것'들도 남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한다는 것이다. '추상적인 것'을 잘 설명하기 위해선 '자신의 감정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한다. 즉, '말을 잘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보다 많이 갖는 사람들인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되돌아보라는 건, 자신의 감정만을 우선시하라는 말이 아니다. 내 입장과 상대방의 입장을 모두 고려해서 전체적인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사실 어느 정도의 자기 합리화는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이 과정에 익숙해지면 '내가 당연히 화낼 수밖에 없지'가 아니라 '나도 화났지만 상대방도 내게 화낼만했군'이라는 인식을 할 수 있게 된다. 내 감정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감정 또한 소중하게 생각할 줄 아는 것. 이런 생각은 말을 잘하는 것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말을 잘한다고 한들, 들어줄 사람이 없다면 그건 무용지물이다. 결국 말이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나와 상대방의 커뮤니케이션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 말이 논리적으로 옳으니 너도 이렇게 해야 돼'라고 상대에게 말해봤자 전혀 쓸모없는 것이다. 세상에 어느 누가 자신이 틀렸다는 걸 매번 순순히 인정하겠는가? 어느 정도의 논리는 있어야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상대방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는 걸 인정하는 태도이다. 즉, '내 말은 맞고 네 말은 틀렸어'가 아니라 '내 말도 일리가 있고, 네 말도 일리가 있지만 지금 상황에선 이렇게 하는 게 우리 모두에게 좋을 것 같아'가 상대방이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말을 잘하는 것'과 '대화를 잘하는 것'은 다르다. 아무리 옳고 효율적인 의견도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투로 말을 한다면, 사람들은 그 사람과 말을 섞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기억하라. 눈에 보이는 것이 모든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때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더욱 중요할 때도 있다. 당신이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닌, 대화를 잘하는 사람이 되길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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