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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Apr 05. 2022

나는 '눈치 보는 사람'이 좋다


아마 제목을 보고 이게 무슨 소린지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눈치 보는 게 좋다고? 이 사람 꼰대인가? 어떻게 생각하든 자유이다. 다만 당신이 이 글을 끝까지 읽고 나면, '눈치 보는 사람'에 대한 당신만의 정의가 조금은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 지금부터 내가 이런 생각을 한 이유에 대해 하나씩 풀어보고자 한다.







먼저 눈치 보는 사람이 좋다고 말한 건지 이유를 밝히기 전 왜 '눈치 보는 사람'들이 생겨나는지와 유독 한국 사회에서 눈치 보는 사람들이 많은지에 대해 짚고 넘어가 보자.



지금으로부터 몇십 년 전, 내가 초등학생일 때만 해도 한국 사회는 유교적인 분위기가 상당히 강했다. 자식이 부모에게 대든다는 것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사회적으로 보이지 않는 위계질서가 법에 앞서 사람들의 인식을 지배하고 있었다. 가정에서의 위계질서는 아이들이 나이를 한 두 살 먹어가면서 자연스럽게 학교로 양도되었다. 선생님은 단순히 교육을 가르치는 직업을 넘어서 또 다른 부모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때문에 학교에서는 '사랑의 매'가 어느 정도 허용되고 있었다. 선생님이 학생을 때리기라도 하면, 부모님들은 선생님이 너무 했다기보다는 '네가 맞을 만한 행동을 했으니까 선생님이 때리셨겠지'라는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자식에게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그러한 상황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하고, 학교에선 선생님을 부모님과 비슷한 지위로 인식했다. 그러면서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의 말을 별다른 비판 없이 그대로 수용했다. 가끔 아이들이 부모와 반대되는, 자신의 의견을 말할 때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그럴 때 '어린 네가 뭘 알겠냐'라는 식으로 말을 한다. 또래보다 용기 있는 아이들은 그런 경우에도 굽히지 않고 조금 더 생각을 말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 여전히 부모의 말이 이해되지 않지만, 알겠다고 대답하고 넘어가는 식이다.



나이를 점점 더 먹어가고 다양한 친구들과 어울리면 점차 자기만의 가치관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면서 예전보다 부모와의 마찰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한다. 아이의 입장에선 예전엔 생각만 하던 것들을 전보다 솔직하게 말하기 시작하는 것인데, 부모의 입장에선 마냥 말 잘 듣던 내 자식이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말에 '토를 달기 시작한다'라고 느낀다. 부모와 자식 모두 이 시기에 혼란을 겪는다. 아이들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부모들은 전과 달라진 아이들의 모습에서 말이다.



이러한 혼란의 시기를 대화로 좋게 풀어가는 부모 자식도 존재한다. 하지만 주변에 있는 지인들이나 친구들과 얘기해보면, 나는 이 부류에 속하는 가족보다 그렇지 않은 가족들이 훨씬 더 많다고 느낀다. 그리고 이 시기를 기점으로 '눈치를 보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부모 자식 간 의견의 차이가 있을 때, 강압적인 태도를 가진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결국 부모에게 복종하게 된다. 왜냐하면 부모의 말을 따르지 않았을 때 가지게 되는 리스크가 엄청나게 크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속마음까지 복종하진 않는다. 겉으로는 알겠다고 하지만 속으로는 '그렇진 않는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성장하면서 겉모습과 속마음의 괴리감은 점점 더 커지게 된다. 성인이 되면 전보다 부모와 함께 있는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친구들과 어울리고, 연애를 하고, 회사에서 일을 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이 많아진다. 이 사람들과도 때로 의견 차이가 나기도 하는데, 이때 눈치를 보는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에 반박하는 사람들을 대할 때 본능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숨기는 행동을 한다. 이미 어렸을 때부터 거부당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고 좀 더 자기주장을 했을 때 생길 마찰이 두려워, 상대방의 말에 동조하거나 자신의 입장을 바꿔버리는 것이다. 상대방이 자신의 말을 잘 들어줄 사람이라고 판단하는 것과 별개로, 이미 몇십 년 동안 몸에 새겨진 습관을 바꾼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도 앞서 말한 과정을 거쳐 꽤 눈치를 많이 보는 사람의 삶을 살아왔다. 다른 사람에게 나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상대방과 나의 의견이 다른 상황에서 내 의견을 좀 더 말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그 자체가 부담이자 스트레스였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면 주로 말하기보단 듣는 입장이 편했다. 물론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건 지금도 흥미로운 일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내 주장을 펼치다 보면 상대방의 생각과 다른 경우가 발생하기 마련이고, 그렇게 되면 내가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걸 잘 알기에 그런 상황을 피하고자 좀 더 상대방의 말을 들으려 했었던 것 같다.








