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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Jul 23. 2022

남을 '가르치려 드는' 사람들, 왜 그럴까?


대화를 하다 보면 유난히 상대방을 가르치려 드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웬만하면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거르려고 하는 편이다. 왜냐고? 이런 사람들과 같이 대화를 하고 나면 찝찝한 기분이 드는 데다, 시간이 갈수록 자신감과 자존감이 자꾸만 떨어지기 때문이다. 오늘 글에선 '남을 가르치려 드는 사람'들이 가진 특징들과,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에 대해 말해보려고 한다.






그들이 가진 매력 - 풍부한 경험


남을 가르치려 드는 사람들은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중 하나가 "풍부한 경험"이다. 생각해보라.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가르치기 위해선, 자신 또한 그 분야에 대한 경험이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평소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편이며,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자본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



호기심을 갖고 이것저것 도전해 본 경험들이 워낙 풍부하다 보니, 그들의 첫인상은 꽤 좋은 편이다. 어떤 주제로든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새로운 것에 도전한 경험이 많다 보니 처음 본 사람과도 빠른 시간 내에 친해질 수 있는 사교성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다방면에 걸쳐 있는 지식, 높은 친화력. 그들은 이러한 3가지 특징 덕분에 어떤 자리에서든 눈에 잘 띄는 편이고, '저 사람과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똑같은 경험, 하지만 일방적인 주장



하지만 그들과 친해지면 친해질수록, 한 가지에 대해 깊게 얘기를 할수록, 대화를 나누는 당신의 머릿속엔 물음표가 들 때가 많아진다. 왜냐하면 그들은 일반적인 사람과는 다른 화법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것과 관련된 한 가지 예시를 살펴보자.



당신은 초면인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여행'과 관련된 얘기를 하다가, 당신은 몇 년 전 해외에 있는 어떤 지역에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상대는 깜짝 놀라더니, 자신도 그곳을 다녀온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서로 깜짝 놀란 당신과 그는, 그때를 떠올리며 각자 그곳에서 경험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당신은 우연히 들어간 식당에서 주문했던 메뉴 한 가지를 말하며, "아직도 그 맛을 잊을 수가 없어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상대방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저도 거기서 그 메뉴 먹어봤는데, 전 별로던데?" 당신은 속으로 조금 당황했지만, '뭐, 취향이 다를 수도 있지'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이후 상대는 그 지역에서만 열리는 유명한 축제를 언급하며, 자신은 그 축제를 구경하기 위해 그곳에 갔었고 만족스러웠다는 말을 했다. 당신은 속으로 '나도 그거 봤었는데. 그렇지만 난 좀 별로였어'라는 생각을 떠올린다. 하지만 상대가 워낙 그때 경험을 말하며 신나 보였기 때문에, 당신은 굳이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대신 상대의 장단을 맞춰주기 위해, 자신도 그 축제에서 있었던 경험을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상대는 웃더니 "전 그 축제에서 제일 재미없었던 게 그거였는데! 근데 뭐,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니까요."라고 말한다. 대화가 계속될수록, 당신은 점점 상대와 대화를 이어나가는 게 버거워짐을 느낀다.



상대방을 가르치려 드는 사람들은 자신이 '재미있다', '괜찮다'라고 느끼는 포인트가 매우 명확한 편이다. 그래서 자신과 같은 경험을 했던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면, 자신이 재밌게 느꼈던 것들 외엔 '별로'라는 식으로 대답을 한다. 그들이 간과한 사실은, 자신의 말이나 행동이 상대에겐 어떤 느낌을 주는지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똑같은 경험일지라도 사람에 따라 받아들이는 건 다르다. 누군가에겐 즐거움을 선사한 경험이, 다른 사람에겐 최악이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상대방이 겪은 경험을,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해 '이렇다, 저렇다' 판단하듯 말하는 건 실례가 될 수 있다. "솔직함과 무례함은 다르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자신의 기준이 명확하다고 해서, 그것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절대적인 잣대가 될 순 없는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그들과 대화를 오랫동안 하다 보면 용할 수 없는 불편함이 느껴진다. 마치 그 사람의 경험은 매우 특별하고 값진 반면, 내 경험은 별 가치도 없고 쓸데없는 데 돈과 시간을 써버린 기분을 느끼게 만들기 때문이다.






내로남불의 끝판왕


앞서 얘기한 점도 내가 그들을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내가 그들을 멀리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가진 '내로남불'의 태도 때문이다. 내로남불.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줄임말로, 자기 합리화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단어이다. 나는 내로남불을 정말 싫어하는데, 남을 가르치려 하는 사람들은 이 '내로남불'을 밥 먹듯이 하곤 한다.



