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사랑은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도 이러한 명제에 동의한다. 속으로만 누군가에 대해 열렬히 사랑한들, 그것을 누가 알아챌 수 있겠는가.
하지만 때로는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 반드시 표현하는 것만이 사랑의 전부는 아니라고. 오히려 '절제된 사랑'이 나 또는 상대에게 더 큰 감동으로 느껴지는 순간도 꽤 많았다. 오늘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느껴지는 사랑들"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한창 육아 예능 프로그램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귀여운 아이들이 보여주는 순수한 말과 행동들을 보며 저절로 웃음이 지어지던 다양한 프로그램들 중, 내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한 가지 에피소드가 있었다.
이른 아침, 거실에서 한 아이가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었다. 때마침 막 잠에서 깬 아이의 아버지가 거실로 나와, 아이가 무엇을 하는지 지켜보았다. 아이는 부모와 함께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혼자 꺼내서 조립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어려웠는지 인상까지 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아이의 아버지는 미소를 지으며 혼자서 해보려고 하냐고 물었고, 아이는 "응!"이라는 짧은 대답과 합께, 이내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조립을 하기 위해 다시 집중했다. 아이의 아버지는 잠시 그 모습을 지긋이 쳐다보며 주방으로 가 물을 한 잔 마신 뒤,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아이의 아버지가 다시 나왔다. 여전히 아이는 조립에 용을 쓰고 있었다. 천천히 아이의 곁으로 다가간 아버지는 옆에 쪼그려 앉은 뒤 "잘 돼가?"라고 물었다. 아이는 여전히 양손에 장난감을 든 채 아버지를 바라보며, "아니, 잘 안돼."라며 울상을 지었다. 그런 아이가 귀여웠는지 아버지는 아까와 같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번 말했다. "아빠가 도와줄까?" 그러자 아이가 단호히 고개를 저으며 "아니, 내가 해볼래!"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여전히 미소를 띤 채 "그래. XX이가 해봐."라며 아이의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 주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하다가 힘들면 아빠한테 말해"라는 말을 남긴 뒤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TV를 보는 등 자신이 할 것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 뒤의 내용이 어땠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이가 혼자 힘으로 자신이 원하던 장난감 조립을 성공했을 수도, 결국은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감탄했던 건 결과가 아니라, 아이를 대하는 아버지의 태도였다. 그는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아이를 무시하지 않고, 아이가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존중해 주었다. 그와 동시에 다시 한번 아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관심을 가지며, 필요하면 자신이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아이에게 알려주었다.
우리는 흔히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 사람이 힘들거나 고통스러워할 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주고 싶어 한다. 그러한 능력이나 조건들이 자신에게 충분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와 같은 상황에서 흔쾌히 도움을 받으려 하진 않는다. 도움을 받을 땐 받지만, 다양한 이유로 상대의 도움을 거절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종종 자신의 손길을 거절당했을 때, 상대방에게 서운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도와주고 싶은 건, 당연한 본능이다. 그러나 당신은 그런 생각을 해본 적 있는가. 상대가 원치 않는 도움을 억지로 주는 것이 과연 사랑이라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나는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는다. 이 '기다림'은 다양한 상황에서 드러나는데, 요점은 "상대의 성향과 상황을 고려해 알맞은 타이밍에 챙겨주는 것"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이 사람에게 좋아하는 음식을 주면 당연히 기뻐할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언제 식사를 했는지, 바로 전에 무슨 음식을 먹는지에 대한 관심도 두지 않은 채 무작정 자신이 주고 싶은 것에만 집중한다면 어떨까? 방금 점심식사를 마친 상대에게 "네 생각나서 사 왔어"라고 잔뜩 음식을 주거나, 저녁에 먹었던 메뉴와 똑같은 음식을 다음날 아침에 주는 일들이 반복된다면, 그것을 과연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자신을 생각해 준다는 건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타이밍과 상대를 생각하지 않은 일방적인 배려는, 그것을 받는 상대방을 곤란함에 빠뜨리는 것과 같다. 고마움과 동시에 불편한, 참으로 어색한 기분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모든 상황에서 아주 적절한 배려를 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고려하지 않은 채 "나는 네가 좋아"라는 이유를 들어 무조건적인 베풂을 주는 걸 사랑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정말로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 사람이 무엇을 원하고 바라는지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된다. 어떤 곳을 좋아하는지, 요즘은 무슨 노래를 자주 듣는지, 최근 어떤 고민들을 하는지와 같은 것들을 파악하고, 필요한 순간에 그런 것들을 해주려고하게 된다. 그런 배려야말로 높은 수준의 상대방을 진정으로 여겼을 때 나오는 배려라고 할 수 있다.
무작정 많이 주는 것만이 최선은 아닐 수 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느낀 '많은 사람들이 찾는 사람'은 무언가를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라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것을 주는 사람인 경우가 훨씬 많았다. 때로는 열 번의 선물보다 한 번의 위로가 상대에게 더 크게 와닿는 법이다.
상대가 당신의 배려를 거절했다고 해서 너무 서운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주는 대로 받기만 하는 사람보다 당신을 생각해 그런 배려를 거절할 줄 아는 사람이, 오히려 훨씬 좋은 사람일 수도 있다. 또한 당신도 당신의 배려가 상대에게 '배려라고 느낄만한 것'이었는지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 무언가를 주고받기 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먼저 생각해 본다는 것.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지 않을까.