'눈치를 본다는 것'은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과 같다. 스스로 눈치를 많이 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과 반대되는 사람들을 보며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처럼 되기 위해 무던히 노력한 적도 있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예전에 비해 좀 더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나는 눈치 보는 사람이다. 달라진 점이 하나 있다면, 눈치 보는 사람들이 가진 놀라운 장점들을 파악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부터는 내가 어떻게 전보다 자기주장을 잘할 수 있게 되었는지와, 그 과정에서 발견한 눈치 보는 사람들이 가진 장점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성격을 바꾸기 위해 자기주장을 잘하는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그들이 가진 특징들을 분석해봤다. 자기주장을 잘하는 사람들은 매사에 자신감이 넘쳐나는 것처럼 보였고 그들의 의견을 남들에게 말하는 것에 대해 거리낌이 없었다. 그들이 표현하는 방법을 내가 느낀 대로 표현하자면, "아니면 말고"라는 식이었다. 자신의 의견에 확신은 있지만, 결과적으로 그 의견이 다수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더라도 크게 개의치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들의 행동을 보며 지금까지 나의 행동을 떠올려봤다. 그들과는 반대로, 나는 내 의견에 나조차도 확신이 없던 경우가 많았다. 내 의견이 반박당했을 때 마찰을 피하려고 하다 보니 생각이 너무 앞선 탓에 이미 주장을 할 때부터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었다. 또한 나의 주장보다 상대방의 주장을 다른 사람들이 인정하는 걸 보면 묘한 패배감이 들 때도 있었다. 의견을 내더라도 자신이 없고, 힘겹게 의견을 냈을 때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결과를 보며 기분이 좋지 않았으니 점점 말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던 것이다.



이런 결론에 다다르자 의식적으로 행동을 바꿔보기로 했다. 간결하게 말을 하고 말끝을 흐리지 않고 확실하게 마무리 짓는 연습을 했다. 의견이 받아들여지든 아니든, 의견 자체를 내는 것에 초점을 맞춰보았다. 의식적으로 생각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쉽진 않았다. 대화를 하다가 의견이 갈리는 상황이 벌어지면, 본능적으로 상대방의 말에 무의식적으로 공감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꾸준히 연습하고 계속해서 말을 하려고 노력한 끝에, 예전보다 내 생각을 말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성격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면서, 나는 자기주장을 잘하는 사람들의 단점도 함께 발견했다. 그들은 자신의 생각에 확신이 강했다. 따라서 말을 할 때도 자신감이 넘쳤지만, 동시에 그 자리에 있는 소수의 의견들은 자연스럽게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무시한다기보다 아예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한 태도였다. 또한 주장을 할 때 내 기준에서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센 표현들을 사용하기도 했다. 본인은 그런 표현들에 신경 쓰지 않겠지만, 듣는 사람의 입장에선 기분이 나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적으로 자기주장을 잘하는 사람들에겐 섬세함이, 눈치를 보는 사람들에겐 자신감이 부족했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나는 깊게 고민했다. 내가 가진 경청이라는 능력과 섬세함을 버리면서까지 자기주장을 잘해야만 할까? 그러고 싶진 않았다. 내가 갖은 노력 끝에 성격을 바꿔서 지금보다 자기주장을 잘한다고 한들, 타고나면서부터 자기주장을 잘하는 사람과 비교하면 분명 부족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럴 바엔 필요한 상황에서 할 말은 하되, 타고난 나의 장점을 유지하는 게 더욱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도달했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눈치를 많이 보는 사람이라면, 당신은 스스로에게 스트레스받을 때가 많을 것이다. '나는 왜 이렇게 눈치를 보지?'라고 자책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주변에 한 명씩 있는 할 말은 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나도 XX처럼 속에 있는 말들을 하고 싶다'라고 생각할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당신이다. 스트레스받을 정도로 그것이 고민이라면, 변할 필요성은 있다. 하지만 어떤 성격이든 장단점은 존재한다. 눈치 보는 성격 덕분에 당신은 타인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보다 섬세하게 타인의 감정을 살필 줄 아는 사람이다. 무작정 질러놓고 '아니면 말고'가 아니라, 꾹꾹 참다가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말만 할 줄 아는 사람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쓸데없이 자기주장만 일삼는 사람보다 할 말만 하는 눈치 보는 사람들을 나는 응원한다.



좋은 성격과 나쁜 성격을 가르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다. 하지만 타고난 자신의 기질과 잘 맞는 성격은 파악할 수 있다. 장점은 유지하고 단점처럼 보이는 부분은 상황에 따라 다르게 행동할 수만 있다면 당신은 더 이상 눈치 보면서 할 말 못 하는 사람이 아니라, 센스 있고 할 말만 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어렵다고 느껴지는가? 물론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할 만한 것이다. 누구나 할 수 있다면 그것은 가치 있는 것이 아니다. 나 또한 바뀐 것처럼 당신도 충분히 가능할 거라고 믿는다. 이 세상에 눈치 보는 사람들이 할 말 하는 세상을 바라며 이만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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