전에 말했던 것처럼, 그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과 경험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강하다. 그래서 누군가 그것에 대해 아니라는 식으로 말하거나, 자신의 경험이 별로라고 말하면 아주 민감하게 반응한다. 재미있는 건, 그들은 상대방이 자신의 민감한 부분을 건드렸을 때 대부분 비슷한 반응을 보이곤 했다. "네가 뭘 몰라서 그러는데"라는 뉘앙스로 시작해, 상대방의 생각이 '틀렸다는 걸' 입증하기 위한 일장연설을 시작한다. 그들의 말을 쭉 들어보면 자신의 주장을 그럴싸하게 포장해서 말하지만, 숨겨진 의미는 결국 하나다. "내가 그렇게 믿고 있으니까 그게 맞아."



그러나 그들은 자신 또한 싫어하는 행동을, 자신이 남들에게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만약 상대가 그들의 말에 반박하거나 기분이 나쁘다는 말을 하면, 그들은 이렇게 말하곤 한다.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마"라던가, "나는 그럴 의도로 말한 게 아니야"라며 여전히 상대방에게 문제가 있다는 투로 설득하려 한다. 즉 그들은 모든 면에서 자신의 잘못을 배제한 채 행동한다. 자신이 기분 나쁜 건 상대방의 무례함으로, 상대방이 기분 나쁜 건 상대가 예민하거나 잘못된 의도로 받아들였다는 식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인다.






불필요한 공감, 당황한 태도는 X

  

남을 가르치려 드는 사람들을 대할 땐 무조건적인 공감은 피해야 한다. 남들 가르치는 걸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까지 공감하고 맞장구쳐주는 건 '더 가르쳐주세요'라고 하는 것과 똑같다. 당신이 그런 행동들을 반복할수록 그들은 당신에게 더욱더 가르치려 들 것이고, '내로남불'의 행동을 더 많이 보일 것이다.



그들의 말이나 행동에 대해 화를 내거나 짜증 내는 등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것도 금물이다. 생각해보라. 학생이 선생님에게 화를 내면, 선생님은 어떻게 행동할까? 제자가 화를 낸다고 똑같이 화를 내는 건 선생님이 아니다. 제자의 철없는 행동을 알려주고 바로잡으려는 게 선생님의 입장이다. 그들도 그렇다. 그들이 평소 '자신의 잘못은 없다'란 신념 아래 행동한다는 것을 잊지 마라. 당신이 화를 내면 낼수록, 그들은 당신은 '철없는 제자'를 대하는 것처럼 당신을 대할 것이다. 당신이 얼마나 생각이 짧은지, 왜 당신이 자신에게 화를 내면 안 되는지 차근차근 알려줄 뿐이다. 당신이 화를 낸 건 그들의 잘못된 태도 때문인데도, 결국엔 당신이 그들에게 사과하게 되는 웃지 못한 결과가 나타나게 될 수도 있다.  



되물어보기


그렇다면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대할 땐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간단하다. 그들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되물어보면 된다. 그들이 말하는 주장의 근거 대부분은, '내 생각이 옳다'라는 데서 온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에 대해 되묻기만 해도, 그들은 말을 버벅거리거나 황급히 대화 주제를 돌려버린다.



그들은 객관적인 사실이 뒷받침되지 않은 채 말을 한다. 그래서 그들의 말이 끝났을 때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어?"라고 묻거나, 의문이 들었던 부분에 대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설명해달라고만 해도 효과는 굉장하다. 몇 분 전 자신이 했던 말을 스스로 뒤집어버리기도 하고, 말을 하다가 갑자기 멈추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땐 대답을 재촉할 필요도 없다. 그저 그들의 대답을 기다리며 차분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당황하거나 쩔쩔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당신이 지금까지 다른 사람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려보라. 당신은 정말 '남을 가르치려 드는 사람'이 아니라고 자신할 수 있는가? 지나친 자기 확신과 믿음은, 오히려 자신을 고립되게 만드는 지름길이다. 타인의 생각과 내 생각이 다르더라도 그것을 인정해주는 게 좋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문제는, 그것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 생각보다 별로 없다는 것이다.



적당한 '자기 의심'은 스스로를 긴장하도록 만든다. 이러한 긴장감은 자기 객관화에 도움이 된다. 꾸준히 자기 객관화를 할 줄 아는 사람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잘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선 인정해주되, 현재 자신의 인간관계나 일적인 부분을 돌아봤을 때 문제가 많이 일어나고 있다면 한 번쯤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내 주변에 유독 이상한 사람들이 많은 게 아니라, 사실은 내가 '이상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 모두 남부터 가르치려 드는 것이 아닌, 자기 자신부터 가다듬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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